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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규인 Aug 22. 2021

겁쟁이 아줌마

밤길이 무서워

해가 지고 어둠이 깔린 동네 길은 참 낯설다. 전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매일 걷던 길인데 아이를 낳고 생체리듬이 바뀌어 주로 낮 시간대에 활동하다 보니 밤이 어색하다. 아이가 감기로 유치원을 결석하여 하루 종일 집에 있다가 남편이 퇴근해서 집에 오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난 가방을 챙겨 집을 나섰다. 낮에는 왁자지껄 시끄럽기 그지없는 놀이터가 고요했다. 자전거며 킥보드가 점령하여 정신없던 도로와 인도도 잠잠했다. 더군다나 비까지 부슬부슬 내리고 있어서 아파트 단지 내에 산책하는 사람도 없었다. 소음이 사라진 동네길을 걷고 있는데 평화롭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다. 내가 밤에 나갈 때면 남편은 조심하라는 말을 덧붙이곤 한다.


난 겁이 많은 편이다. 전에 아파트 단지에서 친구를 기다리고 있는데 건너편에 차 한 대가 정차하더니 운전자는 내게 뒤에 타라는 손짓을 했다. 순간 주위를 살펴보았지만 도움을 청할 이가 없어 아무 말도 못 하고 얼음이 되었다. 조금 뒤 친구가 왔고 아까 있었던 일을 말하며 동네에서 조심해야겠다는 말을 했다. 집에 돌아오자 남편은 왜 아까 모른척했냐고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괴한으로 오해했던 사람은 바로 남편이었던 것이다. 어둠 속에서 겁을 미리 장착한 나는 남편도 못 알아본 것이다. 양쪽 눈 시력이 무려 1.2나 되는데도 말이다.


길을 걷다 문득 그때의 에피소드가 떠올라 피식 웃었다. 그 길로 헬스장에 가서 1시간 정도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어둠이 더욱 짙어졌다. 잔뜩 긴장한 채로 빠른 발걸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약간의 체력을 비축하며 혹여 무슨 일이 생기면 냅다 뛰어야지 생각했다. 아줌마가 되면 세상 무서울 게 없을 줄 알았는데 난 아직도 겁쟁이 아줌마이다. 언제쯤이면 인생의 길도 밤길도 용감하고 씩씩하게 걷게 될까?



이 글을 작성한 지 몇 년 지났는데 점점 더 새가슴이 되었네요. 이제는 <오즈의 마법사>의 사자처럼 제 안에 있는 용기를 발견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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