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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똥싸는 작가 Sep 25. 2018

 아들과 러브레터 

<아들! 엉마 좀 나갔다 올게> 6번째 이야기~

6. 우리의 사랑은 여전했지만 더 이상의 편지는 없었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이 뭔가를 꺼내 들었다.

종합장을 찢어서 세로로 네 번 접고 바람개비마냥 딱지마냥 접어 만든 손편지였다.

동서남북 바람개비 모양의 편지에는 “엄마에게”라고 쓰여 있었다.

(이해를 위해 나름의 주석을 달아 보았다.)      

엄마 좋은 소식이서요. 좋은소는 신경민이 엄마 좋아하때요.

외야하면 신경민이 말하때 우스면서 마하는까요.

그게 좋탔고 들었서요. 책일그대요.

2017년 9월 4일 아들 올림

(엄마 좋은 소식이 있어요. 좋은 소식은 신경민이 엄마를 좋아한대요. 

왜냐하면 신경민이 엄마가 말할 때 웃으면서 말했으니까요.

 그게 좋다고 들었어요. 엄마가 책 읽을 때요.)      

닭살 돋는 답장을 아들에게 보냈다.  


 사랑하는 아들에게

아들 오늘 학교에서 널 만나니까 더 행복하더라.

너의 반짝이는 눈망울을 매일 보는 선생님은

 너 때문에 얼마나 행복할까 생각했단다.

아침에 살며시 네가 자고 있는 모습을 볼 때면

 꼭 아기 천사가 내려앉아 잠을 자는 것 같아.

엄마는 너 때문에 오늘도 열심히 살려고 노력해. 

사랑하는 아들 고마워.

 엄마 일기 잔소리 이제 안 할게. 사랑해.  

아들은 신이 났다. 편지는 계속되었다.     


엄마, 생쥐, 고양이가 여뻣요.

저가 종이로 평가 해 주서요.

오늘 편지를 다시보겠서요.

종이가 작아요. 엄마 사랑해요.

평가는 다른 종이에 있서요.

9월 5일

(편지 아래에 생쥐와 고양이를 그려 넣은 편지였다.

 그 그림을 평가 해 달란다.  

그리고 종이가 작으니 다시 편지를 쓰겠다는 의미인 것 같았다.)     


엄마 죄송해요. 

아침에 인사를 못했서 죄송해요.

하지만 죄송하다는 뜻스로 오늘 저가요 설거지할개요.

손으로요. 엄마 사랑해요.

9월 6일 수요일     

여름방학에 집으로 식기세척기가 입양되었다.

 (아는 분이 쓰던 건데 우리 집에 투척해 주셨고 나는 좋다고 냅다 받아 왔다. 너무 행복하다.) 

그래서 아들은 식기세척기가 아닌 자기 손으로 직접 설거지를 하겠다고 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하도록 두었다.

 아들은 자신의 사랑을 표현해서 행복해했고 그 사랑을 받으니 세상 부러울 게 없었다. 

이런 아들을 누구한테 장가보낸단 말인가…….

 벌써 시어머니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 

심히 앞길이 걱정이다.

 갑자기 내 예비 며느리가 

무척이나 불쌍해진다.   


엄마 좋는 것 가타요 엄마가 었서다면 저도 었서서요.

엄마가 절 키워주셨서 고맙습니다.

 맨날 미술때신 레고하고싶퍼요.

 엄마이러캐해요.

 미술이랑 레고 반하고 싶퍼요. 

그럭캐해도 돼요? 

꼭 편지를 보내주세요.

 엄마 사랑해요.

9월 7일 목요일    


슬슬 아들은 편지의 목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역시 애들은 영악하다. 한시도 쉴 틈이 없다.

 미술 학원을 그만두고 나니 걱정이 되었다.

 아들은 미술을 진짜 너무 완벽히 못한다. 

그림 그리기에 재능이 없어 보였다. 

손가락도 열 개가 정상인데 참 신기했다. 

실수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꼼꼼하고 예민한 성격(좋은 말로)

 대범하지 못하고 겁이 많은 성격(좀 꼬아서)이라서 그런지

 엄마를 닮아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초등학교 저학년은 미술이 곧 능력이고 생명인데 안 하자니 겁이 났다. 

미술 학원을 안 가겠으면 엄마랑 같이 포켓몬스터를 하나씩 그리기로 약속을 했다. 

그런데 이 자식이 잔머리를 쓰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아들아.

안녕? 내 사랑?

매일매일 너로 인해 웃고 웃을 수 있어서 엄마는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단다.

오늘도 어제도 아침 일찍 일어나 조용히 네가 하고 싶은 걸 하는 널 보면서

엄마를 얼마나 배려하는지 너무 고마워.

보영이도 잘 보살피고 항상 착하고 바른 마음 가져주어 고마워.

미술은 두 번 레고 두 번 수요일 쉬는 것도 좋아. 허락할게.

하지만 약속을 스스로 지키도록 항상 노력해 주면 좋겠어.

그렇지 않으면 엄마가 널 더 이상 믿을 수 없게 만드는 거니까. 

파이팅. 사랑해.     

편지를 받으니 마음이 약해진다. 

그래서 미술 대신 레고를 만드는 날을 이틀 허락해 주었다.

 아들의 논리는 이랬다.

 미술 학원에 가도 그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기 하는 날이 있으니 

집에서도 그렇게 하자는 것이었다.

 그림 그리기는 싫고 레고는 좋으니 그렇게 하고 싶은 이유는 알겠다. 

편지까지 받은 마당에 너의 설득에 넘어가 주리라 마음먹었다.  

엄마 저 솜씨 어대요. 맨 마지막에 보여주게요.

엄마 절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안태 포겟몬 그리기 오늘부터 할래요. 

엄마 사랑해요. 

2017년 9월 13일 수요일

까푸꼭꼬꼬와 달콤마 포켓몬 그림도 있음.  

그렇게 앞에 약속을 했지만 그리기는 잘 지켜지지 않았고

아들은 엄마를 위로하는 차원에서 편지를 쓰고 그 아래에다 세 명의 몬스터를 그려 주었다. 

고 했다. 그래 증거가 있으니 내가 넘어가는 걸로 했다.      

사랑하는 아들 

오늘 저녁에 준형이 형이랑 이모 오거든

그래서 거실 장난감 딱지 치워주면 너무 고맙겠어. 

사랑해.     

아들은 이 편지를 받고 거실에 있는 장난감과 딱지를 모두 치워 주었다.

 나보다 더 일찍 오는 아들은 거실에 놓인 이 편지를 받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둘 다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편지가 사랑의 인사에서 목적 달성이 짙은 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우리의 사랑은 여전했지만 더 이상의 편지는 없었다. 

그래도 최고의 러브레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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