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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자 Apr 26. 2023

아들을 나라에 맡깁니다.

고슴도치 엄마 새끼 찾기

"훈련병들은 연병장으로 내려와주시기 바랍니다." 안내 방송이 나온다. 스탠드에 한바탕 소동이 일어난다. 이제 진짜로 헤어지네. 끌어안고 토닥이고 까까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아쉬운 포옹을 나눈다. 잠깐 사이 아이 눈가가 붉어진다. 아이들이 우르르 연병장으로 내려간다. 신분증과 군인 카드만 소지하고 나머지는 부모님께 주고 내려 오란다. 주머니에 소지품을 주러 다시 뛰어오는 아이, 모자를 주러 오는 아이... 마치 초등학교 입학식 같다. 


연병장에 내려간 아이는 무리들 속에 섞였다. 아이를 쫓는 눈이 바쁘다. 아장아장 걷기 시작한 아이가 놀이터에 나가 놀 때 걸음을 쫓는 심정이다. 우리가 앉아있던 자리에서 대각선 방향 중간쯤에 아이가 섰다.  남편 손을 이끌고 아이가 잘 보이는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극성 엄마 같은데 조금이라도 눈에 더 담아오고 싶은 엄마의 마음이다.  까까머리 모양이 다 비슷해 보이지만 내 아들은 금방 찾아낸다. 옛날 친정엄마도 동생들 훈련소 퇴소식 때 뒤통수를 보고도 한 번에 찾아냈다. 그때 엄마가 무척이나 신기했는데 나도 엄마다. 몇백 명 모인 훈련병 중에 내 아들을 찾아낸다.  옆에서 누군가 말한다."지금 부모들 있으니까 조교들이 친절하게 말하지. 부모들 가고 나면 바로 안 친절해진다. ㅋㅋ". 남극의 눈물을 보면서 펭귄들이 똑같이 생긴 애들 틈에서 자기 새끼를 찾는 게 신기했는데 펭귄도 이런 나 보면서 신기해할까?


간단하게 제식훈련 연습을 한다.  대대장님 환영사가 있고 군악대 음악에 맞춰 부모들이 있는 스탠드를 지나 숙소로 이동한다. 우리 앞을 지나갈 때는 남편이 아들을 향해 파이팅을 외친다. 수줍음 많은 아이는 소심하게 손을 들어 보인다. 그 모습을 동영상에 담는다. 까까머리 뒤통수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가자는 남편의 말에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신병훈련소에 데려다주고 오는데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나라에서 잘 키워줄 거라고 남자는 군대를 다녀와야 훨씬 어른스러워진다고 하지만 내 눈에는 더 어른스러워지지 않아도 좋다. 지금도 괜찮은데... 아들은 나더러 심한 고슴도치라 했다. 함함한다고. 산책길에 콩깍지 심한 이 고슴도치어매를 어찌하면 좋냐고 함지박만 하게 웃으며 흐뭇해했던 아들이다. 




양쪽 어머니들 전화가 빗발쳤다. 손자 군입대하는 날이라고 나한테, 아들한테 전화다. 왜 안 그러겠는가...


친정엄마는 전화로 앞서서 나서지 말고 중간에서 하라고 일러주신다. 아들은 외할매 필살기를 전수받았다고 ㅋㅋ 거렸다. 아들은 꼼꼼하다. 짐을 챙길 때 리스트를 작성해서 체크하면서 준비물을 챙겼다.  자기 군번 나오면 바로 군 적금 2개 가입해 달라고 현금을 찾아 주고 간다. 자기가 군입대하고 내가 해야 할 일을 A4 2장에 적어 놨다. 깨알같이 적혀있는 귀여운 메모들이다. 군 적금 가입방법, 더 캠프 앱에서 자기를 볼 수 있다는 안내, 퇴소식 때 가져와야 할 것, 먹고 싶은 음식, 강아지 주 4회 산책과, 이틀에 한번 양치시킬 것을 당부하는 글, 롯데자이언츠 야구 소식을 소상히 올려줄 것... 롯데야 야구 좀 잘 해라 ㅠㅠ



집으로 돌아오면서 5주 후 퇴소식 때 낮 시간 동안 빌릴 펜션을 검색한다. 미리 서둘러야 편안하게 쉴 수 있다는 경험담을 보고 부대 근처 펜션을 예약했다. 잠은 잘 잤을까... 밥은 잘 먹었을까... 궁금하다. 아직 오픈되지 않은 신병훈련소 앱에 카페를 자꾸 들락거린다. 전역까지 D-548. 다음날 아침이 되니 식단이 뜬다. 학교 급식 같다. 


아이의 군 생활이 안전하고 건강하기를 마음 다해 기도한다. 남편은 아들이 매주 하던 재활용 분리수거를 이제 자기가 해야 한다며 오늘이 분리수거 날도 아닌데 뒤적거린다. 재활용 분리수거 신병교육을 시켜야 하나...


입소 하루 전 머리를 깎은 모습을 가족 톡에 올렸는데 우리 모두 빵 터졌다. 유치원 때 딱 그 모습이다. 그때 아이 별명이 햇님이였다. 해맑고 잘 웃어서. 사랑해 마이 룽~


고슴도치 엄마는 오늘도 함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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