혼자 운전하면서 노래를 들으면 그 가수가 내 옆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 같은 착각이 들곤 한다.
사람마다 노래를 들을 때 멜로디에 집중하는 사람이 있고 가사에 집중하는 사람이 있는데, 나는 유난히 가사에 집착하는 쪽이다. 특히 조용한 차 안에서 혼자 노래를 들으면 귀에 들리는 것이 그 노래뿐이라 그냥 스쳐 들었던 노래 가사도 새삼 와 닿는 경우가 많다.
보통 내 음악 감상 스트리밍은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연달아 듣는 것으로 진행되는데 그 날 나의 선택은 김광석의 노래들이었다. 사실, 이십 대 아니 삼십 대 초반까지만 해도 그의 노래를 그렇게 좋아하진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그의 노래 가사들이 썩 와 닿지가 않았다. 노래가 참 서정적이구나 하는 느낌 외에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정말이지 이런 식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았는데...)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그의 목소리와 그의 노래가
듣기좋다. 그냥 참 좋다. 특히 그의 노래 가사에는 어려운 말들이 없다. 나도 쓰고 남도 쓰는 친숙한 단어들이 연결되어 한 문장이 되고 그 문장들이 모여 노래 한 곡이 완성되는데, 그 한곡을 다 듣고 나면 항상 시 한 편을 듣고 난 기분이 든다.
그 누구에게도 내보인적 없는 마음속 무언가를 툭 건드리는 특유의 음색과 꾸밈없는 담백한 창법 때문일까. 김광석의 노래는 김광석 버전으로 들어야지만 그 노래의 감정선이 오롯이 전달된다.
차 안에서 혼자 김광석 리사이틀을 즐기던 그 날, 유독 나를 그렁그렁 고이게 한건 '서른 즈음에'였다. 진짜 서른 즈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노래 가사가 그날따라 한 음절 한 음절 마음에 와서 꽂히었다.
마흔 즈음인 지금에야 가사들이 와 닿았던 건, 노래 가사 속 상황들이서른 즈음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은 데다가 나의 진짜 경험들이 다 서른 중반에 밀집되어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바닥까지 친 슬픔들을 성가시게만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노래를 듣던 그날도, 아니 불과 어제까지도 그랬다.
그래도 내 마음속에 김광석의 노래가 와 닿을 정도의 결이 생겼다고 생각하니 그 슬픔들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닌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