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선초 이야기(34)
뚫고 나온 사랑 주위로 층층이 여러 막이 생겼어요. 보호막처럼 보이기도 하고, 그냥 빛 같기도 했어요. 처음엔 뿌옇고 어렴풋했지만, 그 겹겹의 층이 쌓이자 마침내 선명해졌어요.
우리는 흙 속에 들어가 싹을 틔우기 전부터 이미 불안을 키우기 시작해요. 이유는 딱히 모르겠어요. 그냥 늘 뭔가를 향해 가는 길목에는 불안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어요. 흙을 잘 뚫고 나올 수 있을까? 다른 친구들보다 여린 가지가 꺾이지는 않을까? 기대거나 의지할 무언가가 있을까? 불청객은 안 올까? 열매를 맺게 될까? 그 열매 안에 씨앗은 잘 들어 있을까? 그 씨앗에서 다시 원래의 모양이 나올 수 있을까?
나도 이런 고민에서 한 번도 자유로웠던 적이 없어요. 그런데 그 모든 걱정 중에서도 단연 최고는 바로 ‘그 사랑의 모양이 생길까?’ 하는 고민이었어요. 겉으로 보기엔 내가 무척 당당해 보였겠지만, 사실 내 안의 두려움은 늘 풍선처럼 부풀어 올라 곧 터질 듯했죠. 그러다 마침내, 그 사랑의 모양이 딱 나타나는 순간, 정말 놀랍게도, 그 풍선이 푹 꺼지듯 두려움이 사라졌어요.
뿌옇고 어두웠던 마음에 환한 빛이 스며들었고, 무겁던 생각들이 가볍게 흩어졌어요.
엄마가 말씀하셨어요.
“마음에 사랑을 품으려면 하루하루 선한 마음을 심어야 해.
그리고 그 선한 마음은 혼자 키우기 어렵단다.
여기저기, 뜻밖의 곳에서 선한 마음을 많이 받아야 하지.”
왜냐하면 사랑은 한 자리에 머무르지 않기 때문이래요. 사랑은 생각보다 바쁘고, 상상도 못 한 경로로, 때론 무계획적으로 돌아다닌다고요.
엄마는 또 말씀하셨어요.
“사랑을 잘못 품으면 모양이 찌그러지거나, 심할 땐 그냥 까맣게 나와. 그렇게 되면 풍선초가 아니라, 그냥 새카맣게 타버린 초가 되는 거야.”
그땐 그 말이 좀 심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에야 그 말이 마음에 쏙 들어와요.
결국 그 모든 불안을 없애준 건 다름 아닌 내 안의 사랑이었어요. 그리고 그건, 이 집에서 내가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아왔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해요. 생각해 보니, 이제야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이 올라와요. 물론 그동안에도 ‘고맙다’는 말을 종종 했지만, 지금 이 고마움은 말이 아니라 마음에서 그냥 흘러나와요. 그게 바로 사랑의 힘이에요.
사랑은 모든 두려움을 몰아내고, 고마움을 피워내요. 그리고 고마움은 또 다른 사랑을 불러와요. 그렇게 보면, 사랑은 바쁘지만 참 성실하네요.
이후 내 풍선들 속에서는 수많은 사랑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그럴 때 퍼지는 향기는 아무도 모를 거예요. 산속 깊은 곳에서 넓게 퍼진 바다를 보는 것보다 더 상쾌한 향기예요.
얼마 후, 심오가 다시 다가왔어요.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 듯한 맑은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던 그 아이는 말없이 내 앞에 주저앉았어요. 그러더니 조용히 이렇게 말했어요.
“내년 봄에 또 심어도 되지? 이번엔 친구들에게 나눠줄 거야. 그 집에도 사랑이 무럭무럭 자라도록. 괜찮지?”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어요.
“응. 꼭 봄이어야 할 필요는 없어. 마음이 따뜻하면 언제든 괜찮아.”
심오는 소중한 풍선들을 가득 안고 돌아섰어요. 걸음은 잔잔했지만, 그 뒷모습은 아주 단단해 보였어요.
나는 알게 되었어요. 사랑은 받는 것으로 시작하지만, 누군가에게 줄 때 비로소 완성된다는 것을.
그리고 그렇게, 또 한 알의 씨앗이 새로운 흙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어요.
그 사랑은 다시 누군가의 마음속으로 날아갈 거예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