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제국주의를 움직인 조선의 석탄과 수력

에너지 제국을 향한 야망

by 너부리

일본 제국이 제2차 세계대전 이전과 전쟁기 내내 꿈꾼 것은 단순한 ‘팽창’이 아니었다. 그것은 외부에 의존하지 않고 에너지와 자원을 확보할 수 있는 ‘자급자족 제국’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언제나 조선이 있었다. 1868년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은 비약적인 산업화의 길로 들어섰지만, 지질학적으로 천연자원이 빈약한 일본 열도는 스스로를 연료와 철강으로 지탱할 수 없었다. 고도화되는 중공업과 대양 해군의 야망은 본토에서 나오는 저질 석탄으로는 감당할 수 없었고, 만성적인 자원 부족은 산업과 군사 모두의 발목을 잡았다.


실제로 일본 본토 내 석탄 채굴은 19세기 말부터 본격화되었지만, 군수·산업 수요의 폭발적인 증가 앞에서는 한계가 분명해졌다. 대표적인 사례가 하시마, 즉 군함도이다. 1890년 미쓰비시가 본격 개발한 군함도는 일본 근대화의 상징처럼 여겨졌지만, 그 이면에는 좁은 해저 갱도에서 이루어진 고위험 노동, 탄질 저하, 심해 채굴로 인한 비효율이 쌓여 있었다. 수출용 무연탄 일부를 생산하긴 했지만, 보일러용 고열량 역청탄의 생산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군함도의 자매 격인 이케시마 탄광도 마찬가지였다. 나가사키 앞바다에서 1960년대까지도 가동되었지만, 생산되는 석탄은 주로 산업열원이나 난방용으로 쓰이는 중·저질 무연탄이 대부분이었다. 지쿠호 탄전, 유바리, 호쿠토 등의 일본 내륙 광산들도 이미 1920년대 들어 채산성 문제와 함께 폐광 조짐이 나타났고, 이로 인해 일본은 석탄 수출국에서 석탄 수입국으로 전환되기에 이른다. 1941년 기준으로 일본은 약 5백만 톤의 석탄을 수입했는데, 이 중 상당 부분이 조선에서 확보되었다.



이러한 구조적 제약 속에서 일본이 택한 전략은, 바로 식민지 자원을 조직적으로 ‘제국의 혈관’으로 편입시키는 것이었다. 조선은 특히 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고품질 역청탄이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었고, 일본은 이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조선 병탄 이전부터 평양 등지에 탄광조사단을 파견하며 준비해 왔다. 병합 이후에는 조선총독부가 광업령과 조선광업령을 통해 광산 채굴권을 제도적으로 통제했고, 미쓰비시·미쓰이·노구치 등 일본 자본은 이를 기반으로 평양, 아오지, 덕천, 삼척, 신성 등 주요 탄전을 장악했다.


이 가운데 아오지 탄광은 일본 제국주의의 ‘에너지 전략’을 가장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장소였다. 함경북도 경흥군 일대에 위치한 이 탄광은 약 150억 톤에 달하는 매장량을 자랑했으며, 그 탄질은 일본 본토 광산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우수했다. 연기가 적고 유황 성분이 낮아 군수공장, 철강 제련, 기관차 연료, 특히 해군 보일러용 연료로 최적화되어 있었다. 일본은 1937년 아오지 일대에 조선인조석유공장을 세워 이 석탄을 액화하여 인조석유로 전환하는 대체연료 생산을 본격화했으며, 이를 통해 조선 석탄은 단순한 광물이 아니라 전쟁 수행 능력을 유지하는 핵심 동력원으로 변모했다.


수탈은 지하자원에 그치지 않았다. 일본은 일찍이 조선의 산악지형과 하천 유량에 주목하고 수력 발전 가능성을 체계적으로 조사했다. 1926년 일본질소비료주식회사의 노구치 시타가우는 함경북도 부전강에 유역변경식 발전소를 착공했고, 이는 조선 최초이자 동아시아 최대 규모의 수력발전 프로젝트가 되었다. 뒤이어 건설된 장진강·허천강의 발전소와 함께 결정판으로 불리는 압록강의 수풍댐은 1937년 만주국과의 합작으로 시작되어 1943년 준공되었다. 이 댐은 높이 160미터, 발전 용량 70만 킬로와트로 아시아 최대 규모를 자랑했으며, 생산된 전력은 대부분 만주로 송전되어 신경·안산 등 군수공업지대에 공급되었다. 수풍댐은 일본 제국이 설계한 ‘대륙병참 기지 조선’ 전략의 상징이었다. 즉, 조선은 자원을 생산하고 에너지를 공급하며 병참을 유지하는 거대한 전시 에너지 플랫폼이었던 것이다.


조선총독부는 이러한 산업과 에너지 수탈이 원활히 작동하도록 제도적 기반도 철저히 정비했다. 조선광업령과 중요광물증산령을 통해 석탄과 전력을 전시동원체제 아래 집중 배정했고, 식산국 연료과는 탄광별 생산 실적을 매월 집계하여 통제했다. 총독부는 군수회사법을 통해 주요 광공업체를 실질적으로 국영화했으며, 기업의 설비 합리화와 생산계획 조정을 강제했다. 조선 북부는 결국 ‘군사적 산업지대’로 전환되었고, 탄광과 댐, 화학공장, 질소비료공장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제국의 전쟁기계를 움직이는 거대한 배후지 역할을 담당했다.



이러한 일본의 식민지 에너지 전략은 단순히 산업화나 자원의 확보 차원을 넘어서 제국주의의 폭력성과 구조적 야망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이는 정한론자들이 조선을 경제적·전략적 공간으로 바라보았던 19세기 중엽의 인식과도 연결된다. 요시다 쇼인은 유수록에서 조선을 ‘미맥과 금혈의 나라’라 표현했고, 사다 하쿠보는 조선을 ‘한 번 쳐서 얻을 수 있는 금광’으로 묘사했다. 메이지 정부는 조선의 자원을 침탈하여 자국의 근대화 비용을 충당하고자 했으며, 조선의 식량과 인력을 홋카이도 개척이나 산업화에 동원할 수 있다는 계산서까지 작성했다. 결국 일본 제국주의는 조선 자원의 물질적 실체를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그것을 자신의 국력 증강과 전쟁 수행 역량으로 전환하는 구조를 설계했던 것이다.


오늘날 수풍댐의 거대한 콘크리트 벽을 바라보거나 아오지 탄광의 폐허를 되짚는 행위는 단지 과거의 유산을 탐방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에너지라는 이름의 식민주의, 산업화라는 이름의 폭력, 그리고 제국이라는 이름의 착취 시스템을 성찰하는 정치적 기억의 복원이다. 조선의 석탄은 군함을 움직였고, 조선의 전기는 만주 공장의 프레스기를 돌렸으며, 그 에너지의 흐름 위에서 제국은 전쟁을 수행했다. 그리고 그 모든 회로는 철저히 조선의 지하에서 시작되었다.


참고문헌

타카시 후쿠다, 『일본 석탄산업사』, 미나토출판, 1992.

오미야 다카시, 「일본 탄광과 산업화」, 『일본경제사연구』 제28호, 2000.

일본광업협회, 『일본 광산백서』, 1939·1943년 판.

한홍구, 『대한민국史 1』, 한겨레출판, 2006.

조선총독부, 『조선지질조사보고서』, 1920–1944.

長崎県立図書館, 『Nagasaki Digital Archives – Gunkanjima Collection』.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식민지경제 관련 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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