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aS는 어떻게 ‘AI의 부품’이 되었는가

생성형 AI 시대, 플랫폼 질서의 대전환

by 너부리


2025년 AI 엑스포에서 한 SaaS 기업 CTO가 남긴 말이 이 산업의 변곡점을 정확히 짚었다.


“우리는 더 이상 제품을 만들지 않는다. API를 조립할 뿐이다.”


이 짧은 문장은 SaaS(서비스형 소프트웨어)의 본질적 재편을 예고한다. 과거의 SaaS는 자체적인 제품이었다. UI, 기능, 워크플로우를 갖춘 완결된 솔루션으로, 각 기업은 고유한 사용자 경험과 특화 기능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해 왔다. 그러나 GPT-4o, Claude, Gemini 등 파운데이션 모델이 등장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한 줄의 자연어 프롬프트로 대부분의 기능이 호출 가능해지자, SaaS는 더 이상 독립적 제품이 아니다. 이제는 AI가 필요할 때 호출하는 모듈, 즉 부품(component)으로 축소되고 있다.


이런 흐름은 경제학적으로 ‘상품화(commoditization)’라고 정의된다. 초기에는 차별성이 있었던 서비스도 시간이 지나며 기능이 평준화되고, 결국 가격과 접근성이 선택의 주요 기준이 되는 구조다. 기존 SaaS 기업—슬랙, 노션, 젠데스크—이 제공하던 기능들은 이제 LLM 기반 AI가 빠르게 복제하거나 대체할 수 있다. UX나 브랜드만으로는 더 이상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다.


더 중요한 변화는 권력 구조의 이동이다. GPT나 Claude 같은 모델은 단순한 기술적 도구가 아니다. 이들은 지능 플랫폼이며, 그 생태계 위에 SaaS는 종속된다. 클라우드가 인프라를 제공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파운데이션 모델은 사고하는 중심이며, SaaS는 그 위에서 실행되는 부속품일 뿐이다. 가격 정책, API 호출 제한, 업데이트 방향성—all of these—가 모델 제공자에 의해 결정된다. SaaS의 자율성은 구조적으로 축소된다.


이런 종속을 회피하기 위해 다수의 기업이 ‘인하우스 AI’ 전략을 택하고 있다. SaaS를 구독하는 대신, 자체적인 LLM을 구축하거나 오픈소스 프레임워크(LangChain, RAG 등)를 활용해 사내 시스템과 연동된 AI 도구를 개발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단순한 기술 구현을 넘어서, 이 전략은 다음의 목적을 내포한다:


내부 프로세스에 맞춤화된 도구 확보

외부 SaaS에 대한 의존도 감소

보안 및 데이터 통제권 유지

장기적 총비용(TCO) 절감


이제 SaaS는 두 가지 선택지를 마주하고 있다. 지속 불가능한 기존 모델에 안주할 것인가, 아예 새로운 조건 위에서 재정의될 것인가. 생존 가능한 SaaS는 다음의 전략을 따라야 한다:


AI 오케스트레이션 환경에 최적화된 UX 설계

의료·법률·금융 등 도메인 특화 수직 SaaS로의 전환

프롬프트 및 API 기반 호출에 적합한 모듈형 아키텍처

규제·보안 이슈 대응을 통해 기업 고객의 신뢰 확보


SaaS는 죽지 않았다. 다만 ‘제품’이라는 개념에서 ‘기능 조각’으로 지위가 이동하고 있다. 생성형 AI 시대에 SaaS는 “AI가 선택하고 호출하는 기능 단위”이자, “사용자 경험의 마지막 퍼즐 조각”으로 남는다.

이는 사라짐이 아니라, 질서의 재편이다. SaaS는 지금 다시 설계되고 있고, AI 플랫폼 중심의 생태계 속에서 재위치를 찾아야 한다.


궁극적으로, 남는 질문은 기술적인 것이 아니다. 전략적인 것이다.


SaaS는 누구를 위한 기능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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