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잃어버린 독자’를 찾아서
한때 종이의 결이 여론의 방향을 결정하던 시절이 있었다. 정제된 활자와 단정한 레이아웃은 진실을 담는 그릇이었고, 신문을 넘기는 행위는 시민의 권리이자 의무였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 언론은 그 위엄을 잃었다. 뉴스는 더 이상 독자의 문 앞에 배달되지 않는다. 대신 알고리즘이 그들의 눈앞에 툭툭 내던진다. 페이지를 넘기는 손짓은 사라졌고, 클릭과 스크롤, 그리고 무심한 스와이프로 대체되었다.
한국 언론은 이 디지털 전환의 물결 속에서 방향을 잃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 물결에 떠밀리면서도 노를 젓지 않았다.
1990년대 말, 인터넷이 삶의 중심을 점령하면서 한국 언론은 갈림길에 섰다. 플랫폼 중심의 유통 체계를 선택하거나, 자생적 디지털 인프라를 구축하는 길. 대부분의 언론은 손쉽고 즉각적인 클릭 수익을 좇아 포털에 문을 열었다. 이는 일종의 디지털 ‘파우스트적 계약’이었다. 독자 데이터를 넘겨주는 대가로 노출과 유통의 권한을 얻었지만, 그 대가로 브랜드는 희미해졌고, 독자와의 직접 관계는 절연됐다.
결과는 명확했다. 2022년 기준, 한국인의 75% 이상은 뉴스를 포털로 접하며, 언론사 웹사이트를 직접 찾는 이들은 6%에 불과하다. 뉴스 소비는 커녕, 브랜드 충성도는 희미해졌다. 독자들은 더 이상 언론을 찾지 않는다. 그저 뉴스 조각을 스쳐지날 뿐이다.
플랫폼에 종속된 언론은 ‘품질’ 대신 ‘속도’와 ‘양’을 택했다. 수익 압박 속에 어뷰징 기사와 낚시성 헤드라인이 난무했고, 퀄리티 저널리즘은 희생되었다. 어떤 언론사는 인턴들로 구성된 별도 조직을 두어 수십 건의 기사형 광고를 하루에도 생산해 포털에 공급했다. 이때 메이저 언론사의 로고는 그 콘텐츠의 방패막이었다. 하지만 그 방패는 거꾸로 신뢰의 칼날이 되어 돌아왔다.
로이터 저널리즘연구소의 2023년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에서 언론을 ‘신뢰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28%에 불과하다. 이는 조사 대상 46개국 중 41위다. ‘진실’이라는 언론의 본령은 상품 속성에서 휘발되었다.
같은 시기, 미국의 뉴욕타임스는 다른 길을 택했다. 2011년 유료 구독 모델을 도입한 이후 2020년엔 700만, 2023년엔 950만 명의 디지털 구독자를 확보했다. 뉴스 생산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직접 청구하고, 그만큼의 품질을 담보했다. 심층 보도, 고품질 인터랙티브 콘텐츠, 데이터 저널리즘의 강화는 그 결실이었다.
이들은 데이터 분석과 기술 역량을 내부화했고, 고객 맞춤형 뉴스레터, 디지털 아카이빙, 팟캐스트 등으로 콘텐츠 접점을 확대했다. 플랫폼을 ‘활용’하되, 종속되지는 않았다. 뉴욕타임스는 2023년 한 해 4천억 원에 달하는 디지털 매출을 기록하며 저널리즘과 비즈니스의 경계를 다시 그렸다.
근본 원인은 기술의 부족이 아니다. 조직의 고질적 경직성, 기술 인력에 대한 구조적 저평가, 편집권과 영업권의 혼재, 대기업 및 건설사와 얽힌 불투명한 자본 관계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어느 순간부터 언론은 공공재가 아닌 영리사업이 되었고, 기자는 저널리스트가 아닌 영업사원이 되었다.
유능한 인재는 조직을 떠나 스타트업과 1인 미디어로 이동했다. 슈카월드, 김어준, 닥터프렌즈, 홍사훈의 경제쇼 등은 전통 언론이 포기한 신뢰와 품질을 자신의 콘텐츠로 대체하고 있다. 콘텐츠 중심이 기관에서 개인으로 이동하는 이 시점에서, 언론은 콘텐츠 공급자가 아닌 낡은 유통망으로 전락했다.
한국 언론은 아직도 회복 가능하다. 하지만 조건은 명확하다.
독자 중심의 구독 모델 확산: 유료 뉴스레터, 프리미엄 기획 보도, 멤버십 기반 커뮤니티는 단순한 수익모델이 아니다. 독자와 언론 사이의 ‘신뢰 계약’을 재구축하는 수단이다.
기술 내재화와 협업 조직 혁신: 기술은 도구일 뿐이다. 이를 활용할 수 있는 협업 문화와 수평 조직, 그리고 개발자와 기자가 대등한 파트너로 일하는 크로스기능팀이 필요하다.
편집권과 자본의 분리: 언론사의 대주주가 건설사나 광고 대행사일 때, 편집 독립성은 허구가 된다. 소유 구조를 투명화하고, 비영리적 저널리즘 펀드와 공적 기금의 도입을 고려해야 한다.
우리는 언론이 사회의 거울이자 등불이 되기를 바란다. 어두운 구석을 비추고, 권력을 견제하며, 시민들이 공동체를 이해하는 지적 플랫폼이 되어주기를. 그것이 바로 자유민주주의가 언론에 부여한 책무다.
그러나 지금 한국 언론은 그 책무의 무게보다 광고 단가를 더 걱정한다. 이 무너진 균형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기술과 조직의 혁신, 콘텐츠 품질의 회복, 무엇보다 ‘잃어버린 신뢰’를 되찾는 것이 급선무다.
우리는 다시 언론을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신뢰는 구독 버튼이 아니라, 콘텐츠 자체에서 비롯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