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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똥싸는 작가 Oct 09. 2018

 포기는 배추를 위한 말이지?

<아들! 엄마 좀 나갔다 올게> 8번째 이야기


포기는 배추를 위한 말이지?

     

     

이제껏 너무 열심히 살았다. 앞뒤 살펴보지 않고 너무 달렸다. 달리기에 재능이라도 있었다면 전국 체전이라도 나가서 메달이라도 노려 봤을 텐데. 달리기는 늘 변함없이 5등이었다.

     

12년 공부를 (열심히 하진 않았지만) 힘들게 했고, 대학에 들어갔고, 취직을 위해 노력했고, 취직 생활에 적응을 위해 열심히 달렸고, 남처럼 살겠다고 결혼을 했고,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하고, 수유를 하고 하……. 하악하악 숨이 찬다. 그런데 쉴 수 가 없다. 그래서 또 달렸다. 육아서를 읽고, 이유식을 만들고, 좋은 엄마가 되려고 별짓을 다하고, 그래도 또 달렸다. 매일 잔소리로 사랑을 표현하고, 서러움으로 눈물을 삼키고, 참고 또 인내하고 참고 또 인내하며 달렸다. 에라, 모르겠다. 이젠 더 이상 못 해 먹겠다.

 

내가 엄마라고 애만 바라보고 살아야 해?’

내가 엄마라고 육아에만 매달려야 하느냐고!’

     

집안일을 무슨 소금이 쉴 새 없이 흘러나오는 동화 속 맷돌마냥 끊임없이 나온다. 빨래는 해서 널고 말려고 정리하면, 또 해서 널고 말려야 한다. 설거지는 뒤돌아서면 언제나 그 자리에 가득이다. 청소는 해도, 또 해도, 먼지는 항상 그 자리에 꼼짝없이 앉아 있다. 왜 해도 해도 먼지는 사라지지 않는 거냐? 새 집으로 이사를 가야 하는 건가? 대형 청소기를 하나 들여서 한 24시간 풀로 돌리면 좀 나아질런가?

쳇바퀴를 도는 햄스터를 보면 쟤는 저렇게 하고 또 밥 먹고 똥 싸면 그만이잖아. 지가 지 똥 치워야 하는 거 아니고 해바라기씨 채취하려고 씨앗 심고 거름 주고 따서 말려야 하는 거 아니니까 저렇게라도 쳇바퀴 돌면서 소화시키는 거지 난 이제 뭐냐?’

끝없이 몸뚱이를 움직이며 집안일을 해도 살이 빠지는 것도 아니다. 집안일 스트레스는 신기하게도 집안일을 하면서도 쌓였다. 더 신기한 것은 집안일을 안 해도 쌓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나만의 시간표를 짜기로 했다.

     

주중에는 일을 해야 하니까 좀 적당히 살기로(완벽한 거실을 포기하겠다는 선언을 하며) 마음을 먹었다. 주말에 맞춰진 힐링 타임을 위한 시간표가 제작되었다. 토요일 아침을 만끽하기 위해서 집 안 청소는 금요일에 하기로 했다. 아들의 널브러진 장난감을 정리하는 날이 금요일이기 때문이기도 했고 장난감이 없어야지 내가 청소를 하기 편한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일단 거실에 장난감이 하나도 안 보이는 것만으로도 주말 아침 우리 집 거실은 한순간에 호텔로 변신했다. (물론 내 눈에만 그렇다)

     

금요일에는 청소를 하고 목요일은 빨래를 하는 날로 정했다. 목요일에 빨래를 돌리고 말리고 금요일에 청소를 하기 전 빨래를 개고 정리를 하면 더 깔끔해 보이니까 그러므로 주말에는 빨래더미를 보지 않아도 되고 거실은 더 깨끗한 느낌이 들 수 있게 했다.

그 외에는 어떻게 하냐고?

신경 끄기다.

     

신경 끄기도 기술이 필요하다. 저걸 해야 하는데 하고 생각하면서 안 하면 계속 힘들다. 내가 해야 할 일은, 아니 주부가 해야 할 일은, 아니 주부가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은 없다. 생각하는 것 모두가 주부가 해야 할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평생을 살아왔다. 내가 다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고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그건 직무 유기라고 나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꼭 그래야 하는 일일까?

주부는 집안일을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주부가 되기를 포기했다. 무조건 안 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아주머니를 고용해서 집안일을 떠넘기겠다는 것도 아니다. 다 알지 않는가? 아줌마가 일주일에 두세 번 오신다고 해서 내가 할 일이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을. 다만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좀 더 집중을 하겠다는 것이다.

     

제일 깨끗한 방이 안방이다. 왜냐면 여기는 아들의 장남감이 침범할 수 없는 유일한 안전지대가 되기 때문이다.(반대로 안방을 제외하고 모든 곳이 장난감 지대라는 것을 의미한다.) 거기서 나는 책을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책을 읽을 때 집에서 아무것도 되지 않았다. 눈 돌리면 해야 할 일이 산더미 같아서 양심에 가책을 느꼈다. 도무지 아무것도 집중이 되지 않았다. 등 뒤로 설거지가, 눈앞에는 먼지가, 거실에는 이미 전쟁이 났고 화장실은 공중화장실 같고 베란다는 온갖 잡동사니와 분리수거할 쓰레기들과 음식물 쓰레기로 넘쳤다.(그렇다고 사람이 살지 못할 환경까지는 아니었지만……. 워낙 깔끔한 엄마와 수십 년을 살다 보니 내가 주인인 우리 집은 좀……. 돼지우리 같기는 했다.)

장난감 프리 선언을 한 안방에서 나는 책을 읽고 책을 썼다. 아들은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혼자 깔깔거리고 있고 나는 책을 읽고 혼자 낄낄거리고 있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냐고? 남들은 다 의아해했다. 어떻게 집에서 책을 보고 쓰냐고? 그것도 아이가 있는 집에서 그게 가능하냐고? 가능하다.

아주 단순하다. 주부라는 직업을 포기 선언해 버리면 그만이다. 나는 더 이상 주부가 아니다. 나는 그냥 나다. 주부의 일은 내가 좋아하지도 잘 하지도 못한다. 그러니 내 삶이 불편하지 않을 정도만 아니 좀 더 사실적으로 이야기하면 내가 그리던 집만 버리면 된다. 완벽해지고 싶다는 몹쓸 욕심을 버리면 된다. 포기도 선택이다. 욕심을 버리는 것은 절제다. 완벽하게 깔끔하고 정갈한 집 안을 가진 주부가 되는 것은 히스테리를 동반한다. 그런 히스테리를 부리면서 깨끗한 집에 살지 않겠다. 그래도 괜찮다.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생산적이든 그렇지 않든 그렇든 그것을 떠나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좀 더 집중하겠다. 내가 잘하는 일에 시간을 쏟겠다.

     

물론 엄마의 직업은 아주 적당히 사랑한다. 그래서 24시간 중에 15분을 투자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24시간 중에 두 시간 40분도 아니고 24분도 아닌 고작 15분은 참 적아 보인다. 하지만 매일 강도 높은 15분 운동은 어렵지 않은가? 아이와 온전히 15분을 놀아 주는 일은 하기 싫은 운동만큼이나 나에게는 결단과 의지와 노력이 수반되어야 하는 분명 일이었다. 아이를 챙기는 것은 책임감의 일부분이기에 당연히 15분과는 별개이다. 다른 일을 다 제쳐 두고 아이가 원하는 시간에(대부분은 그렇게 하려고 노력) 아이가 원하는 장난감으로 아이가 원하는 방식으로 놀아 준다. 그게 내 일과의 중요점이었다. 그리고 또 다시 오롯이 네 시간의 내 시간을 가진다. 내 시간은 네(4) 시간이다. 아이의 친구가 와도 나는 네 시간을 지킨다. 삶은 공평해야 한다. 나를 행복하게 하는 시간을 포기하기엔 주부란 이름도 엄마란 이름도 무색해진다. 그래도 괜찮다. 엄마는 엄마의 삶을 사랑하고 열심히 하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 열정이 넘치는 일을 즐겁게 하고 행복해한다. 그 모습을 아들을 관심 없어 하면서도 지켜보고 있다. 내 시간을 포기할 수 없다. 나는 그래도 된다. 오늘도 나는 최선을 다했으니까.

     

오늘도 반갑게 아들의 친구가 집으로 놀러 왔다. 거실에서는 또 한바탕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아들과 아들 친구의 저녁밥을 챙겨 주고 내 방으로 들어가면서 아들에게 윙크를 한 방 던졌다.

아들. 네 손님이니까 이제부터 네가 알아서 하는 거야. 알지? 엄마 말? 고맙다.’

아들은 내 윙크의 진의를 알고 있다는 듯이 방긋 웃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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