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덩이 이야기

예레미야 38장 6절

by 리오라
“이 성은 반드시 바벨론 왕의 군대 손에 넘어가고 말 거예요!”

요즘 들어 사람들 모이는 곳마다 어김없이 울려 퍼지는 목소리가 있었어요. 바로 예레미야 선지자의 외침이었지요. 그는 갈대아인에게 항복해야 산다고 말했어요. 그런데 이 말을 들은 고관들은 기가 막혔습니다.


“저자는 백성과 군사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반역자요! 왕이여, 저자를 죽여야 합니다!”

고관들은 시드기야 왕에게 몰려가 고함을 쳤어요. 왕은 마지못해 그들의 말을 따르기로 했고, 결국 예레미야는 왕궁 감옥 마당을 지나, 어두운 말기야의 구덩이에 던져지게 되었답니다.


그 구덩이는 아주 오랫동안 조용히 잠들어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삐걱이는 줄 하나가 천천히 내려오더니, 한 남자를 매단 채 어둠 속으로 데려왔지요.

“이 사람… 누구지?”

구덩이 속에서 뒹굴고 있던 진흙탕이 질척거리며 놀라 물었어요.

“글쎄… 뭔가 사연이 깊어 보이지 않아?”

구덩이는 가만히 남자를 내려다보며 안타까운 눈빛을 보였어요.

“왜 이 구덩이까지 온 걸까?”

구덩이는 들어오기 싫어서 미적거리는 꾀죄죄한 굵은 밧줄에게 조용히 속삭였어요.

“저 사람은 예레미야 선지자야. 나라가 바벨론에게 망한다고 말했다가 고관들한테 찍혀서 여길 오게 된 거야.”

밧줄이 안쓰럽게 대답했어요.

“여기서 오래 버티긴 힘들 텐데… 내 몸은 질척거리는 진흙이라, 한 번 빠지면 쉽사리 못 나오거든.”

진흙탕이 혀를 차며 말했어요.

“그래도 전에 요나단의 집에 있는 웅덩이에도 며칠 있었다던데, 어쩌면 여기서도 버틸 수 있을지도 몰라.”

밧줄은 조심스럽게 말했어요.


“그나저나 무슨 말을 했길래 이런 벌을 받은 거지?”

구덩이가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로 물었어요.

“나라가 망한다고 했대. 바벨론에게 항복해야 살고, 아니면 다 죽는다고 여기저기 떠들고 다닌다더라.”

밧줄은 누군가 위에서 자신을 잡아당기자 황급히 말하고는 쏙 사라졌어요.

“군사들이 들으면 얼마나 불안했겠어.”

구덩이는 예레미야를 자세히 바라보았어요.

“선지자면 사람들 마음을 편하게 해줘야 하는 거 아냐? 왜 그런 소리를 했지? 근데, 거짓말처럼 들리진 않는데…”

진흙탕이 찡그리며 말했어요.

“선지자는 듣기 좋은 말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잖아. 그러니 예레미야가 틀린 건 아니지. 만약 그가 거짓말쟁이라면 여기서 죽을 거고, 진짜라면 언젠간 나가게 될 거야.”

구덩이는 뭔가를 직감한 듯, 반짝이는 눈으로 말했어요.

“빠져있느냐, 빠져나가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우리 한번 지켜보자. 나도 점점 궁금해지네.”


얼마 후, 다시 바깥이 소란스러워졌어요. 이윽고 낡은 천과 헝겊으로 정성껏 엮은 줄이 천천히 구덩이 안으로 내려왔지요. 구덩이와 진흙탕은 동시에 눈을 휘둥그레 떴어요.

“혹시… 예레미야를 데리러 온 거야?”

진흙탕이 줄에게 물었어요.

“응! 나는 왕궁 창고에 있다가 에벳멜렉이라는 내시가 불러서 왔어. 예레미야를 구하러 오라고 하더라고.”

줄이 조심스레 대답했어요.

“저 위에서 소리치는 사람이 에벳멜렉이야? 예레미야랑 아는 사이야?”

구덩이가 위를 힐끔거리며 물었어요.

“잘 알지는 못할 거야. 에벳멜렉은 구스 사람인데, 예레미야가 고관들에게 억울하게 끌려갔다고 왕에게 말한 사람이래. 하나님 말씀을 더 믿는 것 같더라고.”

줄이 말했어요.

“와… 그런 말을 왕에게 하다니, 정말 용감한 사람이네. 예레미야도 결국 말 때문에 이리 온 거잖아.”

“근데 말이야, 진흙에 푹 빠져서 혼자 끌어올리는 건 힘들어. 나도 그냥 보내주고 싶지만, 쉽지가 않네.”

진흙탕이 미안한 듯 말했어요.

“괜찮아! 그래서 에벳멜렉이 무려 서른 명이나 데리고 왔다니까. 게다가 예레미야가 다치지 않도록, 일부러 헝겊과 낡은 옷으로 날 만든 거래. 겨드랑이가 아플까 봐 말이야.”

줄이 뿌듯하게 말했어요.

“정말 다행이다. 안정말 안쓰러워서 볼 수가 없었는데. 여기에 갇혀서도 계속 바벨론에 항복해야 한다고 중얼거리더라고…”


줄이 다 내려오자, 예레미야는 조심스럽게 겨드랑이에 줄을 끼우고, 에벳멜렉의 지시에 따라 천천히 구덩이에서 올라가기 시작했어요.

“결국 하나님 말씀대로 되는구나. 예레미야가 다시 왕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하겠지?”

“그럴 거야. 그래야 백성들도 살 수 있으니까. 근데 내 생각엔… 사람들, 그 말을 듣지 않을 것 같아. 다들 너무 고집이 세서…”

구덩이는 조용히 중얼거렸어요.

“그나저나… 성이 정말 망하게 된다면, 에벳멜렉은 괜찮을까?”

“글쎄… 하지만 하나님은 그분을 믿는 자를 지켜주시겠지. 끝까지.”


잠시 침묵이 흐른 뒤, 구덩이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어요.

“그런데, 나 왜 이렇게 불안하지…

정말 이런 말 하고 싶지 않은데, 왠지 예루살렘이 불에 탈 것만 같아.

모두가… 이 구덩이 속에 빠진 것처럼 되면 어쩌지?”

구덩이 속은 그 어느 때보다도 깊고 어두운 생각들로 가득 찼어요.


[예레미야 38장 6절] 그들이 예레미야를 끌어다가 감옥 뜰에 있는 왕의 아들 말기야의 구덩이에 던져 넣을 때에 예레미야를 줄로 달아내렸는데 그 구덩이에는 물이 없고 진창뿐이므로 예레미야가 진창 속에 빠졌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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