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엄마는 휴일 아침부터 잔소리가 대단했다. 해가 중천에 떴는데 도대체 언제 일어날 거냐며 타박하더니 방이 너무 더럽다, 이래서 어떤 남자가 너를 데려가겠느냐 내내 히스테리를 부렸다. 남자 이야기를 꺼내는 거 보니 또 누군가가 끝내주는 결혼을 하는 모양이다.
엄마의 신경질이 절정에 다다른 건 요즘 남자친구와 어떻게 지내느냐는 말에 내가 헤어졌다고 대답했을 때였다.
“도대체 왜? 걔 인물도 괜찮고 대기업 다닌다면서.”
헤어진 이유를 말하고 싶지 않아서 가만히 밥을 먹는데 엄마는 이유를 알아내고 싶어서 죽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닥달했다. 결혼까지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니었느냐 걔처럼 괜찮은 애를 또 어디서 만나겠느냐 나를 어르고 달래는 엄마의 말은 그러니까 결국 이거였다. 웬만하면 다시 만나서 결혼까지 잘 좀 해 봐.
소모적인 언쟁이 지겹지만 밥을 먹는 동안은 어쩔 수 없었다. 엄마는 내 맞은편에 자리를 잡고 앉아 본격적으로 잔소리를 퍼붓고 있었다.
“너 닮은 예쁜 애도 낳아야 할 거 아니야.”
그런가. 나는 별 감흥 없이 먹던 밥이나 마저 먹었다. 없는 약속을 만들어내야 할지 고민하면서.
연말에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사실을 들통난 후부터 엄마는 계속 결혼타령을 했다. 기분이 좋은 날도 기분이 나쁜 날도, 결론은 그러니까, 네가 결혼을 하면 엄마는 너무 좋지. 이제 직장도 잡았고 남자친구도 있으니 다음 수순은 당연하게도 결혼이라는 게 엄마의 생각이었다. 아직 그런 단계가 아니라고 해도 엄마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불편해서 체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냥 한 귀로 흘리기에 인이 박였다.
“도대체 왜 헤어졌는데?”
딸을 시집보낼 절호의 기회를 놓쳤다는 생각에서인지 엄마는 집요하게 헤어진 이유를 물었다. 내가 다행히도 체하지 않고 밥을 다 먹은 다음에도 내 방까지 쫓아와서 헤어진 이유를 내놓으라 다그치는 엄마는 아무래도 감당하기가 어렵다.
“말 안 하는 데는 이유가 있을 거라고 대충 넘겨짚으면 안 돼?”
“그러니까 그게 대체 뭔데?”
일어난 지 두어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한밤중같은 피로가 몰려온다. 오늘따라 엄마와의 소모전이 평소보다 버겁다. 더럽게 끝나버린 연애와 추근덕대는 상사들, 그리고 점점 힘에 부치는 추가업무까지. 온통 힘빠지는 일들 뿐인데 엄마까지 이렇게 쥐잡듯 달달 볶아대니 그저 어딘가로 훌쩍 떠나고 싶은 기분이다.
“엄마, 제발.”
“네가 언제까지 20대일 거 같은데. 지금 예쁘고 건강하고 좋을 때 좋은 남자랑 결혼해서 애도 낳고 해야지. 너 늙는 거 금방이다.”
방금 식사를 마친 소화기관이 뒤틀리는지 배에서 꾸룩 소리가 나고 명치 부근이 아릿하게 아프다. 결국 체한 건가 생각하는데 엄마가 다시 한 번 채근한다.
“딱 결혼하면 좋을 거 같은 남자랑 대체 왜 헤어졌냐고.”
다시는 입밖으로 내고 싶지 않은 말을 꼭 들어야겠다는 엄마의 고집은 근거 없이 견고하다. 나는 엄지손가락으로 명치를 문지르며 말했다.
“걔가 나보고 비싸게 군대.”
방금 전까지 태풍치는 바다처럼 나를 마구 휩쓸던 엄마의 목소리가 일순 고요하다.
“너 원래 싸구려면서 왜 비싸게 구냐고 그래서 헤어졌어.”
주말 아침의 티비에서 공허한 웃음소리가 산산이 흩어졌다. 연노랑 햇빛 위로 쏟아지는 웃음소리는 몇십년째 메마른 사막의 모래처럼 버석하다. 숨막힐 듯 건조한 공기 속에서 우리는 이집트 미라라도 된 것처럼 메마른 채로 우뚝 서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