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光)

by 리로

빛은 입자인가 파동인가? 양자역학의 인기와 더불어 빛은 두 얼굴의 야누스가 된다. 사람이 쳐다보지 않으면 파동으로 요동친다. 사람이 쳐다보면 입자로 행진한다. 본인이 원하면 파동이 되었다가, 삐치면 입자로 바뀐다. 이런 새침떼기를 봤나! 참으로 인간다운 존재로다.


우리가 어떠한 사물을 관찰할 때 그 사물이 내는 컬러는 원래 그 사물이 가지고 있던 색이 아니다. 인간이 어떠한 사물의 색(色)을 감지하는 기작(機作)은 빛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 어떠한 물체건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색은 없다. 모든 물질은 무색이다. 하지만, 해당 물질이 가시광선 중에서 특별한 색을 가진 광선을 반사하는 요소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빛이 물질에 부딪혀 반사되면 인간이 그 빛을 보고 색을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색(色)의 한자어 뜻은 빛이다. 연탄은 대부분의 빛을 반사하지 못하고 흡수하는 성분을 표면에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검게 느낀다. 사과는 가시광선 중에서 붉은색의 빛을 반사해 내는 물질을 표면에 도포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사과를 붉은 것이라고 느낀다. 한마디로 색이란 누군가 날려 보낸 종이비행기 같은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누가 날려보낸 종이비행기인가?


건축에서 빛은 방사(放射)의 권력을 가진 마법사의 역할을 한다.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무언가를 사정없이 쏘아 보내는 무자비함! 그것은 바람도 물도, 심지어 불도 해내지 못한 독재이다. 빛은 완전하고 일방적인 횡포다. 빛에 한번 당하면 속수무책이다. 강렬한 태양빛에 협박을 당한 뫼르소가 칼을 꺼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공간의 색을 결정하려면 빛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하루종일 시시각각 다른 빛이 들어오는 공간의 인테리어는 색을 결정하기 힘들다. 그러한 곳은 형태를 부여한 다음에 베리에이션으로 승부해야 한다. 그래서 작품의 고립을 요구하는 대부분의 미술전시관에서는 빛이 작품을 방해하도록 놔두지 않도록 창을 내지 않는 것이다. 자신이 애정을 가지고 있는 공간이 어떠한 시간에 어떠한 빛과 협상을 벌이는지를 아는 것이 건축, 인테리어의 기본이다.


한편 빛은 수줍은 제자를 대동하고 있는 아티스트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대부분 빛의 존재를 그림자를 통해서 확인하게 된다. 그림자란 빛의 충실한 제자이자 학자이다. 사물의 입체성은 빛이 아닌 그림자가 설명해 준다. 표면의 질감도, 공간의 깊이도, 중력의 방향도, 크기도, 방향도 모두 그림자의 몫이다. 그리고 스승이라 부르는 빛의 잠재력까지도 그림자가 모두 대신 표현하지 않는가. 그러한 제자를 둔 스승은 얼마나 부러운지!


건축, 인테리어에서 빛은 그림자의 형태로 걸어온다. 사뿐사뿐 움직이기도 하고, 위압을 주면서 내리 누르기도 한다. 그것은 마치 굽이치는 파도 같아서 때로는 사정없이 몰아치고, 때로는 잔잔하게 일상을 떠안는다. 공간에 적용할 마감재가 어떠한 빛을 반사해 내는지, 그 빛을 얼마나 반사해 내는지 관조하라. 사물이 빛을 어떠한 각도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어떠한 형상으로 그림자를 생산해 내는지 응시하라.


스승과 제자의 현란하고도 성실한 노력. 그러한 배려를 받아들여야, 자신이 몸담고 있는 공간의 표정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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