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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규인 Jun 09. 2023

수박 나물

하얀 부분>빨간 부분

잘 익은 수박을 만나는 건 쉽지 않다. 꼭지가 싱싱한 놈을 고른다던지 통통 두르려 보기도 하지만 소용이 없다. 갈라 보기 전까진 그 속을 알 수가 없으니 답답할 따름이다.  맛없는 수박을 억지로 먹어 치우고 그 다음번 수박을 살 때는 "수박 좀 골라주세요. 대신 맛없으면 바꿔 주셔야 해요." 가끔 마트에 가서 으름장을 놓으며 질 좋은 수박에 대한 선택권과 책임을 마트 사장님께 넘기기도 한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수박의 빨간 부분에 대한 집착이 덜하게 되었다. 어릴 적 엄마가 해주던 수박 나물을 무쳐 먹은 뒤였던 거 같다.


수박 나물은 수박의 하얀 껍질 부분을 어슷 썰기를 해서 만든다. 마치 오이 어슷 썰기를 해서 만든 오이 무침과 비슷한 모양이다. 검지 손가락 길이에 두께는 2미리 정도로 썰고, 몇 시간 소금에 재어둔다. 그럼 물이 잔뜩 생기는데 다 따라 버리고 절여놓은 수박을 꼭 짜서 수분을 빼어낸다. 그럼 꼬들꼬들한 식감만 남는다. 여름에 맛보는 오이지 느낌이랄까. 수박 나물을 씹을 때 아작아작 소리가 난다. 거기에 고춧가루, 다진 마늘, 설탕, 식초를 넣고 조물조물 무치고 통깨를 뿌리면 끝이다.


아이가 학교에서 오기 전 간식으로 수박을 썰어두고, 남편이 저녁  후식으로 먹을 수박까지 미리 잔뜩 썰었다. 덕분에 수박의 하얀 껍질 부분이 수북이 쌓였다. 다른 집에서는 음식물 쓰레기로 버려질 수도 있는 이 부분이 우리 집에서는 저녁 반찬이 될 예정이다. 이번 수박은 약간 설익긴 했지만 하얀 부분 때문에 모두 용서가 된다. 하얀 수박 무침 때문에 당장 먹지도 않을 수박을 썰어놓기도 하며 웃음이 나온다. 뭐 수박 껍질에도 영양소가 많이 있다고 하니 주객이 전도된 꼴은 아닌듯하다. 아무렴 어떠랴. 이제 난 수박보다 수박 나물이 좋은 걸. 저녁에 먹을 새콤달콤 수박 나물 생각에 벌써부터 침이 고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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