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육아가 가능한가요?

그래도 행복하다고 말하고 싶다

by 친구를 만나다

'행복한 육아'라는 말은 '행복한 전쟁'처럼 말이 안 되는 이야기인 것 같다. 조리원에서는 산모들이 밤에는 수유를 해도 되고 안 해도 된다. 꼭 하고 싶은 엄마들은 새벽에도 두 시간 반, 세 시간마다 수유를 하고 몸이 안 좋거나 피곤한 엄마들은 조리원 선생님들이 분유를 타서 먹여 준다. 들은 얘기로는 조리원마다 분위기가 다르다고 한다. 어떤 조리원에선 새벽에도 수유를 꼭 하겠다고 아이 데려다 달라는 엄마를 유별난 엄마 취급하기도 하고 어떤 조리원에선 새벽에 수유 안 하고 쉬겠다고 하면 모성애 없는 사람처럼 쳐다본다고 한다. 물론 사실과 오해가 어지럽게 섞여 있는 말들일 테다. 어떤 누구도 산모가 어떤 선택을 하든지 판단하거나 비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암튼 산후조리원을 나와서 집에 온 첫날 아내와 함께 두 시간 반마다 일어나서 아이에게 맘마를 주었다. 아내 가 주고 나는 옆에서 필요한 걸 제공해 주는 방식이었다. 새벽 4시 반쯤 아이의 뒤척임에 눈을 떠서 수유를 하며 든 생각은 이건 비인간적이라는 거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숙면을 취해야 삶을 온전히 누릴 수 있다. 사람마다 숙면의 기준이 다를 수 있겠으나 확실히 이건 사람이 사람다울 수 있는 수면의 방식과 질이 아니다. 아이에게 온 신경이 가 있어서 잠자는 시간도 자는 게 아니다. 머리가 아프고 정신이 몽롱했다. 기적을 체험하는 사람은 6개월 만에도 아이가 어른처럼 밤새 잔다는데 그럼 최소 6개월은 이런 수면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인가?


우리 부부가 잘 아는 지인은 지금 아이가 돌이 조금 지났다. 신생아를 키우는 동안 모든 라면을 다 먹어 보았다고 한다. 밥을 차려서 먹을 수 있는 시간적인, 마음적인 여유는 없고 맨날 똑같은 것만 먹을 수 없으니 라면이라도 바꿔가면서 먹었나 보다. TV에서 보면 엄마들이 물에 밥 말아서 김치랑 먹는 모습이 자주 나온다. 그마저도 아이가 울거나 사고 치면 먹다 말고 뛰어가야 한다. 엄마들은 아이들 수유하고 이유식 해주는데 정성을 다하는데 정작 자기 밥은 못 챙겨 먹는다고 한다. 저기요 잠도 잘 못 자는데 밥도 제대로 못 먹는다구요?


이 세상에 거의 모든 좋은 것은 누군가의 희생을 바탕으로 그 위에 꽃 피울 때가 많다. 수많은 성공한 자녀 이야기의 배경에는 부모님의 희생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무능력하거나 폭력적인 아버지와 대비되는, 자식 때문에 희생하고 고생한 어머니의 이야기는 셀 수 없이 많다. 그런 이야기들이 너무 많아서인지 희생하고 노력한 어머니의 훌륭함을 기리는 것보다 별 희생 없이 고생 안 하고 자녀를 키운 어머니를 모성애가 없는 사람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알게 모르게 생긴 것 같다. 그래서 내 세대부터, 더 어른 쪽 세대와 대화를 해보면 '엄마가 되려면 기본적으로 고생을 해야 하고 그것을 감수해야 진정한 엄마다.' 하는 생각을 엿볼 수 있다. 그럼 진정한 아빠는 어떤 아빠인가? 또, 엄마가 고생하고 자식이 성공하면 가족 모두가 행복한가? 아이는 부모의 모든 것을 배운다. 그리고 부모로 부터 말이 아닌 삶으로 배운 것이 사는 동안 배운 것 중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고 오래간다.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모습을 가르쳐주는 것이 나을까, 자신의 행복을 찾아 누리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이 나을까? 서로는 성공하기보단 행복했으면 좋겠다. 나는 지금 비록 세상 기준으로 성공한 삶은 아니겠지만 나름 보람 있고 행복하다. 남들 앞에서 이야기할 때는 그들이 불편하거나 신뢰하지 않을까 봐 ‘나름’이라는 단어를 붙이지만 내 개인적으로 돌아볼 때는 그 단어도 필요 없다. 물론 서로가 성공해야 행복할 것 같다고 하면 성공하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내 삶으로는 세상 기준에 맞춰 성공하지 않고도 행복한 삶을 서로에게 보여주고 싶다.


아이가 곧 태어난다고 했을 때 열에 아홉은 “이제 고생이다.”라고 말했고, 아이가 태어나자 마자는 “지금이 이쁘지 사고 치기 시작하면 힘들다.”라고 이야기했는데 나는 그런 말들이 참 싫었다. 아이와 함께하는 행복한 시간들, 아이가 성장하면서 겪는 당연한 과정들을 사람들은 왜 ‘고생 예고’로 표현하는 것일까? 행복한 육아를 해야 나중에 서로가 나한테 섭섭하게 해도 본전 생각이 안 날 것 같아서 아내에게도 '지금' 행복한 육아를 하자고 이야기했다.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교육은 엄마 아빠가 행복을 찾는 모습, 감사하며 누리는 모습일 거다.


감사하게도 지금은 둘이서 육아를 할 수 있다. 생업을 아예 포기할 수는 없어서 책 만드는 일은 틈틈이 하고 있지만 그 외 시간은 거의 아이와 함께한다. 하나님이 아이를 낳는 것에 엄마와 아빠가 필요하도록 세팅하신 것은 키우는데도 엄마와 아빠가 필요하기 때문인 것 같다. 업무량이 아무리 봐도 한 사람 분량이 아니다. 누가 봐도 꽉 찬 2인 업무량이다. 체력적으로도 힘들고 긴장한 상태로 계속 생활한다. 체력적으로 힘들고 스트레스가 지속되면 짜증이 날 수밖에 없는 것이 사람이다. 그래서 우리는 둘 중에 한 사람이 체력의 한계가 왔다 싶으면 우선적으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조치한다. 의욕에, 사명감에, 피곤한 줄도 모르고 계속 이것저것 하다 보면 스트레스가 쌓이고 그러다 보니 아기를 안고 있다가 던져버리고 싶은 충동이 생기는 것이다.(서로야 오해하지 마. 세상의 모든 엄마 아빠들이 한두 번씩 그런 생각을 한대... 너무 힘들어서...) 그래서 나와 아내는 항상 서로 - 아이 이름이 아니고 아내와 나 - 의 체력과 멘탈 상태를 체크하고 있다.


단언컨대 꿈처럼 행복한 육아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문득문득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육아는 엄마 아빠가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느냐에 따라 가능할 수도 있다고 믿고 있고 그렇게 하고 싶다. 그냥 우리끼리 그렇게 결심해 본다.


엄마 아빠부터 행복한 육아를 결심하고 한 가지 실 천한 것이 있는데, 밥은 엄마 아빠 둘이 같이 앉아서 먹는 것이다. 교대로 먹거나 하지 않고 아이를 옆에 따로 두고 먹는 것이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 갑자기 한 명이 급하게 먹어야 하는 경우가 생기는데 그래도 비교적 잘 지키고 있다. 서로가 아주 어릴 때는 자는 시간에 맞춰서 밥을 먹었고 잠을 자주 자지 않게 되고 나서는 모빌을 보게 해 놓고 밥을 먹었다. 처음부터 그래서 그런지 잘 참고 기다려 주었다. 이유식을 먹는 지금은 식탁에 같이 앉아서 치즈나 요거트, 과일이나 떡뻥같은 간식을 주면서 우리는 함께 밥을 먹는다. 서로가 간식을 먹기 좋지 않은 타이밍에는 간식 대신 장난감을 주고 가지고 놀라고 할 때도 있는데 그때도 많이 참아준다. 그러다 엄마 아빠 식사 시간이 끝나갈 때쯤이면 소리를 지르기 시작한다. 그 정도가 참는 것의 한계인지 우리가 다 먹어가는 걸 알아서 그러는지는 몰라도 감사하다. 안나 까레리나의 법칙이라고 해서 불행해지려면 다른 것을 다 갖춰도 한두 가지만 갖춰지지 못해서 불행해진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는데, 꼭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가끔은 같이 앉아서 밥만 먹을 수 있어도 행복할 수 있다.


이 매거진은 21년 2월 20일 발간된 저희 가족의 책 [서로에게]에서 발췌하여 발행됩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우리 집에서의첫날+병원진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