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8장 9절
나는 예루살렘에 있는 아주아주 오래된 연못이에요. 내 이름은 베데스다, 뜻은 ‘자비의 집’이죠. 멋지지 않나요? 내 몸은 둥글고, 내 곁에는 기둥들이 우뚝우뚝 서 있어요. 가장자리에 네 개, 가운데에도 하나. 누구든 나를 처음 보면 “우와!” 하고 감탄할걸요?
옛날엔 이 근처에서 희생 제물로 쓰일 양들을 씻기곤 했어요. 깨끗이 씻은 양들은 저기 양문으로 끌려갔고요. 그 문은 좀 으스스해요. 왜냐고요? 거기서 ‘스데반’이라는 사람이 돌에 맞아 세상을 떠났거든요. 그리고 양문을 사자문이라고도 부른답니다. 문 꼭대기에 사자 네 마리가 새겨져 있거든요. 그래도 말이죠, 아무리 사자 문이라 해도 나만큼 멋지진 않다고 자부하고 있어요!
나는 아픈 사람들에게 꽤 유명해요. 매일 온갖 병을 앓는 사람들이 몰려들거든요. 왜냐고요? 천사가 가끔 내려와서 내 물을 살짝 흔들고 가면, 바로 그때 제일 먼저 나한테 풍덩! 하고 들어오는 사람은 병이 낫거든요! 정말 신기하죠? 그래서 사람들은 내가 언제 움직일지 몰라서 매일 노려보고 있어요. 하지만 그 순간은 아무도 몰라요. 내가 알려줄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 말이죠.
그래도 말이죠, 병이 낫고 환하게 웃는 사람들을 보면 내 마음도 따뜻해져요. 어떤 사람은 “와아아!” 하고 기뻐 소리치고, 어떤 사람은 감격해서 눈물을 뚝뚝 흘리죠. 그런 기적을 보면 나는 정말 자랑스러워요. 하지만… 항상 누군가 기회를 놓치고 마는 게 문제예요. 간발의 차이로 물에 못 들어간 사람들은 또 다시 눈물을 훔치고 가거든요. 그런 눈물이 쌓여서… 어쩌면 나는 눈물로 가득 찬 연못일지도 몰라요.
그중에도 난 절대 잊지 못할 한 사람이 있어요. 늘 나를 찾아오던 단골 청년인데, 무려 38년이나 아팠더라고요. 혼자서 왔기에 도와줄 사람도 없고, 물에 들어가는 걸 매번 놓쳤어요. 처음 왔을 땐 눈빛이 반짝반짝했는데… 해가 갈수록 그 빛은 점점 어두워졌죠. 나중엔 거의 죽은 듯이 기운이 없었어요.
그날도 그는 기둥에 기대어 조용히 절망하고 있었어요. “이젠 다시는 안 올 거야…”하고 속삭였죠. 나는 안타까운 마음에 계속 그를 바라보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때, 한 사람이 다가와서 물었어요.
“네가 낫고자 하느냐?”
나는 깜짝 놀랐어요. 아니, 이곳에 온 사람이 다 병을 고치고 싶어서 오는 거잖아요! 그런데도 그 청년은 기운 없이 대답했지요.
“나보다 먼저 물에 들어가는 사람이 많아서… 날 도와주는 사람도 없어요…”
그러자 그 사람이 아주 놀라운 말을 했어요.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순간 나는 어안이 벙벙했어요. 천사도 안 내려왔고, 물도 안 움직였는데… 어떻게 그런 말을! 그런데 그 순간—정말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어요! 청년의 얼굴이 환해지더니, 스르르 몸을 움직이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거든요! 물에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말이에요! 그리고는 정말 깔고 있던 자리를 둘러매고 걷기 시작했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 밖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어요.
“오늘이 안식일인데 왜 자리를 들고 다녀?!”
“너한테 그렇게 하라고 한 사람이 누구냐?!”
하지만 청년도 몰랐어요. 고쳐준 그 사람은 사람들 사이로 사라져 버렸거든요.
그런데 나는 기억했어. 어딘가에서 분명히 본 얼굴이었거든요. 기억이 날 듯 말 듯 머릿속에서 아른거리다가, 그때 멀리서 양 울음소리가 들렸고, 번쩍! 하고 떠올랐어요.
그 사람이 누구냐고요?
바로… 예수라는 분이었어요.
전에 이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 빌라도 법정 앞에서 십자가를 지고 걷던 그 사람.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양처럼, 지친 얼굴로 묵묵히 걸어가던 그 사람.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고난의 길을 걸어가던, 바로 그 예수였어요.
그가… 병든 청년을 고쳐줬던 거예요.
나는 그날 이후로 또다시 많은 사람을 만났고, 많은 기적을 봤지만, 그날의 그 장면만큼은 평생 잊을 수 없어요.
왜냐고요?
그건 정말, 자비의 집이라는 내 이름에 딱 어울리는 기적이었으니까요.
[요한복음 8장 9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