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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로 Sep 11. 2020

나는 이 글이 실제가 아니었으면 해 2

흔하디 흔한 연애 이야기, 그리고 그 후


 대학생 시절, 가장 행복한 시절로 쉬이 꼽을만한 첫 학기를 아쉽게 끝내고 난 후 첫여름을 맞았다. '대학에 가면 네가 하고 싶었던 것을 다 할 수 있을 거야!'라는 말을 혐오하기 시작한 것도 그쯤이었던 것 같다. "할 수 있긴 뭘 다해, 너네하고 술 마시는 것 말고는 되는 게 하나도 없구만." 나지막이 내뱉은 나의 말에 친구들은 공감의 웃음으로 대답했다. 술이 어느 정도 들어간 상태여서 그런지, 크게 웃는데 다들 부담이 없었다. "웃기냐 이것들아... 근데 현지는 누구랑 만난다는 거야?" 앞 문장은 크게 모두를 향해, 뒷 문장은 조용히 진혁이만을 향해 내뱉었다. 마치 나의 마음이 누군가에 들키기를 염려라도 하는 듯이 말이다. "걔 있잖아 선배 중에 키 크고 현지랑 같은 동아리 하는 애" 발이 넓고 친구들 간 소식이 꽤나 빠른 진혁이가 곧바로 답변을 전해왔다. 

 "아... 망했네."

 "뭐라도 해보고 망했다고 해라 인마. 지금 너랑 현지 관계가, 나랑 걔 사이의 관계랑 도대체 무슨 차이냐?" 이 친구는 평소에는 별생각 없이 말을 내뱉는 듯 하지만, 때로 이렇게 핵심에 가까운 말을 기꺼이 내어주곤 한다. 나는 아무 대답을 하지 못한 채 친구들에게 짠을 청했다. 

 그 날의 술자리는 방학 전 마지막 자리였어서 그런지 꽤나 길게 이어졌고, 각자의 막차시간만이 들고 있던 술잔을 멈추게 만들 수 있었다. 늦은 밤, 택시를 타고 집에 가는 일은 상상의 범주에 없던 시절이었다. 나 또한 그 날의 운명의 시간이 살짝 지나가고 있음을 확인하자마자 황급히 지하철역으로 향했고, 무작정 오는 차에 탑승했다. 그러나 목적지보다 2 정거장 이른 곳이 그 차의 종착지였고, 나는 그 거리만큼의 생각의 시간을 얻을 수 있었다. 몸을 바로 세울 수 없는 상태였지만, 머릿속으로 지난날을 제대로 복기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지난 한 학기 간 나의 성적을 돌아보면 다음과 같다. 우정에서 1승, 성적에서 1 무, 그러나 연애에서 2패(대패). 즉, 총 성적 1승 1 무 2패로 만약 월드컵이었다면 바로 탈락권인 처참한 성적이다. 

 만약에 우정마저 애매한 수준이었다면 수능을 다시 보는 것 또한 고려해볼 법했지만, 생각보다 훨씬 좋은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대여섯 명으로 이루어진 우리 무리는 때로 이렇게 술자리를 같이 하며 우정을 다지곤 하였다. 물론 공대 혹은 여대가 아니었기에 무리에는 여자애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남고 출신인 나로서는, 여자가 친구가 될 수 있느니 없냐느니 하는 구시대적 논리를 벗어난 것도 이때쯤이었던 것 같다. 술을 마심에 따라 생기는 이성에 대한 극한적 관대함 속에서도 이성적 감정이 생기지 않고, 친구로서의 메리트가 더 크다면 우정에 있어서 성별은 별로 중요치 않은 것 같다. 우리 무리 속의 이성간 우정관계는 모두 이 두 가지 범주 안에서 이루어지곤 했다. 개인별로 편차는 있었겠지만, 마치 이맘때즘 그래야 했어야 한다는 듯이 우리는 서로 금세 친해졌다. 

 다음으로 성적, 그래 나는 이 부분에 관해서 할 말이 없다. 원하는 전공을 찾아서 들어왔지만, 첫 학기는 전공보다는 교양 위주의 수업이었고, 나는 크게 집중을 하지 못했고 출석과 시험만 간신히 치러 나가는데 만족했다. 그러나 당연한 듯이 그저 그런 알파벳들을 기대하며 받아 든 성적표에는, 높은 수준은 아니지만 생각보다 괜찮은 성적이 쓰여 있었다. 뭔가 잘못된 건가 싶어 자세히 봐보아도 내 성적이 맞았었고, 복권에라도 당첨된 듯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여전히 그 이유는 궁금했었는데, 강의실 건물을 옆 잔디밭에서 술에 취해 널브러져 있는 친구들을 보며 사유를 깨달았다. 지금의 평균은 '적당히 하는 게'아니라, '안 하는 것'이었음을. 이에 따라 적당히 공부했던 나는 적당히 만족스러운 성적을 받기에 충분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자 그리고 마지막은 연애. 첫 번째 시도는 내가 아니라 상대방의 시도에서 비롯되었었다. 말을 굳이 안 걸어도 될 사이인 다른 과인 친구였는데, 우연히 대학교 근처에서 술자리를 하다 친구가 겹친다는 사소한 이유로 번호를 주고받을 수 있었다. 그냥 그렇게 친구가 늘고 끝날 줄 알았는데, 그 친구는 나와 친분을 쌓기를 원하는 듯한 말들을 지속해서 전송했고, 그 문자들에 나는 긴장과 흥분을 감추지 못했었다. 내 삶에 있어서 첫 번째가 되었던 데이트도 바로 그 친구와의 데이트였다. 그 날의 만남 이후 집에 돌아오며 대학교에 들어오면 연애를 할 수 있다는 말이 진짜였구나. 감사해요 선생님들!이라는 헛소리를 친구에게 내뱉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내 속에서 커져가는 마음과 달리, 그 친구의 행동은 그때부터 눈에 띄게 주춤거리기 시작했다. 예상치 못한 행동에 나는 당황했고, 해서는 안 될 행동을 해버렸다. 그래, 상대의 마음에 단 하나도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 고백을 해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 일이 있고 나서 다다음주쯤, 그 빌어먹을 남자 친구-심지어 같은과였다-를 사귄 그 친구의 모습을 강의실에서 볼 수 있었다. 비참함에 마신 술은 사람의 필름을 생각보다 빨리 끊어낼 수 있다는 걸 깨달은 건 바로 그날이었다.

 그리고 예상하듯이(?), 두 번째 시도는 다른 의미로 더 비참했다.


 

- 나는 이 글이 실제가 아니었으면 해 3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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