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 속에서 찾은, 행복을 위한 작은 깨달음
"섬뜩하리만치 차갑게 다가오는 보잘것없는 현재에 대한 불안감. 한 겨울 잠들기 한 시간 전 미리 켜 둔 전기장판만큼이나 따스한 미래에 대한 낙천. 둘 사이의 간극이 커져갈수록 삶은 불행해지는 것 같다. 어쩌면 꿈을 이루어가는 과정은 이러한 온기의 실제를 찾아나가는 과정이 아닐까, 미지의 전기장판의 실존을 간절히 믿고 찾아 헤매는 듯 말이다."
불행의 늪에서 해내던 어느 날 새벽, 잠에서 깨자마자 비몽사몽 한 채로 생각난 문장을 그대로 작성한 내용이다. 온몸이 파란색으로 범벅이 된 듯, 우울하던 시기에 작성한 문장이지만, 긍정을 찾아 헤매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그렇다, 나는 늘 불행하지만 결코 그에 파묻히지 않았다. 그리고 비록 절벽의 끄트머리에 있더라도, 늘 행복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결국 모든 사람들의 삶의 목적은 이 한 문장으로 요약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엄청난 권력을 갖는 것도,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는 것도. 결국에는 행복이라는 두 글자로 향하기 위한 과정이 아닐까? 그런데, 행복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것일까?
어렸을 적 나에게는 다양한 시련들이 다가왔었다. 자세히 말하기는 아직도 너무나 힘들다. '현재도 절친한 친구나 가족이라 할지라도, 말을 하지 못할 정도의 시련이었다' 정도로 설명을 마무리하고 싶다.
설상가상으로, 시련은 한 번이 아니라 자주 찾아왔다. 그리고 그러한 일들이 생길 때마다 소심했던 나는 늘 좌절하기 일수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이였던지라 불행을 타파하는 방법은 몰랐지만, 상황이 쉽게 바뀌지 않으리라는 것만은 쉽게 알 수 있었다. 덕분에 이른 나이에 불행이라는 개념에 쉽게 익숙해지곤 했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그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썼었다. 초기에는 당황했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려 노력했다. 상황을 바꿀 수 없다면 상황을 만들어내면 된다. 불행을 만들어내는 대상이 있다면, 그 대상과 나의 관계를 바꾸면 된다. 이런 생각으로 한 해 한 해를 보내왔다. 덕분에 어린 시절은 대부분은 너무나 힘들었지만, 가끔은 괜찮았을 때도 있었다.
가끔 괜찮았다는 것은, 대부분 안 좋았다는 뜻이다. 어린 나이에 안간힘을 쓰면서 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 번은 적당히 친분이 있던 친구의 말에 한 시간 가량 혼자 울었던 기억이 있다. '너 괜찮아?' 실제로 말한 것도 아니고, 컴퓨터 메신저를 통한 말이었지만 그 문장이 너무나 슬펐고, 나 자신이 서러웠었다.
다행히도 시간은 흐르고, 그만큼 성장해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나의 모습 그 자체를 좋아하는 친구들이 생겼다. 하지만, 불행은 여전히 도처에 존재했고, 알코올 중독자의 모습과 흡사하게 그 불행을 혐오하면서 끊지 못하곤 하였다.
이때의 불행의 주제는 '부러움'이었다. 대학생이 되고 보니, 잘난 사람은 너무나 많았고, 나는 너무나 못난 사람이었다. 기를 써서 조금 나아졌다 싶으면 더 잘난 사람은 어디에나 존재했다. 친구의 오토바이가 부러워, 꾸역꾸역 돈을 모아 스쿠터라도 샀더니 그 친구는 벌써 중형차를 타고 있는 느낌이랄까? 친구는 그저 나아가고 있을 뿐인데, 나는 나 스스로를 괴롭히는 것이 일상이었다.
불행은 취업을 준비할 때 극에 치달았다. 하루에 5군데에서 동시에 탈락 소식을 접하고, 그날 친분이 거의 없던 친구의 합격소식을 SNS를 통해 우연히 접했다. 친구이기에 합격을 축하하지만, 축하해줄 수가 없었다. 나는 그만큼의 대인배가 아니었다. 탈락에 우울함에 친구에 대한 부러움으로 인한 불행감이 버무려져서 최악의 요리가 만들어졌고, 나는 억지로 그 음식을 먹고 있었다.
불행의 원천은 SNS였다. 그날 부로, 모든 SNS를 끊었다. 그리고 다행히 얼마 안 있어 회사에 합격할 수 있었고, 즐거운 합격 소식을 정말 친한 친구들에게만 메신저를 통해 전달했다. 한참 동안이나 SNS는 다시 개설하지 않았다.
그리고 드디어 현재이다. 아실 분들은 아시다시피, 나는 현재 다양한 SNS를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신분은 어떻게 보면 불행했던 취업준비생 시절보다 더 불안하게 보이기도 한다. 다시금 그때의 우울함으로 돌아가기 딱 좋은 환경이다. 하지만, 단 한 번도 그때와 같이 불행했던 적은 없다. 그리고, 만약 그때와 비슷한 감정이 들 기미가 보인다면, 수월하게 빠져나올 것이다.
그간의 세월 동안, 행복을 찾고 불행을 줄이는 방법을 많이 찾아놓았기 때문이다.
나는 살아오면서 수없이 다양한 방식으로 불행했고, 앞으로도 자주 불행할 것만 같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예전보다는 짧게, 약한 강도로 불행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한다. 여태까지의 불행의 다양성과 빠져나온 횟수만큼, 행복으로 향하는 방법을 익혀왔기 때문이다.
불행할 수 있는 방법만큼이나,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하다.
당신의 불행을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은 맛있는 간식(주로 치킨) 일 수도, 친구의 조언일 수도, 혼자만의 휴식시간일 수도 있다. 다만, 어떤 불행이 닥쳤을 때 어떤 대응이 효율적이었는지는 본인만이 알 수 있는 정보이다. 그리고, 이 정보들을 많이 알아두어야 한다.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최대한 많이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다. (*첨언을 하나만 더 하자면, 파괴적인 방법은 지양해야 한다. 그 날만 행복하고 다음날 더 불행하다.)
요즈음 나의 경우, 불행감이 몰려올 때 회피하지 않고, 온몸으로 받아들이려 한다. 그리고 고민한다. 나는 왜 다시금 불행한가. 이랬던 적이 있었던가. 어떻게 하면 빠져나갈 수 있을까? '있을 것 같다.' 잠시 몸을 움츠렸다가, 이내 나갈 준비를 다시 해나간다. 그리고 그때의 빠져나왔던 방법을 추가적으로 기억해둔다.
비록 우리는 모두 시궁창에 살지만, 우리 중 누군가는 별을 바라보고 있다.
- 오스카 와일드 -
나는 앞으로도 자주 불행하겠지만, 그때마다 수월하게 잘 빠져나올 것이다. 불행만큼이나 행복은 멀리 있는 게 아니기에. 그리고 이 글을 읽은 당신은 지금 행복에 조금 더 가까워졌을 것이다. 불행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알게 되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