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35장 28절, 히브리서 4장 14절
어두운 밤하늘에 별들이 하나둘 고개를 내밀자, 이스라엘 땅 여기저기에 자리한 여섯 도피성에도 조용히 불빛이 켜졌어요. 게데스, 골란, 길르앗 라못, 세겜, 헤브론, 베셀, 이 여섯 성읍은 밤이 되면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조용히 나누는 시간을 갖곤 했죠. 하지만 이야기하는 동안에도 도피성들은 늘 두리번두리번 주위를 살폈어요. ‘누구든 받아들이는 성’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낮뿐만 아니라 깜깜한 밤에도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했으니까요.
“솔직히 말해서,” 게데스가 먼저 말문을 열었어요. “우리처럼 좋은 일을 하는 곳이 또 있을까?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도 우리한테 오면 살 수 있잖아. 우리는 죽음의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야.”
그러자 골란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어요. “그나저나, 오늘 낮에 너희 쪽에 열 명이나 들어왔다며?”
“응, 맞아.” 라못이 대답했어요. “좀 긴장했지. 동네 사람들에게 쫓겨 온 이도 있었거든. 온몸에 땀이 줄줄 흐르는데, 내가 다 가서 얼른 데려오고 싶더라니까.”
그 말을 듣고 세겜이 입을 삐죽이며 말했어요. “그런데 말이야, 우리 여섯 성읍만 너무 바쁜 거 아냐? 다른 레위인의 마흔 개 성읍은 저렇게 한가한데 말이지.”
“그러게 말이야,” 헤브론이 한숨을 쉬며 대답했어요.
“그런데 그 사람들, 진짜 다 실수였던 거 맞겠지? 전에 고의로 사람 죽이고 거짓말로 들어왔다가 결국 들켜서, 사람들 앞에서 벌을 받았잖아. 정말 무서웠지.”
“맞아, 그때는 모두가 충격을 받았었지. 이번에는 다 실수라고 하는데, 진심이었으면 좋겠어.” 베셀이 조용히 말했어요.
“오늘 들어온 사람 중에는 타국 사람도 있었어. 실수로 사람을 죽였다고 하더라고. 그 중 한 사람은 이웃이랑 숲에서 나무를 하다가 도끼 자루가 쑥 빠져서, 그게 하필 이웃 머리를 때린 거야.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었지. 우리가 없었으면 바로 복수 당했을 거래.”
“그런 사람들에게 새 기회를 줄 수 있다니, 참 다행이야.” 라못이 따뜻하게 말했어요.
“맞아. 어디에서 오든, 하룻길이면 도착할 수 있도록 자리를 잘 잡아줬잖아. 그리고 들어오는 길도 넓고 똑바르니 누구든지 찾아올 수 있어.”
“차별 없이, 누구든지.” 게데스도 고개를 끄덕였어요.
잠시 후, 세겜이 눈을 크게 뜨고 물었어요. “참, 그런데 말이야. 너희 쪽에 있던 그 사람, 오늘 나갔다며? 도대체 얼마나 있었던 거야?”
헤브론이 조용히 웃으며 대답했어요. “글쎄, 한 삼십 년쯤 됐을까? 정확하진 않지만, 정말 오래 있었지. 나랑 정이 참 많이 들었어.”
“오래 있었구나… 그래도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야. 그 사람은 평생 못 나갈 줄 알았는데.”
“맞아. 기뻤지만… 마음 한켠이 뭉클했어. 대제사장이 돌아가셔서 다들 슬퍼했거든. 하지만 그분이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그 사람은 이 성읍을 떠날 수 없었겠지. 기쁜 일과 슬픈 일이 함께 찾아오는 것 같아.”
그러자 베셀이 조용히 말했어요. “그러고 보면, 대제사장이 그 사람을 대신해 죽은 거나 다름없잖아?”
그 말에 모두 잠시 침묵했어요. 그리고 골란이 말했어요.
“맞는 말이야. 대제사장의 죽음으로,
죄를 지은 자가 자유를 얻었으니까….”
[민수기 35장 28절] 이는 살인자가 대제사장이 죽기까지 그 도피성에 머물러야 할 것임이라 대제사장이 죽은 후에는 그 살인자가 자기 소유의 땅으로 돌아갈 수 있느니라
[히브리서 4장 14절]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