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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 Sep 28. 2019

나는, 나를 '생각한다'


올해 봄, 생애 첫 독서모임이 시작된 토요일이었다. 모임 장소에 생각보다 빨리 도착해서 주위를 어슬렁거리고 있는데, 같은 층의 다른 강연장에서 사람들이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들렸다. 문이 열려있길래, 슬쩍 안을 봤더니 알쓸신잡에서 봤던 김상욱 교수가 강연 참여자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있었다.  


 그때 그렇게 매달 강연자가 바뀌는 이 강연을 알게 되었다. 추후 일정을 보니 관심이 가는 강연이 몇 건 있었고, 그중 내 일정과 맞았던 강연을 오늘 듣게 되었다.

결제한 지가 벌써 세 달 가까이된 탓일까.
몇 년 전, 우연히 작가의 문장을 접하고 그의 여행 산문집을 사긴 했는데 당황스럽게도 내가 무엇을 기대하고 이 강연을 신청한 건지는 가물가물했다.

 어쨌든 강연을 가기 전, 그의 책을 훑어보려고 책장을 살폈다. 그 상태 때문에  책을 금방 찾을 수 있었는데, 어쩜 그렇게 투명한 포장 비닐 그대로 책인 건지...

옆에서 누가 보는 것도 아닌데 참  머쓱한 기분이 들 얼른 가방에 챙기고는 강연장까지 가는 전철에서 서둘러 그의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의 강연은 '나를 지키겠다는 약속'이라는 주제 하에 본인이  좋아하는 문장들과 본인이 쓴 문장들을 소개하는 것으로 꾸려졌다.
 
 그런데 그 문장들을 읽는 내내 좀 복잡 미묘한 기분이 들었다. 예전 같았으면 행간의 구분 없이 모조리 다 열광했을 문장들인데, 계속 뭔가를 걸러내고 경계하는 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나 스스로를 늘 감성적 인간이라 말하고, 그렇게 나의 정체성을 믿어 왔는데 그런  내가 맞나 싶을 정도였다.  






 생활인으로서는  감수성이 발달될 기회도 잘 없지만, 풍부한 감수성은 먹고사는 일에 오히려 약점이나 단점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알게 모르게 감수성에서 멀어지려고 거리를 뒀는지 강연 듣는 내내 내가 이렇게 바짝 말라 있었나 순간순간 놀라고 말았다.  

 (나는 그가 시인인 것 오늘 처음 알았는데) 꼭 시가 아니어도, 시적 언어로 된 문장들을 곱씹으며 취해보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읽어주는 문장들을 따라 읽고 나니 각지고 날 선 마음이 말랑말랑 해지기도 하고, 꼬였던 마음이 스멀스멀 풀리기도 했기 때문이다.


 어떤 게 '밥' 먹여주냐를 따지는 것은 이 시대를 사는 한

결코 피해 갈 수 없는 계산이지만, 어떤 게  밥을 '행복하게' 먹여주냐도 생각해 본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작가가 쓴 문장 중 오늘 가장  마음에 남 건 이것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사랑의 다른 이름은 '생각한다'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사랑이란
'생각한다, 생각한다, 생각한다, 생각한다의 연속선'이다.
<이병률,  혼자가 혼자에게>



 사실 처음 읽었을 때는 누군가를 사랑했던 어떤 시절과 그 누군가를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끄덕 했는데, 이 글을 쓰면서 나는 '나'에 대해서도 참 많이 '생각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러니 '나'를 지키겠다는 약속은 꼭 지켜져야 할 수밖에 없다.


뭔지 몰랐던 이 강연에 대한 나의 기대가 무엇이었는지 드디어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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