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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똥싸는 작가 Oct 16. 2018

 내 공부는 내 거고 네 공부는 내 거 아니잖아.

<아들! 엄마 좀 나갔다올게 >9번째 이야기


내 공부는 내 거고, 네 공부는 내 거 아니잖아.

     

     

전쟁 같은 오전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아서 학교를 그만뒀다. 내복 바람으로 잠도 안 깬 아들을 들쳐 메고 아랫집으로 내려가는 내 자신이 미워서 학교를 그만뒀다. 그런 미운 엄마를 보는 아들의 그리움에 찬 눈동자를 보고 학교를 그만뒀다. 그리고 영어 과외를 하면서 오전 시간이 생겼다.

아침부터 전쟁을 안 해도 된다는 생각에 땡큐였고 세상은 너무 아름다웠다.

왜 내가 평생 이제껏 살면서 이걸 모르고 살아왔을까?’

학교 콘크리트 건물 안에 있으면 봄이 왔는지 꽃이 피는지 여름이 오는지 날이 더워졌는지 가을바람이 부는지 코가 시린 겨울이 왔는지 사실 잘 느낄 새가 없었다. 아침 일어나기 무섭게 출근에만 목을 매야 하고 같은 길을 운전하면서도 창밖 풍경 따위에 신경을 쓸 수 없었다. 자동차 정중앙에 붙어 있는 시계에만 눈이 쏠리고 빨간불 신호를 받으면 한 큐에 눈썹을 그리고 또 다음 신호에 콤팩트를 치고 마지막 신호에 립을 바른다. 그래서 항상 내 립은 너무 선명하지도 너무 불투명하지도 않은 색이어야 했다. 너무 밝으면 자칫 <달려라 하니>에 나오는 고은애와 같은 얼굴이 되어 있었고, 너무 불투명하면 화장에 전혀 신경을 안 쓴 자연인(월급을 받아 가면서도 전혀 외모에 신경 쓰지 않는 고로 일도 잘 못할 것 같은 사람)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곡예 운전을 하면서 결심했다.

아 반영구 아이라인을 당장 해야겠구나.’

     

학교 건물 안은 언제나 서늘했다. 푹푹 찌는 한여름 에어컨 하나 없는 복도에서도 서늘함은 분명 있었다. 계절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관심을 둘 여가가 없었다. 어린아이를 키우며 워킹맘을 해야 해서였을까? 아직 세월의 흐름을 거스르고 싶었던 철없는 나이 때문이었을까? 소음과 먼지 속에 살면서 낭만을 다 잊어버렸기 때문이었을까?

     

직장을 나오면서 제일 큰 걱정은 당연히 재정 상태였다.

돈이 좀 없으면 어때. 안 쓰고 살지 뭐.’

그래서 세 장의 카드 내역서는 한 장으로 줄이고 대신 봄꽃이 어디서부터 피는지 처음 알게 되었다. 5월의 햇살이 이렇게 눈부시게 빛나는지 34년 만에 느끼는 여유로움에 감사했다.

집에 있으면 똥머리로 대충 말아 올리고 아들 먹다 남은 밥을 정리하고(아무리 맛있는 반찬이 남았더라도 물론 한 입 먹다 남은 거였지만 절대 내 입으로 가져가지 않았다.) 여유 있게 커피를 마시고 라디오 좀 듣고 청소기 한 번 돌리면 어느덧 열두 시. 점심을 대충 챙겨 먹고 나서 부랴부랴 출근.

, 여유로움이 과하니 사람이 도리어 나태해지는 구나.’

직장 생활 중이었다면 정말 빠듯한 오전 시간을 보내고 있어야 하는데 이건 여유로운 게 아니라 게을러지기 딱이겠구나 하는 마음이 불쑥 올라왔다.

그래서 두 시까지 출근을 해야 하는 내 출근 시간을 열 시로 정하고 출근을 하기 시작했다. 집안일은 적당히 나 몰라라 모른 척 외면했다. 오후 출근을 하기에 오전에는 집안일을 할 시간이 분명 있었다. 하지만 나는 워킹맘이니까 가볍게 모른 척해 버렸다. 워킹맘은 슈퍼우먼이 아니다. 슈퍼우먼이 될 수 있다는 착각을 버려야 한다. 세상에 슈퍼우먼이 있다고 한들 그녀는 분명 불면증을 가지고 있기에 잠잘 시간에 집안일을 하는 것일 테다. 아니면 완벽주의 콤플렉스가 있는 사람일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세뇌시켰다. 직장과 집안일을 둘 다 똑같이 잘할 수는 없다. 그리고 미세먼지는 어디가도 많다. 내가 청소한다고 없어지지도 않는다. 그냥 감내하며 살면 된다. 먼지 없이 깨끗한 집에 산다고 해서 가족이 아프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고 오래 산다고 증명할 수 없다. 여기가 뭐 청정 자연 스위스도 아니고 뭐 스위스에 산다고 해서 100세 무병장수하는 것도 아니고 무병장수한다고 해서 그렇게 오래 살고 싶은 세상도 아니니까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거침없이 집안의 먼지를 깡그리(싸그리) 모른 척해 버렸다.

     

공부방에 열 시까지 출근을 목표로 하고 도서관 들러 책을 반납하고 대출을 한다. 볕 좋은 날은 도서관에 앉아서 책을 보기도 하고 점심은 도서관에서 해결한다. 가성비 좋은 도서관 점심은 언제나 꿀맛이다. 내가 안 한 밥이라 그런가.

하루에 네 시간씩은 어김없이 책을 보는 데 시간을 쏟았다. 독서 노트를 만들었고 독서 모임에도 참여를 했다. 도서관이나 센터나 교육청에서 실시하는 각종 강연을 들으러 다니고 관심 있는 분양에는 따로 수업을 받기도 했다. 가장 좋아하는 수업은 하브루타와 버츄였다. 각종 다른 종류의 부모 교육 수업도 듣고 아나운서나 스피치 수업도 들었다.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종류의 수업이 있고 그 수업을 끊임없이 듣는 사람들은 부지기수였다. 같은 지역에서 오전 수업을 듣다 보니 여기서 만난 사람을 다시 도서관에서 만나고 저기 수업에서 만났던 또 다른 누군가를 독서 모임이나 강연회에서 만나는 경우도 많았다.

자격증이나 수료증이 나오는 일부 과목 중에는 아줌마의 입장에서 호락호락하지 않은 비용이 발생하기도 하지만 전혀 아깝지 않았다. 이 모든 건 다 나를 위한 투자이니까 말이다. 내 돈 내가 벌어서 나를 위해 쓰겠다는데 뭐가 문제야. 이거 배우면 다 내 건데 하나도 안 아까웠다.

     

그런데 아들은 아깝다. 내가 영어 선생이라 그런지 사교육에 오래 몸을 담고 있어서 그런지 사교육에 목숨 걸고 싶지 않았다. 그건 자녀를 위한 투자가 아니라 부모의 허기를 위한 투기일 뿐이란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유치원 때부터 영어 한다고 잘하는 거 끝까지 잘하는 게 아닌 거 알고 아이 숙제가 또 다른 부모 숙제가 되어 간다는 것도 안다. 논리 수학 다 필요 없고 돈 주고 하는 창의 교육 더 필요 없고 학습지는 단순 연산에 집에서 밀리기만 할 거고 그 때문에 나는 열이 받을 거고 성질을 낼 것이고, 그럴 거라면 아이에게 당장 때려치우라고 소리를 지르겠지, 그러면 아들을 좋아서 헤벌쭉하면서 그만둔다고 하겠지. 그래도 아들이 요즘 부쩍 살이 찌는 거 같아 태권도엘 보내는데 요즘은 태권도도 하기 싫다고 해서 그만뒀다. 왜냐고 물어봐도 대답을 안 해주는 건 내가 납득 할 수 있는 이유가 아니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유치원은 공립으로 무조건 돈 안 들어가는 곳으로 선택했다. 병설 유치원은 통학 버스가 없어서 그게 좀 귀찮기는 했지만 뭐 세상에 내 맘에 쏙 드는 곳은 어디 있을까? 그건 불가능이다.

돈으로 아이를 교육시키는 것이 맞는 것처럼 보이는 세상에 살고는 있지만 그 의견에 동의하는 건 아니니까. 태권도나 미술 학원 피아노 학원 보내 줄 수 있는데 아들이 굳이 싫다니까 그 돈으로 엄마 공부 더 하고 운동 다니지 뭐.

고맙다. 아들!

     

내 공부는 내 거고 네 공부는 네 거니까 우리 알아서 잘해 보자.

그리고 미리 얘기하는데 엄마는 노후 자금 없애 가면서 네 학업 뒷바라지할 생각 추호도 없으니까 돈 많이 들어가는 학교 가려면 스스로 빚낼 각오하고 시작하거라. 내가 나중에 돈 한 푼 없어서 너한테 얹혀사는 것 보다 내 돈 내가 맘껏 쓰면서(맘껏 쓸 돈이나 있을지 모르겠다만) 손주들 용돈 주면서 맘 편히 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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