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 피카소 미술관에서
바르셀로나의 몬카다 거리 한켠, 고딕 궁전 다섯 채를 끼고 자리 잡은 피카소 미술관은 화려하거나 과시적이지 않다. 그러나 그 안을 걷는 동안, 관람객은 어느새 20세기 예술의 가장 대담한 혁신가, 파블로 피카소의 그림자와 조용한 대화를 나누게 된다. 때로는 당혹스럽고, 때로는 찬탄을 자아내게 하는 그의 세계 속으로.
나는 그곳에서 한 작품 앞에 오래 서 있었다. 형태는 뭉개지고 인물은 선과 면으로 해체된 듯 보였지만, 그 안엔 어떤 단단한 시선이 살아 있었다. 문득 생각했다 — 피카소도 자신이 그린 것이 ‘이상하게’ 보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그 역시 이를 고민하고, 괴리와 충돌 사이에서 예술을 지탱하려 애썼을까?
피카소 미술관은 그의 전 생애를 다루지 않는다. 파리로 건너가기 전의 초기작과 1950년대 이후 말년의 작업에 방점을 둔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제한이 오히려 그의 예술적 진화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미술관의 상당수 작품은 피카소 본인이 직접 기증한 것들이고, 몇몇 작품은 그의 가족과 가까운 수집가들이 제공했다. 이 기증들은 단순한 수집의 결과가 아니라, 예술가 본인이 자신의 출발점과 종착지를 어떻게 정의하고자 했는지를 보여주는 일종의 ‘자서전’이다.
초기작들 속 피카소는 놀라울 정도로 고전적이다. 벨라스케스와 엘 그레코의 영향, 인상주의의 감수성, 모네와 르누아르의 색채 감각이 스며 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는 ‘형태’란 반드시 유지되어야 하는 게 아니라는 직관에 도달한 듯 보인다. 그리하여 선과 면, 기하학적 형태와 원색의 조합으로 현실을 재해석하기 시작했고, 이로부터 입체주의(Cubism)라는 새로운 회화 문법이 태어났다.
그의 캔버스는 더 이상 단일한 시점의 기록이 아니라, 기억과 감정, 구조와 시선이 교차하는 다층적인 공간이 된다. 추상으로의 도약이라 불릴 수 있지만, 피카소는 ‘추상’이라는 말을 끝내 꺼림칙하게 여겼다. 그는 대상을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을 더 깊이 꿰뚫어 보려 했던 것이다.
입체주의는 시각적 충격을 동반한다. 관람자 대부분은 파편화된 형상 속에서 무엇을 보아야 할지 망설인다. 피카소 역시 그 ‘괴리’를 인식하고 있었던 듯하다. 그는 단지 이해받는 것을 포기한 천재가 아니라, 자신만의 언어를 통해 ‘소통의 방법’을 치열하게 모색한 예술가였다.
그러한 고민의 정점이자 가장 정교한 실험 중 하나가 바로 1957년의 <라스 메니나스> 연작이다. 벨라스케스의 17세기 걸작 <시녀들>을 바탕으로 피카소는 58점에 이르는 재해석 작업을 감행한다. 그는 단지 인물의 위치를 바꾸고, 색과 선을 바꾸는 것에 머물지 않았다. 시선의 구조 자체를 해체하고, 회화의 극적 구성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조립했다.
미술관의 전시실 한켠에 놓인 이 연작 앞에서, 나는 그가 한 말을 떠올렸다. “그림을 진심으로 모사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나는 말할 것이다. ‘이제는 내 방식으로 해보자.’” 그것은 벨라스케스를 향한 경의이자 반항, 모사이자 창조,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시간의 반어법이다.
피카소가 입체주의를 통해 시도한 것은 단지 스타일의 실험이 아니다. 그것은 세상의 ‘진실’을 한 화면에 더 풍부하게 담아내려는 시도였다. 이 점에서 그는 동시대의 또 다른 거장, 호안 미로와 궤를 달리한다. 미로가 초현실주의를 통해 의식의 이면으로 도약하고자 했다면, 피카소는 무너진 현실의 파편들을 주워 그것을 새롭게 짜맞추려 했다.
두 사람 모두 전통의 틀을 넘어섰지만, 방향은 달랐다. 미로는 회화 그 자체를 탈피하고자 했고, 피카소는 회화 안에서 현실을 새롭게 보이게 하려 했다.
피카소 미술관은 피카소의 완결된 ‘정답’을 보여주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평생 자신과 싸우고, 형태와 싸우고, 이해되지 않음과 싸웠다. 그는 여자들을 사랑했고, 또 그들로부터 영감을 받았으며, 동시에 논쟁과 상처도 남겼다.
그러나 그가 남긴 작품들은 여전히 살아 있다. 그리고 그것들은 여전히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이상한가? 그렇다.
그러나 예술이 진실을 말하려 한다면, 때로 그것은 ‘이상한’ 방식으로 말해질 수밖에 없는 법이다.
바르셀로나 피카소 미술관은 바로 그 이상함 속의 진실, 피카소가 평생을 바쳐 쌓아올린 예술의 자화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