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風)

by 리로

건축에서 바람(風)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아는 것은, 식물을 재배하는 데 있어서 바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아는 것과 비슷하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눈에 보이는 것을 떠밀어 데려가는 존재. 삼라만상에는 참으로 여러 가지 현상이 있지만 바람이라는 녀석은 소리, 파동, 빛과 같이 마치 유령처럼 땅 위에 떠다니며 이곳저곳을 간섭하는 기이한 체계이다. 사실 물로 인해서 생기는 문제도 이 또한 바람이 해결해 주는 것이니, 인간사 어디에서나 눈에 보이는 것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불보다 무서운 물을 잡는 것이 바람이라니, 알고 보면 자연현상의 최 상위에는 공기, 즉 비어있음(空)이 자리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없는 것의 자리란 얼마나 촘촘한가!


바람은 무엇이고 공기는 무엇인가. 공기는 그것이 비어있는 형태를 말하는 것이고, 바람은 그 부피가 압력을 받아 이리저리 움직이는 운동을 말한다. 그러므로 바람은 재료(物)가 아니며 움직임(動)인 것이다. 우리가 바람의 존재를 아는 것은 깃발의 펄럭임 때문이지 바람을 실제로 볼 수 있기 때문이 아니다.


요리를 오래 해본 사람은 소금이 어떻게 짠맛을 내는지 알게 된다. 소금은 농도가 높은 결정체에서 농도가 낮은 물로 퍼져나간다.


운동을 오래 해본 사람 또한 수분이 어떻게 흡수되는지 그 삼투의 원리를 알게 된다. 물은 용질농도가 낮은 물 그 자체에서, 용질 농도가 너무도 높은 체세포로 퍼져나간다.


빨래를 자주 해본 사람은 어떻게 빨래가 잘 마르는지 그 원리를 알게 된다. 빨래의 수분은 습도가 높은 곳에서 습도가 낮은 곳으로 이동한다.


하지만, 극한의 조건에서 빨래를 해본 사람은 악조건 속에서도 어떻게 빨래가 잘 마르는지 더 잘 알고 있다. 빨래의 수분은 습도의 여부를 따지기 이전에, 날씨와 계절의 종류를 고려하기 이전에,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서 잘 마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다.


나는 바람(風)의 흐름(通)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고여있는 물은 부패하게 마련이지만, 흐르는 물은 썩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바람이 통하는 곳에는 곰팡이기 끼지 않지만, 바람이 통하지 않는 곳은 썩고 곰팡이가 생긴다. 그만큼 공기의 흐름이라는 것이 건축에서 중요하다는 뜻이다.


물이라는 것도 사람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사실 바람은 더욱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아파트를 설계할 때 통풍이나 공조에 대한 완벽한 계획을 하기 힘들다. 거꾸로 본다면, 결로와 곰팡이를 잘 해결하는 장인들은 바람의 길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인 것이다. 물을 손에 단단히 움켜쥐고 바람을 몰고 다니는 이. 그 이들이 바로 실력 있는 설계자들이다.


창문이 모두 열려 있고, 맞통풍이 설계된 집인데도 불구하고 어느 한 구석에서 끊임없이 곰팡이가 생겨난다면 그곳은 바람이 다니지 않는 길이라는 뜻이다. 보통 모서리나 구석에 그러한 부분이 생긴다. 그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벽체가 외기에 면해 있는지, 면해 있다면 단열재를 시공했는지, 단열재를 시공했다면 어떠한 방법으로 시공했는지 따져보아야 한다. 곰팡이의 숙주는 결로이고 결로는 내외부 온도차 때문에 생기는 것이니 내외부의 온도차이를 일정 범위 이내로 축소해 주는 역할을 못하는 단열재를 시공한 것이라면 이는 설계자의 오류이다. 물론 온도차이라는 것은 계절과 방향, 시간, 고도, 차이에 따라서 모두 다른 양상으로 나타난다. 유령과 같은 존재처럼 집 안팎을 감싸고도는 온도의 변화를 단열재 하나로 해결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사용자가 수시로 공기를 순환시키고 바람의 길을 만들어주는 노력도 반드시 필요하다.


책상에서 오래 그림을 그려본 사람보다는, 공간 이곳저곳을 찾아다니면서 부지런히 옷관리를 하거나 주기적으로 청소를 해본 사람만이 바람의 길을 안다. 그것은 밥을 지을 때 쌀에 들이붓는 물의 양을 가늠하는 노련한 주부의 눈썰미 같은 것이다. 바람이 다니지 않는 길은 밀도가 높아 후덥지근한 기운이 올라온다. 내가 그곳으로 들어가면 숨어있던 범인이 사방으로 흩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고여서 뭉쳐있는 공기는 마치 몰래 어둠 속에 숨어든 벌레들의 무리 같다. 혼비백산의 공기의 표정을 본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집에서 곰팡이를 만들지 않을 것이다.


한 맺힌 바람의 원한을 목격한 사람이라면, 습한 곳에서도 빨래가 얼마나 빠른 속도로 마르는지 경험하였을 것이다. 날이 건조한 가을이라도 앞뒤로 문을 닫아 놓으면 습기라는 녀석은 웬만해서 자신이 붙들어 놓은 물질을 놓아주지 않는다. 하지만, 바람을 계속 흐르도록 해주면 마치 행진하는 군대가 흙바닥을 무자비하게 짓이겨 놓는 것처럼, 습기를 가만두지 않는다. 지독한 녀석이 것이다


중요한 것은 호들갑이나 으름장이 아니다. 오로지 흐름이다. 내 앞으로 그 무엇이건 지나가게 해주어야 한다. 시간도 내 인생에서 지나가는 것이고, 추억도 지나가는 것이고, 기쁨과 고통도 모두 지나가는 것이다. 인간은 두 다리로 서서 자신의 육신 앞으로 재빠르게 지나가는 거대한 수레바퀴를 구경할 뿐. 하지만 모든 것을 그냥 스쳐 지나가게 하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동 가득한가.


머물게 하지 말고, 가두어 두지 말고, 항상 이동하며 흐르게 하자. 물이건 바람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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