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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똥싸는 작가 Oct 02. 2018

 자기 입으로 가라니까 널 믿고간다.

아들! 엄마 좀 나갔다 올게 7번째 이야기 

자기 입으로 가라니까 널 믿고 간다.


아이들 방학이 가까워 오면(방학 시즌이 아니래도) 사실 하나도 재미없지만 재미있을 것처럼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이 극장가로 아이들을 유혹한다. 어떻게 알았는지 아들은 귀신같이 새 영화를 알아 가지고 와선 이렇게 말한다.

“엄마. 18일부터 포켓몬스터 영화를 볼 수 있대.”

보고 싶으니 가자는 소리다.

 ‘그래 내가 너의 즐거움을 보장해 줄게.’ 생각은 이렇게 하지만 사실 애니메이션은 절대 내 스타일이 아니다.

 (모든 애니메이션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아이들을 겨냥한 애니메이션은 정말 시간과 돈, 에너지 모든 것이 아까웠다. 아이와 한 번이라도 영화관에 같이 간 부모님이라면 이 마음 다들 공감하시리라 본다. 

아이와 함께 영화관에 앉아 있으면 진풍경이 펼쳐진다. 아이들은 영화에 빠져 있고 동시에 부모님들은 스마트폰에 열중하고 있다. 일반 영화라면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상황이지만 아무도 누구도 그 새어 나오는 스마트폰 불빛에 불평하지 않는다. (모두가 같은 마음이니까……. 흐흐흐)     


다시 영화관 이야기로 돌아가자.

“아들. 영화 보고 싶지? 그런데 엄마는 정말 보기가 싫어. 시간도 아깝고 재미도 못 느끼겠어. 그래서 사실 돈도 아까워. 어떻게 좋은 방법이 없을까?”

“……. 모르겠어.”

“이건 어떨까?  엄마가 널 영화관에 데려다줄게. 넌 영화를 보는 거야. 엄마는 밖에서 널 기다릴게. 물론 영화관 안 네 자리까지 널 데려다줄 거야. 그리고 영화가 끝나면 다시 널 데리러 갈게. 어때? ……. 생각해 보고 이야기해 줘.”


……. 조금 뒤……. 

“그럼 엄마, 내가 됐다고 할 때까지 내 옆에 있어 줘.”

“그래. 알았어. 그럴게.”

우리의 협의는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그길로 바로 영화관으로 직행했다. 캔버스 가방에는 아들이 사랑하는 팝콘과 콜라를 담았다. 내 가방에는 내가 마실 물과 책 두 권과 노트를 챙겼다. 영화관에 도착해서 발권을 하고 상영관 입구로 올라갔다. 

“아이만 영화를 볼 건데요. 자리만 좀 찾아 주고 나와도 될까요?”

“네. 그러세요.”

친절한 직원은 기분 좋게 오케이를 했고 지정된 자리로 함께 갔다. 팝콘과 콜라를 안겨 주고 봉지를 뜯어 주고 콜라도 따 주었다. 아직 영화가 시작되기 전이었고 광고 상영 중이었다.


“엄마 이제 가도 돼요.”

“벌써? 진짜 괜찮겠어?”

상영관에 들어간 지 채 1분도 되지 않았는데, 아이 어깨의 긴장감은 온데간데없이 다 사라지고 없었다. 아들의 표정을 보니 얼빠진 표정도 없고 걱정 두려움도 없어 보였다. 

‘그래 자기 입으로 가라니까 널 믿고 간다.’

“아들 엄마가 다시 이 자리로 올 거니까 걱정 안 해도 돼. 영화 끝나도 이 자리에 그대로 있어. 혹시나 중간에 엄마가 보고 싶거나 무서우면 우리가 들어왔던 이 문으로 다시 나오면 돼. 엄마가 문 앞에 있는 테이블에 앉아서 책 보고 있을 거야. 걱정하지 말고.”

“응, 알겠어.”


아들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한 것은 사실 나에게 하는 이야기 같았다. 사실 은근 걱정은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찰떡같이 약속을 하고 다시 온 길로 나갔다. 상영관 앞에는 테이블도 있었고 푹신한 의자도 있었다.

영화는 곧 시작했고 영화관은 이내 조용했다. 진동하는 팝콘 냄새만 아니었다면 도서관 못지않은 분위기였다.  90분의 상영 시간 동안 나는 책을 후루룩 국수처럼 말아 먹었다. 어려운 책이 아니라서 금방 책 두 권을 읽고 노트에 정리까지 했다. 주말 아침 이런 달콤함을 즐길 수 있다니 아들 너 그새 참 많이 컸구나. 감동이 막 밀려들었다. 


영화가 끝나기 1~2분 전 조용히 다시 상영관으로 들어갔다. 계단을 올라가지 않고 자막이 올라가기를 기다렸다가 직원과 함께 움직였다. 아들은 아무렇지 않게 그 자리에서 감상을 아주 잘하신 것 같았다. 아버지가 소고기를 드신 것과 같은 표정이었다. 

“어땠어? 혼자 있어서 무섭진 않았어? 재밌었어?”

“응. 재밌었어. 무섭지도 않았고. 다음에도 이렇게 하면 될 것 같아.”

“아 진짜? 아들 덕분에 엄마는 네가 영화 보는 동안 밖에서 책을 두 권이나 읽었어. 머리에 쏙쏙 들어오더라. 

고마워. 다 이게 우리 아들 덕분이야.”

두 손을 맞잡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길에 갑자기 생각이 났다.

“아들 너 아까 먹은 팝콘이랑 콜라 먹은 건 어쨌어?”

아들은 캔버스 가방을 들여다보며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 거야?' 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여기 있지.”

꼬깃꼬깃 접은 팝콘 봉지와 빈 플라스틱 콜라병이 얌전히 누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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