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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규인 Nov 03. 2023

남다른 붉은 점

뱃속 아기가 힘겹게 세상으로 나왔다. 난산이었다. 나는 기진맥진했고, 탯줄을 두 바퀴나 감고 나온 아기는 집중치료실로 보내졌다. 탯줄을 자르려고 대기 중이던 남편은 가위질을 해보지도 못한 채 아기를 따라가 버리고, 나만 분만실에 덩그러니 남았다. 아기는 괜찮은 걸까? 다른 산모들은 출산 직후에 아기를 품에 안아 젖을 물리기도 하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던데. 상상했던 모습과는 다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병실로 옮겨졌고 한참이 흐른 뒤에 남편이 나타났다. 아기는 건강하다고 했다. 그제야 숨을 몰아 내쉬었다. 출산 후 꼼짝도 못 하는 날 위해 남편이 아기의 사진을 휴대폰으로 찍어왔다. 아기의 얼굴이 담긴 사진을 보고서  아연질색했다.


아기의 이마에는 커다란 붉은 점이 박혀 있었다. 뱃속에서 갓 나와서 그런지 안 그래도 핏덩이 같은 얼굴에 붉은 점은 너무 선명해서 유독 도드라져 보였다. 낯설지 않은 얼굴의 점. 내 얼굴에도 그와 비슷한 점이 있다. 사실 어렸을 적에는 내 얼굴에 붉은 점이 있다는 사실을 잘 몰랐었다. 거울을 보며 눈에 보였을 법한데 스스로도 별생각 없었고, 그걸 보고 뭐라는 친구도 없었다. 그러다가 그 점이 약간 신경 쓰인 건 고등학교 때였다.

"책상에서 엎드려 잤구나. 선생님이 잘 알지? 호호호."

수업 시간에 들어온 교과 선생님은 내 얼굴을 보며 웃었다. 사실 내 이마에 있는 붉은 점은 책상에 엎드려 자고 나면 이마에 남는 자국으로 오해당하기 충분했다.

"선생님, 얜 원래 이래요."

짝꿍이 내 대신 대답했다.

선생님은 자신이 내뱉은 말이 마음에 걸렸는지 쉬는 시간에 날 복도로 불렀다.

"나중에 어른이 돼서 레이저 치료하면 없어지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라. 미안하다."

난 아무렇지 않은데 상대가 미안해하니까 부끄러워하고 신경 써야 하는 일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사실 이 점을 가지고 놀리는 친구들이  없었다. 다만 이마 한 복판에 붉은 점을 보고 친구들은 신호등 같다고 했다. 평소에는 괜찮다가 화가 나면 이마에 붉은 점이 더 붉게 변한다는 거다. 신호등처럼 빨간불이 들어오면 내가 화가 났다는 증거니까 조심해야 한다는 뜻에서 그렇게 말할 뿐이었다. 어른이 되고서도 레이저 치료를 받을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결국  피부과 근처도 가지 않았다.

그렇게 살다가 한 번 더 점에 대해서 생각한 때가 있었다. 선을 본 남자의 입에서 점이 언급된 거다. 그때 내 점이 약점이 될 수도 있다는 걸 한참을 곱씹어 보게 되었다. 그래도 나는 이 점을 없애버리지 않았다. 그 남자를 다시 만나지 않으면 될 뿐이었다. 내 눈에 거슬리지 않으면 되지 뭐.


내 점은 아무렇지 않았거늘 아이의 이마에 있는 붉은 점은 왜 이리 신경 쓰이는 걸까. 좋은 것만 물려주고 싶었는데, 하필 왜 이런 걸 닮았을까. 남편의 외모를 빼다 박았는데 완전 붕어빵인데 이마의 점만 날 닮을 게 뭐람. 하지만 아이는 점을 대하는 마음가짐도 날 닮았는지 별로 개의치 않아 했다. "이마가 왜 빨개?"라는 친구들의 물음에 "이건 연어반이라는 거야"라고 당당하게 대답한다. 그래, 그럼 되는 거야. 아이의 태도에 걱정했던 내 마음이 사르르 녹는다. 내 얼굴의 점이 점점 옅어졌듯 아이의 점도 시간이 흐르면서 붉은기가 점점 가라앉으리라. 나는 잠을 곤히 자고 있는 아이의 이마를 쓸어내리며 읊조렸다.

"엄마가 괜한 걱정을 했구나."

아이가 성장할수록 나도 하나씩 배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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