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헤어질 결심'을 수차례 끊어서 보았다. 영화 한 편을 이어서 볼 시간적 여유가 내 삶에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본건, 주인공 남녀가 서로를 놓을 수 없듯이 내게 이 영화도 그러했다. 긴 시간 동안 드문드문 보아도 금세 몰입할 수 있는 영화였다.
영화의 주인공 서래와 해준의 관계, 즉 용의자와 형사 사이에는 사랑이 싹 틀 틈이 없어 보였다. 서래는 남편을 죽인 용의자로 지목된 상태이고, 해준은 유부남이다. 해준은 잠복수사 과정에서 서래에 대한 마음이 커져가지만 애써 외면한다. 사건을 덮어버리는 해준. 사랑 앞에서 붕괴된 해준의 모습을 보며 서래는 사랑을 느끼지만 해준은 담당 지역을 떠난다.
해준은 눈에 안약을 넣는 모습을 자주 보이고 있다. 어째 그의 눈 또한 제대로 볼 수 없음을 암시하고 있는 듯하다. 서래는 해준에게 살인 사건 정도는 일어나야 만날 수 있는 사이라 하며 해준의 관할 이포-안개 자욱한 도시에 다시 나타난다. 이번에는 서래의 두 번째 남편이 죽었다. 해준의 아내는 해준보다 보는 눈이 뛰어났다. 즉각 남편의 불륜을 눈치챈다.
서래는 그에게 미해결 문제로 남기로 한다. 그리고 영원히 찾을 수 없는 곳에 꽁꽁 숨어버린다. 한 사람의 사랑이 끝날 때, 다른 사람의 사랑이 시작되었고, 다른 사람의 사랑이 헤어질 결심을 했을 때 비로소 상대의 사랑이 시작되었다. 엇박자의 사랑은 흔하지만, 영원한 사랑은 흔치 않다. 그러한 점에서 서래와 해준의 사랑은 현실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희박하다.
안갯속을 걸은 두 사람은 서로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불분명한 사이이고, 정체를 드러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에 반해 그 둘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모든 것을 제대로 볼 수 있었고, 그들이 드러내놓고 느낄 수 없었던 강렬한 떨림과 울림은 관객이 모조리 떠안을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