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혜영 작가의 <포도밭 묘지>는 2022년 김승옥 문학상에서 대상을 받은 작품이다. 상고 출산의 한오, 수영, 윤주, 그리고 '나'(화자)의 삶은 제목에서 풍기는 분위기처럼 녹록지 않다. 수영과 나(화자)는 백화점에서 멸시를 받으며 일을 하고, 회사에서 실수를 저지른 윤주는 그 일을 계기로 열세 살이나 많은 차장과 결혼을 하고 회사를 관둔다. 그나마 나은 삶을 사는 것처럼 보였던 한오는 은행일을 하며 대학 공부를 병행하지만 결국 그가 숨을 거둔 곳은 휴게실도 없는 비좁은 탈의실 소파였다.
"안치단 앞에 서면 다른 사람의 유골함만 보였다. (...) 한오는 맨 아래 칸에 있어서 사진을 보려면 거의 눕듯이 해야 했다. 올해는 아예 돗자리를 펴고 누워서 한오를 보고 오기로 했었다."(pp.29-30)
"곳곳에 버려진 비닐 무더기를 보자 고등학교 교실에 두고 온 방석이 생각났다. 솜이 다 꺼진 그 방석은 누가 버렸을까. 그 시절 우리는 모두 비슷한 모양의 방석을 깔고 가까운 자리에 앉았다. 인생의 어느 시기가 되면 알아서 다른 자리를 찾아갈 줄 알았다. 그때 우리가 가능하리라 여겼던 인생은 다 어디로 갔을까. 애초에 그런 것이 있기는 했을까."(p.34)
한오의 기일날, 수영, 윤주, '나'는 포도밭 옆을 지나가게 되는데, 그곳에는 제 모양을 갖춘 포도는 찾아볼 수 없다. 포도는 이미 바짝 말라 '건포도'의 상태로 매달려 있었다. 작가는 말한다. "죽어가면서도 햇빛을 받은 탓인지 마른 가지와 나뭇잎에서 희미하게 포도의 단내가 났다."(p.34) 곤두박질친 것만 같은 한오의 죽음, 그를 상징하기라도 하듯, 눈앞에 펼쳐진 포도밭 묘지, 말라비틀어진 건포도 사이에서 희미하게 풍기는 포도의 단내는 남은 자들에게 억지 용기를 종용하는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