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경사 바틀비>는 <모비딕>으로 유명한 허먼 멜빌의 중편 소설이다. 소설의 제목을 처음 듣고는 사전부터 찾았다. 필경사라는 단어가 생경했기 때문이다. 필경사(筆耕士)는 '글씨 쓰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을 뜻한다. 이 소설의 배경은 월가에 위치한 법률 사무소이다. 바틀비는 이 법률 사무소에 취직하게 된다. 처음에는 필사 일을 열심히 했다. 며칠 가지 않아 바틀비는 일을 시키는 고용주에게 같은 말을 반복한다.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I would prefer not to.)”
이 말이 처음 등장했을 때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래서 몇 번을 꼽씹으며 중얼거렸다. 약간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아무래도 영어의 본뜻을 훼손하지 않으려 번역한 게 아닐까 싶다. 고용인 바틀비는 자신의 고용주의 지시를 따르지 않겠다는 말을 당당하게 한다. 사실 고용주 변호사는 작가는 바틀비를 통해 미국 자본주의 사회의 부당함을 보여주려 한 것 같다. 과도한 업무를 따를 수밖에 없는 고용인이 업무 지시를 한 고용주에게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라는 선택권은 사이다 같은 발언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금세 마음이 태세 전환했다. 바틀비의 앞날이 걱정되어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책장을 넘길 수밖에 없었다. 과연 바틀비는 이 월가에서 계속 일을 지속할 수 있을 것인가?
하루에도 몇 번씩 선택의 기로에 놓이고는 한다. 그럴 때마다 주체적으로 선택을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렇지 않을 때도 많다. 하고 싶지 않은 일도 어쩔 수 없이 해야 할 때도 많다. 이는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 아기 위해 필수적인 선택권의 포기라고나 할까. 고용주의 지시를 거부한 채 일을 하지 않은 바틀비는 더 이상 고용주에게 불필요한 존재임이 분명하다. 바틀비의 고용주는 말한다."인색하고 편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끊임없이 긁어내면 그들보다 관대한 사람들이 품은 최선의 결의마저 결국은 지치게 마련이다."(P. 72) 고용인의 부당함을 알리지도 않은 채 오로지 같은 말만 반복하는 바틀비는 사회 부적응자로 보이기도 한다.
추정이기는 하나 바틀비가 법률 사무소에서 일을 하기 전에 우편취급소에서 '사서'를 취급하는 일했었다고 나온다. '사서'는 '죽은 편지, 즉 배달 불가 우편물'을 뜻한다. 불필요한 우편물은 소각되어 버린다. 분명 작성자가 있지만 수취인이 없다는 이유로 버려질 수밖에 없는 편지가 마치 바틀비와 닮은 것 같아 씁쓸했다. 소설은 탄식을 하며 끝을 맺는다. "아, 바틀비여! 아, 인류여!" 바틀비를 사회에서 몰아낸 것은 바틀비 자신인가. 아니면 인류인가. 작가는 독자에게 숙제를 남긴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