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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규인 Oct 31. 2023

옆구리 터진 김밥 같은 날

나는 결혼 후 김밥을 매주 고 있다. 남편의 최애 음식이 바로 김밥이기 때문이다. 남편의 장보기에는 항상 김밥 재료가 빠지지 않고 들어간다. 십몇 년 동안 매주 먹으면 질릴 법도 한데 주말이면 어김없이 '김밥'을 외친다. 부부는 닮는다 했던가. 결혼 전에는 소풍날에만 먹던 김밥을 매주 먹다 보니, 혼자 있을 때도 김밥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날이 늘고 있다. 물론 혼자 먹을 때는 직접 만들지 않고 돈을 주고 사 먹는다.


요즘 내 최애 김밥은 와사비 김밥이다. 와사비 김밥은 새우튀김에 알싸한 와사비가 버무려져 새우튀김의 느끼함을 확 잡아준다. 가끔 와사비가 듬뿍 들어간 부분에 코끝이 찡할 정도로 아리지만 이 자극적인 맛에 한 번 빠져들어 매번 와사비 김밥을 선택하게 된다. 김밥은 재료에 따라 참 다양하게 변신한다. 참치김밥, 소고기김밥, 김치김밥 등. 요즘엔 밥 대신 달걀을 넣은 키토김밥도 건강식으로 등장했다. 밥을 하기 귀찮을 때 김밥 한 줄 사 오면 식사가 해결되고, 시간이 없을 때 짧은 시간 안에 식사를 때우기에도 제격이다.


하지만 김밥을 직접 만들어야 할 때엔 이야기가 달라진다. 속 재료를 하나하나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엉을 삶아서 조리고, 시금치를 데쳐서 무치고, 당근을 채를 썰어 볶으려면 시간이 꽤 소요된다. 그 외에도 밥, 달걀지단, 단무지, 햄, 맛살을 준비해야 한다. 말아 놓으면 별거 없어 보여도 들어가는 각 재료는 조리법이 제각각이고 가지 수가 꽤 많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일 중요한 건 김에 재료를 몽땅 올려서 잘 말아내는 거다. 


김밥을 보면서 생각한다. 내가 만들어 내고 있는 인생의 재료들은 과연 무엇을 만들기 위해 이리도 지지고 볶고 있는 건가. 과연 김밥을 만들 수 있도록 재료들을 갖추긴 한 건가. 재료만 다 준비하고 정작 중요한 밥을 짓지 않은 건 아닌가. (사실 가끔 김밥을 만들 때 밥이 없어서 황당해했던 적이 있다) 아니면 김밥을 만들다 하고서는 미리 준비하지 않은 건 아닌가.(이런 경우도 있어서 조미김으로 꼬마김밥을 만들기도 했다) 아니면 김밥 마는 방법을 제대로 몰라서 계속 옆구리만 터트리고 있는 건 아닌지.


십몇년을 김밥을 말다 보니 이제 김발이 없어도 맨손으로 척척 잘 말아낸다. 옆구리가 터지는 김밥 실패율도 거의 0프로에 가깝다. 그래, 김밥 제대로 마는데 오래 걸렸듯이, 오랜 시간 동안 공을 들이다 보면 뭔가 이루긴 하겠지. 오늘도 옆구리 터진 김밥 같은 날이지만 다시 마음을 다잡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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