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水)

by 리로

건설이나 건축 분야에서 오래 일하다 보면 건물이라는 것이 사람의 몸과 아주 비슷하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철근과 철골구조물은 사람 신체의 뼈에 해당하고, 콘크리트는 근육에 해당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더불어 각종 유체가 지나 다니는 배관들이 핏줄에 해당하고, 여러 가지 전선이 묶여서 지나가는 배선 관로들이 사람 몸속의 신경에 해당하는 것을 느끼게 된다. 건물은 알고 보면 사람의 신체와 동일한 것.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사람의 신체가 건강을 유지하고 몸의 각 부분이 제대로 된 기능을 발휘하면서 원활하게 신진대사를 유지시키는 것은 결국 핏줄과 신경 같은 '선형(線形)의 전달체계'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건물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건물이 중력에 대항하여 땅 위에 버티고 서 있는 것은 뼈대의 구조적 힘이 큰 역할을 하지만, 그 건물이 원활하게 유지되고 각 공간이 제 기능을 발휘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액체나 기체 등이 흘러 다니는 배관의 체계 덕분인 것이다. 건물이라는 딱딱하고 무미건조한 이 고체덩어리가 알고 보면 가느다란 파이프와 배관 속을 이동하는 유체의 힘으로 유지된다는 사실.


나는 특히 여기에서 물(水)의 흐름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사람이 아프면 병원에 가야 하듯 건물이 아프면 진단을 해야 한다. 그것을 건설업계에서는 '하자보수'라는 단어로 칭하는데, 오랫동안 건축물 하자보수를 하던 사람을 붙잡고 물어보라, 그들을 끝없이 괴롭힌 가장 큰 골칫거리는 아마도 결로나 곰팡이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그 결로와 곰팡이가 바로 물과 관련되어 있다. 배관을 타고 돌아다니는 내부의 물이건, 지붕에서 비를 맞고 들어온 외부의 물이건 그놈의 액체, 즉 수분이 문제이다.


건축물에서 물(水)이라는 놈은 다양한 형태로 그 흔적을 드러낸다. 공기 중에 골고루 퍼져서 허공에 꽉 들어찬 습기, 조금이라도 수분의 흔적이 있는 곳에서 피어나는 곰팡이, 각종 배관이나 무수한 틈 사이로 물이 흘러나오는 누수, 안과 밖의 온도차이로 인하여 물질의 표면에 물방울이 생기는 결로, 그러한 결로 현상으로 표면이 얼어붙어버리는 성에, 조금씩 흘러나온 물이 차가운 겨울에 그 자리에서 얼어서 주변의 물질을 변형시키는 동파 등등 물은 꼬리가 길기도 하고 많기도 하다. 그 녀석은 눈에 보일 때도 있고 보이지 않을 때도 있다. 모기는 어쩌다 날아다니는 소리라도 나기나 하지만 물은 대부분 소리도 없다. 저승사자와도 같다.


어느 날 아파트 세대 천장 한가운데에서 물방울이 떨어진다는 연락이 온다. 알고 보니, 조명 틈새로 물이 떨어진다. 그리하여 조명을 뜯어낸다. 천장 속 안을 들여다보니 천장 위 슬라브 바닥에서 물방울이 떨어진다. 이제 그 물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찾아야 한다. 그 가능성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슬라브 위에 깔린 보일러 온수배관이 터져서 바닥으로 스며서 내려오는 것일 수도 있고, 가장 가까운 외부 샷시 쪽에서 빗물이 타고 들어와서 내려오는 것일 수도 있다. 혹시라도 에어컨 배관이 지나간다면 결로 같은 것 때문에 물방울이 생겨서 떨어진 것일 수도 있다. 혹은 외부와 내부의 온도차가 너무 심해서 외벽에서 생긴 결로가 너무 심해져 그것이 물로 생성되어 천정 안으로 흘러들어온 것일 수도 있다. 그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려면 천장을 죄다 해체해야 한다. 천장을 모두 들어낸다 하더라도 그것을 수리하고 물을 바로잡는 것은 너무도 험난한 과정이다. 출처를 알 수 없는 물로 인한 하자보수를 해본 사람들만이 아는 고통이랄까. 물은 아파트 하자의 최대 천적이다.


건축물에서 물을 잡는 사람은 천재다. 아니 어쩌면 신이 될지도 모른다. 탈모를 방지하는 약이나 살을 빼주는 약보다도 더욱 해결하기 어려운 주제. 불보다 무섭다는 물은 절대 다루기 쉬운 존재가 아니다. 그러므로 공간을 생각할 때에는 항상 물(水)의 방종(放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물을 포획하기 위해서는 구멍이 나지 않은 그릇을 준비할 생각을 하면 안된다. 물이 왜 생기는지 그 원한을 해결해주어야 한다. 하긴 사람도 마찬가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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