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어떻게
“승리하는 경쟁”을 준비하는가

AI 전쟁의 다음 장

by 너부리

2025년 여름, 워싱턴 D.C.는 조용한 전환을 겪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여느 해와 다름없는 관료적 문서 발표일 뿐이지만, 그 이면에는 미국의 기술 패권 전략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조짐이 감지된다. 이른바 “승리하는 경쟁: 미국의 AI 행동 계획(Winning the Race AMERICA’S AI ACTION PLAN)”은 단순한 기술 정책이 아니라, 21세기 글로벌 질서를 재설계하려는 정치적 선언이다.


이번 계획은 트럼프 행정부가 내놓은 차세대 AI 전략이다. 이 전략은 규제 철폐, 인프라 건설, 동맹 블록 형성을 중심축으로, "공세적 산업 전략(Offensive Industrial Strategy)"이라는 이름 아래 실행된다. 기존 바이든 행정부의 접근 방식이 AI의 위험을 통제하고 공정성과 윤리를 강조한 것과 달리, 트럼프 측은 ‘속도’와 ‘우위 확보’에 방점을 찍는다. 위험을 최소화하는 대신, 시장을 선점하고, 글로벌 표준을 장악하며, 중국과의 기술 경쟁에서 결정적인 우위를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규제에 대한 접근 방식이다. 트럼프의 AI 행동 계획은 연방 규제 철폐를 최우선 과제로 삼는다. AI 개발 기업들이 ‘혁신 친화적’ 주(州)에 위치할 경우, 연방 자금을 집중적으로 지원하겠다는 구상은 단순한 인센티브가 아니라, 연방주의에 대한 정면 도전으로 읽힌다. 이는 기술 패권 경쟁에서 속도를 확보하기 위한 계산이다. 정부의 손을 최소화하고, 민간의 자율과 시장 경쟁을 통해 기술 진보를 촉진하겠다는 고전적 보수주의 테크노크라시의 귀환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은 단기 혁신과 장기 신뢰 사이에서 윤리적 안전장치를 제거한 게임을 시작하는 셈이기도 하다.



흥미로운 점은 이번 전략이 AI를 단지 알고리즘의 문제로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에너지 집약적인 AI의 현실을 직시한다. 대규모 데이터 센터, 전력망 현대화, 반도체 제조 기반 확충이 모두 전략의 핵심 기둥이다. AI는 이제 단순한 ‘코드’가 아니라, 국가 기반 시설의 문제이며, 이 전환은 실로 지정학적이다. “AI가 작동하려면, 전력이 필요하다. 전력을 늘리기 위해, 우리는 송전망을 깔고 발전소를 지어야 한다.” 이 전략은 기술 혁신이 아니라 산업 재건이며, 곧 AI 패권 경쟁은 철강과 전력의 싸움으로 귀결될 수 있다는 인식을 반영한다.


글로벌 전략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AI 동맹 블록”의 개념이다. 이는 단순한 기술 수출을 넘어, 미국 주도의 기술 생태계 확산 전략이다. 트럼프의 계획은 동맹국에 “풀스택 AI 패키지”를 제공하겠다고 명시한다.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알고리즘, 심지어 규범과 표준까지 포함된 통합 수출 전략은 일종의 디지털 ‘마셜 플랜’에 가깝다. 중국의 ‘디지털 실크로드’에 대응하는 이 전략은 AI를 외교의 무기로 전환시킨다. 미국은 이제 기술을 무역 상품이 아닌, 지정학적 권력의 지렛대로 사용하려는 것이다.


결국 이 전략은 하나의 질문으로 귀결된다. 우리는 AI를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 바이든 행정부는 인권, 공정성, 노동자 보호, 위험 관리 등의 규범을 통해 AI를 “책임 있게” 개발하자고 주장했다. 반면 트럼프 측은 속도와 시장 확장을 통해 AI를 “공격적으로” 활용하자는 철학이다. AI 개발이 고삐 풀린 경쟁이 될지, 윤리적 경계 내에서 통제될지는 이 철학적 대결의 승자에 달려 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국내 정책의 전환이 아니라, 국제 AI 거버넌스의 분열을 초래할 수도 있다. 유럽과 같은 규제 지향 국가들은 바이든식 접근을 선호한다. 반면, 규제가 적고 빠른 실행을 원하는 국가는 트럼프식 전략에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이는 AI 표준의 블록화, 기술 냉전, 그리고 글로벌 시장의 양극화를 의미할 수 있다.


“승리하는 경쟁”은 단지 AI 전략이 아니다. 그것은 미국이 기술 패권을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대한 선언이다. 바이든의 ‘책임감 있는 AI’가 전통적 가치와 국제 협력을 중시했다면, 트럼프의 ‘공세적 AI’는 국익과 우위를 중심으로 재편된 강경 전략이다. 둘 중 어느 전략이 궁극적으로 미국을 AI 패권의 정점으로 이끌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AI는 더 이상 기술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권력과 가치, 시스템에 대한 선택의 문제다.


미국은 지금 그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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