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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목 Mar 14. 2019

공항에서 쓴 어떤 편지

몇 번 안 되는 타이밍

   

   편지 쓰기에 좋은 장소나 분위기가 있습니다. 대합실이 그중 하나입니다. 버스나 기차 혹은 비행기를 기다리는 곳이 대합실인데 요즘에는 버스나 기차를 기다리는 일은 많지 않습니다. 예약시스템이 잘 되어 있기도 하고 기다림이 필요 없을 만큼 시간을 잘 맞추어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비행기는 출발을 기다리는 때가 빈번히 있습니다. 기다리는 일 그리고 그 시간에 편지 쓰는 것은 공항 대합실이 제격입니다. 이런저런 체크할 일들과 검사나 심사 등이 끝나면 비행기 탑승 시간까지 얼마간의 시간이 남습니다. 이 시간을 사용하는 것은 각자 나름입니다.


    

   출국 심사를 마치고 탑승 게이트 근처로 이동해 기다리는 시간만 남으면 커피 한 잔을 들고 앉을 만한 자리를 찾습니다. 좋아하는 곳은 여러 개가 연결된 의자의 끝자리입니다. 한쪽이 열려있어 드나들거나 다리꼬기가 쉽습니다. 의자 옆에 선반이 붙어 있는 곳이면 커피나 가방을 놔둘 수 있어 최선입니다. 마음에 드는 자리를 찾아 등에 매고 있던 가방을 앞으로 안으면서 의자 깊숙이 궁둥이를 밀어 넣으면 저절로 심호흡과 함께 얼굴에 웃음이 번집니다.



  자리에 앉아 홀짝거리기 알맞게 식어가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면 시험을 마치고 교실을 나서는 것처럼 마음이 편합니다. 여행 중에 연로하신 아버지 어머니에게 몇 번 편지를 썼는데 그 자리는 모두 공항 대합실이었습니다. 막상 이곳저곳을 돌아다닐 때는 부모님 생각이 나지 않은데 떠나기 전 탑승을 기다리는 시간에는 한 번씩 떠오릅니다. 그저 잘 다녀오겠다는 말, 건강하시고 평안하시라는 이야기를 씁니다. 대합실의 적당한 소음과 먼지 섞인 공기 속에서 몇 줄 쓰다 보면 단단했던 것은 물러지기 시작하고 말랐던 것은 조금씩 젖어 갑니다. 이렇게 서서히 여행 모드로 전환될 때가 아버지 어머니에게 편지를 쓸 수 있는 몇 번 안 되는 타이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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