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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 Oct 01. 2019

모든 건 애착에서 시작되었다

붉은 낙엽을 읽고


 초복마저 지난 한국의 삼복 무더위에 토머스 H. 쿡의 붉은 낙엽을 읽었다. 한 여름에 ‘붉은 낙엽’을 떠올리는 일은 내게 퍽 생경한 경험이었다. (여름과 가을은 바로 맞닿아 있는 계절이지만) 여름의 더위는 낙엽과 같 ‘떨어지는 무언가’에 대해 생각록 내버려 두지 않 때문이다.  그런데도 책을 읽는 동안만큼은 그 어느 때의 가을보다도 더 선명하게 붉은 낙엽을 본 기분이 들었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에 인연이 있는 것처럼, 사람과 이야기가 만나는 것에도 인연이 있다고 믿고 있다.

나는 소중한 것에 대해 애착을 갖는 사람, 그리고 그 마음을 좋아한다. 애착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특질이라고 했던 에릭의 생각을 읽은 순간, 이 이야기를 멈추지 않고 읽겠구나 하는 강렬한 느낌이 들었고 진짜 그렇게 됐다.


운명의 진부한 장난처럼, 언제나 나의 애착강하면 강할수록 원하던 것들은 더 세게 부서지고 더 빠르게 흩어지곤 했다. 애착이 몰고 오는 이 슬픈 인과관계를 알게 된 이후, 내가 얻은 것은 삶에 대한 강도 높은 회의감과 회복하기 어려운 무력감뿐이었다. 메러디스가 읽은 시의 구절대로 ‘첫 번째 죽음이 있은 뒤, 또 다른 죽음은 없다’ 면 좋았겠지만 내 밖의 소중한 것이 나를 떠나자, 내 안의 소중한 것도 나를 떠나버렸다.


 이런 점에서 에릭의 이야기는 나와 같은 사람이 있다는 사실으로 나를 안도하게 만들었고, 한 마디로 표현하기 힘든 친근감을 느끼게 해 주었다. 에릭의 정서적 균열과 혼란, 환상, 불안, 무너짐, 슬픔, 애착의 모양 내 것기도 했고, 그 누구의 것이기도 했다.


 어머니와 여동생의 죽음, 불가사의한 아버지와 잘 알 수 없었던 형 사이에서 안온한 가족의 행복을 누린 적 없던 에릭은 두 번째 가족(아내와 아들)을 통해 몰랐던 삶의 깊이를 얻고자 노력한다. 첫 번째 가족에게서 받았던 트라우마로부터 도망쳐 어떻게든 두 번째 가족에게 그 불행이 대물림되지 않도록 애썼던 노력은 지극히 식적이고 설득력이 있었다.

 다만 그것이 (그도 모르게) 그가 가장 원하지 않았던 목표물을 향해 정조준되었다는 것이 삶의 지독하고도 얄궂은 수수께끼다. 

메러디스(에릭의 아내)는 사람들이 거짓말을 하고, 워렌(에릭의 형)은 사람들은 다 사기꾼이라고 했지만 우리에게 매번 거짓말을 하는 사기꾼은 ‘사람’이 아니라 ‘삶’이라는 것을 그의 이야기를 통해 새삼 깨닫다.






 거의 매일 이 물음에 눌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나는 스스로에게 내 삶이 어쩌다 이렇게 됐지?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지?라는 질문들을 꽤 자주 던진다.

‘언제든지 이렇게’ 돼버릴 수 있는 것이 인생이고, ‘소중한 것에 대한 강한 애착과 희망’ 대가가 꼭 좋을 리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굳이, 또 던진다.


 에릭이 바랐던 것처럼 '반듯하게 줄이 맞고, (견고하고 고집스러운 재료들로) 끝끝내 유지될 수 있는 상태'는  이 삶에 존재하지 않는다. 정상적인 하루의 다음 날에 얼마든지 정상적이지 않은 하루가 연결될 수 있고, 삶의 수레바퀴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회전한다. 


그리고 회전 속에서  내가 취할 수 있는 건,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계속하고 내가 멈췄던 곳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 말고는 없다. 이미 알았던 사실이지만 에릭의 서사를 통해 다시금 환기한다. 삶의 소용돌이 속에서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것 외에 나 스스로를 지혜롭게 할 방법 없다고 말이다.





에릭의 이야기를 읽고 나서 낙엽은 ‘붉어지고’ 난 뒤에 ‘떨어지는’ 건지 줄곧 다.



낙엽이 떨어지기 직전에 '붉어진다'는 것,
낙엽이 붉어지면 곧 '떨어진다'는 것.



그토록 찾아 헤맸던 인생의 진실과 삶에 대한 지혜는 ‘붉은 낙엽’이란 존재로 이미 다 설명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어김없이 가을이 왔고, 내 시간과 내 거리에 붉은 낙엽이 떨어질 때가 왔다.  나는 느 때와 마찬가지로 나 스스로를 지혜롭게 하기 위해 발버둥 치면서 낙엽이 붉어지고 떨어지는 것을 볼 것이다.

 어쩌면 딜런 토머스의 시가 맞았을지도 모르겠다.

 “첫 번째 죽음이 있은 뒤, 또 다른 죽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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