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이판, 욕심을 쏙 뺀 여행
아이와 해외여행 입문 편
아기가 태어나면 어떤 세상이 펼쳐질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아이 출산과 동시에 수면시간이 줄어들고, 외출도 자유롭지 못하고, 삶에 변수가 많아졌다. 그리고 여행을 자유롭게 할 수 없다는 게 큰 단점이었다. 아기 짐이 어찌나 많은 지 명절에 시댁이라도 가려하면 기저귀에 분유에 아기 짐을 싸다가 지치기 일쑤였다. 그런데 하물며 여행은 언감생심 꿈도 못 꿨다. 그나마 국내 여행은 여름휴가로 간간히 갔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물론 순둥이를 둔 부모들은 아기를 비행기 베시넷에 태우고 잘도 다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우리 아기는 그리 순하지 않았다. 낯선 곳에 가면 빽빽 울기 일쑤였고, 잠투정도 심했다. 이런 아기를 데리고 비행기에 탔다가 울기라도 한다면 민폐일 테고 그 뒷감당은 오로시 내가 해야 하는데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차라리 집에서 텔레비전으로 여행 프로그램을 보는 게 나았다. 시간이 흘러 아이가 태어난 지 6년째 아이가 7살이 되던 해였다.
"나도 해외여행 가고 싶어요."
해외여행을 다녀온 아이 친구들이 유치원에서 사탕이나 초콜릿을 나눠준 거다. 아이는 어디라도 좋으니 우리나라만 아니면 된다고 했다. 우리 가족은 어디를 갈지 고민하다가 하루를 다 보냈다. 아무래도 유치원생과 함께 갈 곳은 휴양지가 낫겠다 싶었다. 동남아 일대를 다 돌아 하와이까지 갔다가 결국 후보지가 괌이나 사이판으로 좁혀졌다. 괌은 이미 다녀온 터라 사이판으로 결정되었다. 우리 가족은 그렇게 첫 해외여행을 사이판으로 떠나게 되었다.
사이판은 규모가 작았다. 산도 낮고 건물도 높지 않았다. 길도 넓지 않고 사람도 많지 않았다. 게다가 쇼핑센터도 변변치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그런 점이 마음에 들었다. 예전 같으면 더 많은 곳을 보고 더 맛있는 것을 먹고 더더더 욕심으로 가득 찬 여행을 꿈꿨을 텐데. 이번에는 달랐다. 섬에서 갈 곳은 제한되어 있었고, 꼭 가고 싶은 곳을 정하니 욕심이 비워진 곳에 여유가 자리 잡고 들어와 있었다. 아이 덕분에 제대로 놀 수 있었다. 리조트 안 수영장에서 물놀이만으로도 아이는 깔깔대며 웃었고, 수영장 바로 앞 모래사장에서 모래놀이를 실컷 했으며, 바다에서 해가 질 때까지 놀기도 했다. 수영장 놀이시설도 바다도 낮아 위험하지도 않으니 어른 또한 마음 편히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좀 더 예쁜 바다를 보려고 섬투어를 가기도 했다. 배를 타고 얼마 가지 않아 도착한 마나가하섬은 에메랄드 빛 바다로 둘러싸여있었다. 모래사장의 모래는 하얗고 곱디 고왔다. 비록 아이가 스노클링을 어려워해서 바닷속을 제대로 볼 수는 없었지만 어찌나 물이 투명하던지 굳이 머리를 물에 담그지 않고서도 물고기들이 노니는 걸 볼 수 있을 정도였다. 아이의 시선에서는 이 정도로도 꽤 큰 세상이었으리라. 그저 아이와 함께 여행을 통해서 새로운 세상을 맛본 것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이러한 점에서 아이와 함께 하는 해외여행 입문지로 사이판이 제격이라 생각했다.
물놀이 후에 맛보는 한식은 꿀맛이었으니. 아이는 사이판 최고의 음식을 햇반과 라면을 꼽았다. 우리 가족은 호텔방에 돌아와 은박 돗자리를 깔고 마치 캠핑을 하는 냥 먹었다. 결국 호텔 뷔페를 제치고 이날 식사가 잊지 못할 최고의 식사가 되었다. 아이의 최고는 돈과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그저 즐겁고 행복하고 맛있는 기억이 가장 베스트인 것이다. 아이를 낳고 잃은 것도 많지만 아이를 통해 얻은 것도 많다. 어른들은 행복이 가까이에 있어도 대부분 알아채지 못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다르다. 별 거 아닌 거로 스스로 행복을 만들어가니 그와 동시에 쉽게 웃음도 뒤따르게 된다. 어른도 욕심을 줄이고 세상을 대한다면 좀 더 웃을 일이 많아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