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질 속의 불균형

2025년 미국 무역협정이 말하는 것

by 너부리

2025년은 세계무역체제가 또 하나의 분기점을 맞이한 해였다. 미국은 자국의 무역적자 축소와 산업 경쟁력 강화를 명분으로 주요 무역 상대국들과 일련의 양자 협정을 체결했다. 한국, 유럽연합(EU), 일본이 그 대상이었다. 이들 협정은 언뜻 보기에 유사한 외관을 지닌다. 모두 ‘15%의 기본 관세율’, ‘수백억 달러의 투자와 에너지 구매 약속’, 그리고 ‘시장 접근성 확대’라는 기표를 공유한다. 그러나 그 내부를 들여다보면 협정의 진정한 본질은 균질성이 아닌 차등화 전략, 즉 “상대에 따라 다른 규칙”을 설계한 미국의 정교한 통상 정치학에서 비롯된다는 점이 드러난다.


우선, 관세 구조의 명시적 상호주의 여부는 세 협정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를 드러낸다. 한미 협정은 미국산 수입품에 관세를 부과하지 않겠다고 한국이 일방적으로 약속한 반면, EU는 미국산 산업제품 전반에 대해 관세 철폐를 명시하였다. 일본은 자동차·농산물 분야에 한정된 시장 개방을 약속함으로써, 양보의 범위에서 한국과 EU의 중간지점에 위치했다. 즉, 미국은 각국의 전략산업 및 정치적 민감도를 정밀히 계산해 상호주의의 범위를 차등 적용했다. 이른바 ‘표준화된 불균형’이다.


금속 관세는 미국의 산업안보 우선주의가 가장 날카롭게 반영된 지점이다. 철강과 알루미늄, 그리고 구리에 대한 50% 고율 관세는 세 협정 모두에서 유지되었지만, 완화의 형식은 제각기 달랐다. 한국은 구리 품목이 협정에서 아예 제외됨으로써 ‘비암묵적 배제’를 경험했으며, EU는 TRQ(관세율할당제)를 통해 일정 수준의 완화를 확보했다. 일본은 이 문제를 별도 협상 대상으로 남겨둠으로써 미국의 ‘협상 유보권’을 인정하는 형식을 취했다. 결국 동일한 명분 아래 철저히 비대칭적인 접근이 정당화된 셈이다.


투자 약속의 구조 또한 흥미롭다. 미국은 한국과 일본으로부터 각각 3,500억 달러, 5,500억 달러의 투자를 끌어내면서 이들에 대해 “90%의 투자 이익이 미국에 귀속된다”는 조항을 명시했다. 반면 EU에는 이 조항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미국이 아시아 동맹국들과의 관계를 보다 거래적으로 설계하고 있으며, 심지어 경제적 이익마저 특정 파트너에 따라 선별적으로 분배한다는 점을 의미한다. 공정함(fairness)보다는 통제(control), 상호주의보다는 전략적 비용전가가 이들 협정의 숨은 통화라고 할 수 있다.


농업 분야에서의 입장 차이는 더욱 뚜렷하다. 한국은 정치적 민감성이 높은 쌀과 쇠고기 시장의 추가 개방을 명시적으로 배제하였고, 일본은 쌀 수입을 75%까지 확대하겠다고 약속했다. EU는 TRQ를 통해 일부 가공 식품에 대한 접근성을 확대하되, 민감 품목은 제외했다. 이러한 온도차는 단지 농업보호주의의 문화적 차이가 아니라, 미국이 각국의 정치적 제약조건을 얼마나 정교하게 통상지형에 반영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비관세 장벽(NTB)에 대한 접근 방식 역시 분화되었다. 한미 협정은 자동차 안전 규제와 같은 구체 사안에 대한 협의만을 담았으며, 디지털 플랫폼 규제나 통화정책 협의는 배제되었다. 반면 EU와의 협정은 SPS(위생 및 식물위생조치) 규제, 자동차 표준, 디지털 무역에 대한 규범적 협력을 전면에 배치하였다. 일본과의 협정은 인증 간소화 및 GI(지리적 표시)에 관한 유럽과의 협정을 간접적으로 인용함으로써 NTB 완화를 지향했지만, 그 깊이는 상대적으로 얕았다. 결국, 미국은 규범 설정 능력이 상대적으로 강한 EU와는 제도적 접근을, 상대적으로 협상력이 약한 아시아 파트너에게는 실물 거래 중심의 교환을 추구했다.


이러한 세밀한 차이점들이 시사하는 바는 분명하다. 미국은 더 이상 보편적 원칙이나 다자적 규범에 의존하지 않는다. 대신 관세라는 ‘협박 카드’와 투자라는 ‘당근’을 함께 휘두르며, 무역을 산업정책, 공급망 전략, 그리고 심지어 지정학적 포지셔닝 수단으로 활용한다. 한미, EU, 일본과의 협정은 그저 경제적 문서가 아니라, 미국의 전략적 서열화(ordering) 체계 속에 각각의 파트너를 위치시키는 도구다. 경제적 효율성이라는 고전적 무역 이론은 이 새로운 질서 속에서 더 이상 주도적 변수가 아니다. 오히려 오늘날의 무역은 지정학적 안보와 정치경제적 수익의 경계 위에 위치한 협상판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이 새로운 질서에서 어떤 위치에 놓였는가. 협상의 시점, 내용, 그리고 결과 모두에서 한국은 단순한 무역 파트너가 아니라, 전략적 투자자이자 에너지 구매자로서 기능했다. 그러나 그 대가로 얻은 것은 ‘구리 제외’와 ‘안보 관세 유지’라는 전략적 불이익이었다. 이것이야말로 거래의 비대칭성, 그리고 협상력이 자국 시장의 크기가 아닌 정치적 유연성에 의해 결정된다는 새로운 시대의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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