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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똥싸는 작가 Oct 23. 2018

아들! 엄마가 제일 행복한 순간이 언젠지 아니?

<아들! 엄마 좀 나갔다 올게 마지막 이야기>

 

내가 제일 행복한 순간

     

     

부자가 되기 위한 방법 중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바로 아웃소싱이다.

내가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은 남에게 맡기고 내가 제일 집중해야 할 일, 남이 하지 못하는 일에만 신경을 쏟는 일이다. 남이 할 수 있는 일은 남이 한다. 그 시간에 나는 차라리 논다. 놀아야지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창의성이 올라가고 일의 효율성이 극대화된다.

그랬다. 내가 제일 행복한 순간이 바로 집안일의 아웃소싱이다. 식기세척기가 돌아가고 세탁기가 돌아가고 무선 청소기로 거실을 청소할 때 뭔가 아웃소싱을 제대로 시킨 듯, 부자가 된 기분이랄까? (로봇 청소기에게 아웃소싱을 시켜 보았지만 당장 해고시켜 버리고 말았다. 그 녀석이 손이 더 가고 시끄럽고 신경만 더 쓰이는 거북이 같았기 때문이다.) 나의 행복을 위해 다음에는 세탁기 위에 드라이어를 하나 구입해 놓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내가 제일 행복한 순간은 또 있다.

오랜만에 친구를 집에 초대하고 손수 밥을 차려 먹인다. 그녀는 내 요리 실력에 깜짝 놀란다. 정말 맛있다며 연신 칭찬을 한다. 그것이 겉치레 인사가 아님을 그녀도 나도 알고 있다. 내가 먹어도 정말 맛있다. 식사를 끝내면서 나에게 이 조림 장은 도대체 어떻게 만드느냐고 물어본다. 나는 대답한다.

나도 몰라. 나는 밥만(사실 밥도 전기밥솥이 한 거지만) 한 거거든. 이거 내가 정말 열심히 찾은 반찬 집에서 사온거야. 우리 집에서 꽤 멀긴 한데 그래도 보람이 있어. 끝내주게 맛있지?”

     

반찬은 잘하는 데서 사 먹으면 된다. 매일 똑같은 반찬을 먹는 것보다 내가 무엇을 만들지 고민하고 찾아보고 장보고 재료 손질하고 요리하고 집 안 냄새 풍기고 냄비 씻고 허리 아프고 하는 것보다 사 먹으면 그 모든 순간이 아웃소싱이 된다. 우리 집은 다행히 반찬을 많이 먹지도 대식가 식구들도 없어서 차라리 이게 훨씬 경제적이라는 사실을 최근에 알게 되었다. 다양한 음식을 제공하고 맛보게 하는 것이 아들의 미각을 위해 나의 평안을 위한 좋은 선택이었다고 굳게 믿는다. 전혀 미안하지 않다. 그 반찬 집에는 MSG를 쓰지 않는 것 같다. 반찬을 안 먹으면 반찬이 상한다. 그래서 참 좋다.

     

40년 동안 엄마가 반찬을 사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아빠가 좋아하는 젓갈 정도만 사시는 분이셨다. 까다롭고 고급진 입맛을 가진 아버지 때문에 어머니의 음식 솜씨는 한식 전문가 수준이셨고 그래서 우리 가족은 외식보다 집밥을 더 선호할 수밖에 없었다. 밖에서 사 먹는 음식이 엄마의 솜씨보다 별로였고 당연히 푸짐할 수 없었다. 그래서 점점 엄마는 행복해졌고 동시에 점점 불행해졌다.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살아오다가 시집을 오고 내 냉장고의 안주인이 되면서 엄마가 얼마나 큰일을 하고 사셨는지 알게 되었다.

     

빼어난 음식 솜씨를 가진 엄마도 나이가 들었다. 나이가 들면서 의사에게 몸을 맡겨야 하는 순간이 생겼다. 그러길 몇 년이 지나니 엄마의 혀도 같이 늙어 버렸다. 하긴 자식들도 다 떠나보내고 아빠와 두 식구가 사는 집에서 매일 새 반찬을 올리는 일은 여간 고역이 아닐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엄마에게 강제 아웃소싱을 시켜버렸다. 사 온 반찬은 입에도 대시지 않는 아버지를 위해 나는 내가 산 반찬을 우리 집 반찬통에 옮겨다 놓고 엄마 집을 방문하는 날 냉장고에 넣어 드리고 왔다. 당연히 부모님은 내가 한 음식이라고 생각하셨고 딸이 드디어 철이 들었다고 감사하고 고마워하시며 맛있게 드셨다. 그러길 몇 번, 이제는 가게 상호가 적힌 플라스틱 통 채로 엄마 집 냉장고에 넣어 놓았고 사온 것이라고 손사래를 치시던 아버지도 어쩔 수 없이(엄마가 그것들을 상 위에 올리시니까) 맛있게 드셨다. 자동적으로 엄마의 미소는 깊어졌다.

 

엄마.엄마도 이제 좀 편하게 살자. 엄마가 왜 그렇게 늘 나가서 먹자고 하셨는지 이제야 이해돼. 철없이 굴어서 참 미안해. 반찬도 사 먹어야지 반찬 가게도 함께 살지. 만 원의 행복에 엄마도 동참해도 괜찮아. 절대 나쁜 게 아니야.’

처음엔 다음에는 이런 거 가져오지 말라고 손사래를 치신 어머니도 어느새 은근 나의 반찬 방문을 기다려 주셨고 은근 행복한 순간이었다.

     

엄마, 나 이제 김장 김치 그만 가져갈게. 그게 다 엄마의 주름이란 걸 이제야 깨닫네. 시집가고 도둑질 많이 한 딸이라 미안해 엄마. 이제 철들었으니까 우리 좀 더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자. 엄마 미안하고 고맙고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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