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36장 4절
한쪽 구석에 차곡차곡 쌓여있던 두루마리들은 요 며칠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였어요. 하나님께서 요시아 왕 때부터 지금까지 쭉 말씀하신 내용을 담고, 백성들을 나쁜 길에서 돌이켜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겠다고 용감하게 나섰던 친구가 참혹하게 찢기고 불속에 던져졌다는 소식에 모두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거든요. 하지만 두루마리들의 마음은 절대 꺾이지 않았어요. 그렇게 또 다른 두루마리가 바룩의 펜 아래에서 비장한 얼굴로 세상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답니다.
“이 추운 겨울에, 그렇게 찢긴 것도 모자라 뜨거운 불에 타 죽다니... 생각만 해도 마음이 너무 아파.” 두루마리가 활활 타오르는 불 속에 던져져 죽은 친구를 떠올리며 울먹였어요.
“왕이랑 신하들은 여후디가 읽어 준 두루마리 내용을 꼼꼼히 다 들었는데도, 조금도 잘못을 뉘우치지 않은 것 같아.” 펜은 너무 화가 나서 부들부들 떨었어요.
“정말 아무도 말리지 않았던 거야?” 두루마리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어요.
“말렸대. 엘라단, 들라야, 그마랴 같은 신하들이 왕에게 태우지 말라고 간절히 말렸는데, 왕은 듣지 않았대. 오히려 화를 내면서 예레미야와 바룩을 잡아오라고 했다는데?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분들을 숨기셨지. 하나님이 지키시는 사람은 누구도 손댈 수 없으니까.”
“그나저나… 같은 내용을 또 쓰자니 바룩도 너도 참 고생이 많아.” 두루마리가 펜을 안쓰럽게 바라보며 말했어요.
“괜찮아.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쓰는 건 오히려 영광이지. 이건 나라의 운명이 달린 일이니까. 바룩이 얼마나 간절했는지, 성전에 직접 가서 사람들 앞에서 낭독도 했다니까.” 펜이 빳빳하게 가슴을 펴며 말했다.
“그렇구나… 그럼 이번에 나는 무슨 내용을 담게 될까? 미리 좀 알려줘.” 두루마리는 조심스레 물었다.
“이 나라가 바벨론에 의해 완전히 망하고, 사람뿐만 아니라 짐승까지 모두 죽게 될 거라는 내용이야. 그리고 왕에게는 다윗 왕의 자리를 이을 후손도 끊기고, 왕의 시체가 밖에 버려져서 낮에는 뜨거운 햇볕을, 밤에는 매서운 추위를 그대로 맞게 될 거라고. 왕의 가족들뿐만 아니라 신하들의 죄까지 모두 물으실 거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모든 무서운 재앙을 이 나라에 다 쏟아부으실 거래.”
“와, 정말 무시무시하네. 그 말을 들었을 때 마음을 돌이켰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신 건데 말이야…”
“그러게. 바룩이 처음 그 말씀을 읽었을 때는 온 백성이 금식하는 날이었대.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다른 성에서 온 사람들도 다 금식 중이었거든.”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이 갈그미스 전투에서 이집트를 이기고 나라를 집어삼키려 하니까, 왕도 겁이 났겠지. 그러니까 금식하자고 했겠네.”
“응, 이집트를 그렇게 믿고 의지했는데, 이집트가 무너졌으니 이제는 하나님께라도 매달려야 했겠지.”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불에 던져버릴 정도였으면, 그 금식은 진심이 아니었던 거 같아. 겉으로는 도우심을 구하는 척하면서, 정작 말씀은 불편했던 거겠지.”
“맞아. 회개는커녕 오히려 더 완고해졌대. 마음이 돌보다 더 단단했나 봐. 그런데 네 친구는 어떻게 왕 앞까지 가게 된 거야?”
“바룩이 백성들 앞에서 두루마리를 낭독했을 때, 그걸 들은 미가야가 대신들에게 전했대. 그다음에 여후디가 바룩을 불러다가 왕 앞에서 읽게 했고. 대신들이 말씀을 듣고 충격을 받긴 했나 봐. 왕에게 말씀을 전하기 전에 바룩에게 숨으라고 조언해 줬대. 그래도 그 사람들은 하나님 말씀을 귀하게 여긴 거지.”
“그런데 하필 왕 앞에 활활 타오르는 화로가 있었을 게 뭐람. 너희는 물이나 불을 특히 무서워하잖아. 그 친구가 불 앞에 섰을 때 얼마나 떨었을까…”
“생각만 해도 눈물이....” 두루마리는 흐느끼며 말끝을 흐렸다.
“그때 왕과 신하들이 회개만 했어도, 그 친구는 그렇게 죽지 않았을 텐데.”
“그랬으면 큰 연회 자리에서 제일 눈에 띄는 자리에 앉았겠지.”
조용히 생각에 잠겨 있던 두루마리는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너도 그 친구처럼 위험해질 수 있는데… 정말 가도 괜찮겠어?”
“나도 걱정이 안 되는 건 아니지만, 이렇게 너랑 이야기 나누다 보니까 이상하게 힘이 나는 것 같아. 설령 내가 불에 타게 된다 해도,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 사라지지 않으니까.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어도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한다고 했잖아!”
“그래, 걱정 마! 우리가 다 같이 있으니까! 네가 못 돌아오면 우리가 대신 또 나갈게!” 뒤쪽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다른 두루마리들이 힘차게 외쳤어요.
그때, 서기관 바룩이 조용히 예레미야를 바라보고는 바로 두루마리를 펼쳤어요. 그리고 예레미야가 불러주는 말씀을 듣고, 전에 썼던 말씀은 물론 새로 주어진 말씀까지 차례차례 적어 내려갔어요. 그 순간, 두루마리는 생각했어요.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품었어.
나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거야.
물이든 불이든, 두렵지 않아.
다만, 이 말씀이 경고하는 그 마지막 날이 두려울 뿐이지.’
[예레미야 36장 4절] 이에 예레미야가 네리야의 아들 바룩을 부르매 바룩이 예레미야가 불러 주는 대로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신 모든 말씀을 두루마리 책에 기록하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