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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로 Aug 06. 2020

검정치마의 가삿말이 반대로 들리는 건 보름달 때문인 걸

흔한 이별, ♪ 검정치마 - Everything

 8월 중순의 어느 날, 그 날은 지독하게도 비가 오다가 이상하게도 비가 그치곤 하던, 다소 이상한 날씨가 너를 맞아주던 그 날. 날씨만큼이나 불안한 마음을 갖고 그녀를 만난다. 너는 그녀와의 시간이 끝에 다 달았음을 경험적으로 직감한다. 많은 경험이 있는 건 아니지만, 늘 이맘때쯤 아니, 이러한 맥락에서 이별하곤 하는 게 일상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결국 지원했던 그곳에 떨어졌기 때문일까, 내가 원서나 면접을 준비한다는 핑계로 너와의 연락에 소홀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사실은 내가 너를 사랑하지 않았었기 때문일까? 아니, 나는 여전히 너를 사랑하고 있다. 1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묵묵히 나를 기다려준 너를 사랑하고 있다. 중간중간 탈락 소식을 접할 때마다 나보다 먼저 눈물을 흘리던 너를 사랑하고 있다. 부모님 용돈을 받는 처지에 매주 만나기에는 부담스럽다는 찌질한 말을 내뱉은 나를 위해 지갑을 열어주던 너를 사랑하고 있다. 먼저 직장에 취업해 신입사원이라는 힘겨운 시기를 겪고 있지만, 오히려 남자 친구를 위로해주는 너를 사랑하고 있다. 혹시, 아니면 네가 나를 사랑하지 않았던 건 아닐까? 그 긴 시간 동안 죄책감에 휩싸여서 너를 놓지 못했던 건 아닐까? 대학생활 동안 누구보다 많은 부러움을 받던 만남이었기에, 그 빛이 발하는 환함에 머리가 한참 동안 착오를 일으켰던 건 아닐까? 실은 너와 같은 곳에 지망을 하고 너만 떨어졌던 그 날, 너와 그녀의 관계는 끝났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나로서는 결코 알 수 없었다. 그냥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누군가는 사랑하지 않게 되었을 뿐이다. 




 저 멀리, 약속 장소에 먼저 도착한 그녀가 슬며시 너를 쳐다본다. 어느 순간부터 그녀는 나를 보면 살짝 미소를 짓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하게 되었다. 대학시절 만나는 날마다 너무 좋다는 듯이 팔짱을 끼곤 하던 그녀는 이제 너만의 기억 속에만 가득하고, 지금의 그녀는 조신하게 인사를 건네는 숙녀가 되어버렸다. 물론, 너도 그때는 그녀를 처음 보면서 기쁜 마음으로 크게 이름을 세 번 부르곤 했었던 게 사실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너도 조신한 청년이 되어버렸다고 말하는 게 맞는 표현일까. 하지만, 너와 그녀는 달라진 인사방식에 크게 불만을 갖지 않는다. 3년이라는 시간은 긴 시간이다. 인스턴트 식 관계가 범람하고 있는 게 일반적이다. 한 달을 채 사귀지 않고 헤어져놓고도 잘 사귀었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고, 1년을 사귀고도 본인의 옛 연인과의 사랑의 진위를 의심하는 관계도 존재한다. 사랑에 있어서 결코 기간이 중요하다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진심'이라는 단어의 중요성은 여전히 설파하고 싶은 것이 사실이다. 너는 요즘은 사람과 사람 사이, 특히 연인들 사이의 관계에 진심이 덜 해지고 있는 것 같다고 문득 느낀다. 물론, '그래서 너는 진심이야?'라는 자문에는 자답하지 못한다. 스스로의 생각에 슬쩍 창피해진 너는 그녀에게 다가가 쑥스러운 미소를 짓는다. 물론, 그녀도 보일 듯 말듯한 미소로 화답한다. 정말 그 미소가 화답인지 아닌지는 지켜봐야겠지만 말이다.

 "오빠, 갈까?" 사방으로 식당, 카페, 술집들이 넘치고 있는 강남역 한복판에서 마치 정해진 곳이 있다는 듯이 그녀는 말한다.

 "응 가자." 물론 너 또한 정해진 곳이 있는 건 아니다. 그저 그녀가 물었기에, 대답했을 뿐이다. 대답을 하지 않는 것은 최소한의 의무를 져버리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너와 그녀는 최소한의 대화를 기반으로 장소를 정한다. 오랜만에 퇴근시간에 맞게 퇴근할 수 있었던 그녀는, 저녁과 술을 같이 할 수 있는 곳으로 가자고 권유한다. 물론 너에게 거절할 이유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지갑이든 마음이든 여유가 없는 사람은,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는 사람을 따라가는 게 맞다. 물론, 이 두 가지중 한 가지만 해당되는 경우에는 딜레마가 존재한다. 그런 경우는 차치하고, 오늘은 둘 다 해당하기 때문에 너는 그녀가 이전에 친구들과 가봤다는 그곳으로 향한다. 역 출구와 그 식당인지 술집인지 하는 곳과의 거리는 약 500m, 10분 정도만 걸으면 자리에 까지 앉을 수 있을 정도의 거리다. 그 10분의 시간 동안 너와 그녀는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일상적인 대화만을 나눈다. 그녀는 의무적으로 너의 현재 상황을 묻고, 너는 현실적인 요소를 몇 가지 배제한 채 낙관적인 투로 답변을 전한다. 그녀는 다행히도, 안심하는 듯하다. 그리고 너는 의무적으로 그녀에게 회사생활에 대해서 묻고, 그녀는 비현실적인 희망을 버린 채로 평이한 답변을 전한다. 하지만 불행히도, 너는 그 답변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의 문답이 이어진다.

 "오빠, 이번에 지원한다는 거기는 원서 제출했어?"라든지 "오빠, 오늘은 공부 잘하다 왔어?" 하는 정도의 질문이다. 반면, 너의 질문은 조금 다르다. "회사생활은 요새 어때? 이제 적응 다 했지?"라든지 "요새는 괴롭히고 이런 사람은 없지?"라는 질문들이다. 전자와 후자의 차이는 경험의 유무에서 나온다. 그녀는 너의 상황을 경험해보았고, 너는 그녀의 상황을 상상할 뿐이다. 다만, 드라마나 영화를 보고 상상했던 것을 기반으로 질문하는 건 아니기에, 다행히 최악의 상황만은 면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적인 답변은 기대할 수 없는 질문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으며, 당연히 연인 간의 의무 중 하나인 '기댐'에 대해서도 기대를 받을 수 없다. 너는 그렇게 연인의 일반적인 역할 중 하나에 대해 수행하지 못한다.



 8시가 약속시간이었고, 8시 10분에 정확히 장소에 도착한다. 다만, 앉는 데까지는 20분가량의 시간이 더 소요되었다. 금요일 밤의 강남역은 어느 곳이나 만만치 않은 곳들 뿐이다. 20분가량의 시간을 너와 그녀는 본인의 핸드폰과 함께 보내버린다. 8시 30분이 되었다. 자리는 좁지만, 조용한 곳으로 안내를 받는다. 문까지 달려있는 곳이기에 더욱더 조용함이 보장을 받는 느낌이다. 반주가 가능할 만한 적당한 안주를 고르고, 적당히 너에게 의사를 묻는다. 너는 거절할 생각이 전혀 없다. 곧바로 주문을 하고, 바로 소주가 한병 서빙되어 나온다. 마치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듯이 너는 소주병을 흔들어 열고, 그녀의 잔에 술을 반 정도 채운다. 그리고 너의 잔에는 소주 한 병이 사실 7잔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고 싶다는 듯이, 많은 양을 채워 넣는다. 자연스레 잔을 비운다. 한잔, 두 잔 그리고 세잔을 비워갈 때쯤 안주가 나온다.  

 9시 10분. "먹자 오빠, 이거 맛있어." 그곳에서 그녀가 너에게 건넨 첫마디이다. "응 그래 맛있어 보인다." 너 또한 그곳에서 그녀에게 첫 대답을 보낸다. 두 번의 처음이 마주치고 난 이후의 대화는 두 번째 병이 도착할 때쯤 이루어진다.

 9시 30분. "사실, 할 말이 있어......" 그녀가 조심스레 말을 꺼낸다. 물론 너는 그녀의 어투에서 그다음의 이어질 말을 짐작한다. 집중해야 하는데, 집중하고 싶지 않다. 그 뒤에 말에 대한 그 뒤에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너는 갖은 힘을 다해 생각해보려 한다. 근데, 답이 없다. 객관식 문제까진 안 바라더라도, 서술형 문제는 되길 바랬는데. 그냥 답이 없는 문제였다. 사실, 진작 답이 있었다면 풀었겠지. 정답을 바라진 않더라도, 오답을 보고 고치려 했겠지. 집중할 수 있는 것은 그 장소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노래뿐이다. 그쯤, 검정치마라는 가수의 'Everything'이라는 노래가 흘러 퍼지고 있다. 결코 잊어버릴 수 없는 노래이다. 너와 그녀의 행복했던 한 때를 은유하는 노래이기 때문이다.



 월미도, 대학생 시절 너와 그녀의 첫 여행, 바닷가 앞 이름 모를 조개집, 널브러진 조개껍데기들과 함께 풍기는 적당한 취기, 기말고사를 마치고 바로 떠났다는 시점이 주는 풍부한 여유, 아직까지는 너무나 넘치는 사랑 그리고 두 개의 이어폰.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이어폰을 쓰지 않는다. 너와 그녀는 마치 그러는 게 당연하다는 듯이, 왼쪽 귀와 오른쪽 귀만을 활용해 음악을 나누어 듣는다. 그때 들리는 노랫가사. 너와 그녀의 특별함을 기념하는 듯한 그 노래 가사. 


You are my everything

My everything

넌 내 모든 거야

내 여름이고

내 꿈이야

넌 내 모든 거야

나 있는 그대로

받아 줄게요


 그때 너와 그녀는 이것이 사랑이구나, 낭만적이라는 형용사를 실제로 체험하는 일이 나에게도 이루어지는구나,라고 생각하며 감탄한다. 그 날의 달은 손톱 같은 모양의 작은 초승달임에도 유달리도 빛났고 너와 그녀의 마음은 보름달처럼 차올라만 갔다. 그리고 그때는 그 부풂이 영원할 것이라 믿었다. 그때, 너와 그녀는 어리석은 믿음을 추앙했고, 영원함이 그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 생각했다. 그 날의 밤, 너와 그녀는 그렇게 초승달 속에 가득히 차올랐다.




 9시 34분. "우리 이제 그만하는 게 어떨까?" 노래는 툭 끊기고, 너의 몸속 어딘가에서도 무엇인가 끊어지는 소리가 들린 듯한다. "솔직히... 너무 힘들어... 회사생활만으로도... 미안해." 그녀는 너에게 뜬금없이 사과를 전한다. 사과? 무슨 의미의 사과인 걸까? 먼저 헤어지자고 말한 것에 대한 사과? 본인이 너에게 솔직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사과? 회사생활이 너무 힘들어서, 조금이라도 여유를 찾기 위해 가장 먼저 정리해야 할 대상으로 너를 택한 것에 대한 사과? 너는 머릿속으로 욕을 내뱉는다. '씨발, 망할 놈의 사과들' 끝내자는 것에 무슨 상세한 이유가 필요한가, 누군가는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뿐이고, 누군가는 사랑이 식었을 뿐이다. 이 경우에 전자는 너 후자는 그녀가 되겠지. 그냥 너와 그녀의 관계는 그렇게 끝날뿐이다.

 9시 38분. 너는 답변하지 못한 채 이제 소주 한 병이 사실은 6잔이라는 것을 무리해서라도 증명하고 싶다는 듯이 빠른 속도로 두 잔을 비운다. 그리고 비로소 답변한다. "그래, 그게 맞겠지?" 그리고 다시 두 잔을 더 비운다. 아까부터 그녀는 잔을 비우지 못하고 있었는데, 역시 동일하게 두 잔을 비운다. 너는 종업원을 호출한다. 물론, 세 번째 병을 시키기 위함은 아니다. 빌지를 요구하기 위함이다. 곧이어 빌지가 나오고, 자연스레 그녀가 그 종이를 받는다. 너는 그 종이를 뺐어들어, 밖으로 나선다. 그녀가 급하게 짐을 들고 따라온다. 

 "내.. 내가 낼게 오빠 이리 줘 그거."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다급한 목소리로 그녀가 말한다.

 "됐어, 마지막은 내가 낼게...!" 혀가 살짝 돌아간 채였지만 최대한 여유 있는 목소리로 이상한 미소를 지으면 너는 대답한다. 스스로의 표정과 행동을 너 조차 이해하지 못한다.

 9시 54분. 그녀는 너의 행동을 막지 못한다. 너는 며칠간의 생활비를 그 장소에서 소진한다. 그리고, 10시 15분. 너는 그녀가 택시를 타고 떠나는 모습을 바라본다. 다소 이른 시간이라 택시가 바로 잡혔음에 스스로 만족한다. 그리고, 너는 문득 깨닫는다. 교통비가 없다. 너는 죽어버리고 싶은 마음을 진심으로 몇 초간 갖는다. 하지만 취기가 주는 젠장할 장점 중에 하나는, 뜬금없는 낙관을 비관론자에게 또한 부여한다는 점에 있다. 너는, 너의 핸드폰에 배터리가 가득함에 만족하고, 이어폰이 있음에 만족한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추천 노래 리스트에 아까 들었던 노래가 1시간 듣기 버전으로 존재한다. 주저 없이 검정치마의 노래 한곡을 반복해 들으며 너는 집으로 향한다. 문득, 하늘 위를 바라본다. 하늘에는 보름달이 떠있다. 하지만, 달이 뜨지 않은 것처럼 어둡고 흐리다. 너의 '전신'과 '전심'이 작아지는 감정을 느낀다. 그때 바닷가에서 보았던 조그마한 자갈보다 더욱더 작아져감을 느낀다. 하늘에는 그때처럼 바다가 가득하고, 계속해서 파도가 몰아친다. 비로소 너의 얼굴은 바닷물로 가득해진다. 노래는 같은데, 가삿말이 반대로 들리는 건 보름달이 떴기 때문일까. 초승달이 저물었기 때문일까. 알 수 없다. 알고 싶지 않다. 그냥, 걷는다. 젠장할 바닷물은 멈추지 않고 계속 흘러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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