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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규인 Jun 13. 2023

머리빗으로 고민을 쓸다

 택배 상자가 도착하자마자 상자를 열었다. 행동이 빠릿빠릿하지도 않아 보통은 한참을 현관에 상자를 뒀다가 푸를 때가 많은데, 이번에는 상자 안의 물건이 궁금했다. 포장을 얼마나 꼼꼼하게 했는지 커다란 상자를 푸르고 둘둘 말려있는 완충제를 푸르고 또 작은 상자를 빼내고서야 머리빗을 손에 쥘 수 있었다. 사실 짧은 단발머리에는 딱히 빗이 필요하지 않다. 헤어드라이어로 말릴 때에 손으로 쓱쓱 넘기면 금방 마르고, 머리가 엉킬 염려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언젠가부터 좋은 빗을 하나 사고 싶었다.


곧바로  정수리에서 목덜미까지 빗을 내리고 귀 뒤에서 목덜미까지 두피 골고루 자극이 되도록 빗을 쓱쓱 빗어 내렸다. 워낙 크기가 큰 빗이라서 한 번만 쓸어내려도 머리의 1/3이 빗어진다. 빗질을 하면 할수록 뭔가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빗질을 하면서 깨달았다. 머리를 단정하게 하려는 목적보다는 머릿속에 엉켜있는 실타래를 풀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머릿속이 복잡할 때 눈앞에 보이는 집안 정리정돈을 하는 심리와 비슷하다고 할까.


 머리빗으로 실컷 고민을 쓸었다. 머리가 조금은 시원해진 느낌이다. 후드득 빠진  머리카락들과 떨어진 고민의 흔적들을 모두 빨아드리길 바라는 마음으로 청소기 버튼을 누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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