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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로 Jul 24. 2020

매운맛 불안. 비는 내리고 윤지영, 비로소 쓰기.

글을 써야한다 아니, 써야했다.

 가슴속에 있는 감정이 부글부글 차오른다. 1시간 전쯤 먹은 매운맛 닭똥집 덕분인지, 이 시간까지 아무 일도 안한채 보낸 본인에 대한 혐오감 때문인지는 차마 알 수가 없다. 책상 앞 시간은 어느새 오후 11시 44분을 가리키고 있다. '본인이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면 영감이 떠오를 수도 있어'라는 좋아하는 소설가의 조언을 그대로 따라, 장범준이나 10cm 등의 음악을 듣고 있는지도 수 시간이 넘었다. 나는 글을 쓰는데 능력이 있고, 판만 깔아주면 금방 감명 깊은 글을 쓸 수 있게 될 것이라 자신했다. 어렸을 적 포기했던 꿈을 비로소 용감하게 되찾았기 때문에, 반드시 능력이 있어야 했고, 반드시 감명 깊은 글을 쓸 수 있어야만 했다.


 하지만, 꿈을 찾은 지도 어느새 1년. 다시 돌아보면 그렇지 못했다. 멀쩡한 직장을 포기한 대가와 후회는 한없이 줄어만 가는 통장 잔액의 총량과 같이 다가왔고, 내 꿈을 응원해주고 어떤 상황에서든 서포트해주겠다던 여자 친구는 이미 새로운 사람과 만난 지 3달이 넘어갔다. 슬슬 부모님께 손을 벌려야 하나 하는 한심한 생각이 머릿속에 슬며시 다가오고, 여자 친구에 대한 원망도 이제는 술 없이 해치울 수 있게 된 지 오래이다. 나는 과연 옳은 선택을 한 것일까. 지난 삶을 살아오는 동안 했던 수많은 잘못된 선택들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30대가 되어서 첫 번째 내린 큰 결정이 인생에 있어서 엄청난 실수가 되진 않을까. 불안감이 차오른다.


 불안감을 잠재우는 데는 역시 매운 음식이 제격이다. 이따금 아니 솔직히 요새는 자주, 매운맛 소스로 버무려진 음식을 먹곤 하고, 곧이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속을 갖게되곤 한다. 본인에 대한 화 대신 속이 먼저 끓어오르면서 본인에 대한 원망을 덜 하게끔 되는 효과가 이 음식에 있는 것 같다.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고,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쓰는 나를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이 세상에 의미 있는 감상을 남긴 사람. 누군가의 기억으로 그리고 유형의 창작물로 내 이름을 남기고 싶다. 하지만, 현재의 나는 그런 위대한 사람의 모습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왜 이렇게 내 삶의 일절 도움이 되지 않는 일들은 이리도 재밌는 것일까. 어떤 특별한 존재자가 내 꿈을 망치려 계획한 일은 아닐까. 그래, 누군가 분명히 이 일에 개입하고 있을거야.


...


 아, 이러니 혼자서만 있으면 사람이 이상해지는 거구나. 더 이상의 음모론자가 되기 전에 바람이라도 쐬러 밖으로 나섰다. 귀에 이어폰을 꼽고, 검은색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갔다. 아, 비가 오네. 우산 안 가져왔는데 그냥 가지 말까. 아니다 가자. 다시 집으로 올라가 우산을 갖고 내려와 밖으로 나섰다. 우리 동네, 그리고 우리 집의 장점은 집 앞에 바로 하천으로 된 산책로가 있다는 점이다. 특히 이런 밤에는 인적이 드문 편이라 나 같은 사람 마주치기 싫어하는 유형에게는 딱 좋다. 신호등을 건너고, 다리를 내려갔다. 그리고 대충 구겨신은 컨버스 운동화를 고쳐 신고, 걷기 시작했다. 귀에서는 아까와는 다른 가수가 노래를 시작한다. 윤지영. 목소리가 너무 좋아 최근에 즐겨 듣는 가수이다. 쓸쓸함을 사람으로 표현한다면 이 가수가 제격이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노래를 듣다 보면 괜스레 나도 쓸쓸해지고, 그 감성이 퍽 나쁘지 않다.


 본인에 대한 생각을 한다. 본인에 대한 한탄을 한다. 본인의 선택에 대한 후회를 한다. 본인을 원망한다. 본인을 혐오한다. 생각을 회피한다. 걷는다. 만보기가 긴장을 할 만큼이나 오래 걷는다. 이 윗줄에 적어놓은 생각을 한없이 반복한다. 갑자기 와장창 비가 더 쏟아지기 시작한다. '그냥 가지 말까'라는 선택을 하지 않는 본인에 대한 원망을 한다. 본인을 혐오한다. 생각을 회피한다(비가 너무 많이 온다). 집으로 돌아간다. 윤지영의 노래는 집에 도착함과 동시에 끝났고, 나에 대한 원망도 그 시점에서 마무리되었다. 다시금 컴퓨터 앞에 앉는다. 무작정 글을 써보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글을 쓰기 시작한다. 귀에서는 장범준과 10cm가 다시금 노래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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