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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ligitis Feb 27. 2016

파리 천재들의 아지트, NUMA

첨단과학기술의 강국 프랑스

Paris start-up hub Numa © Lisay G.

파리에 꼭 가야 하니

 작년 11월 13일 프랑스 파리 시내 여섯 곳에서  발생했던 폭탄 테러와 대량 총격사건 이후, 낭만을 떠올리며 파리로 향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음력으로 설 연휴이지만 중요한 미팅이 잡혀서 출장을 가야 했기에 가족들에게 심려를 끼칠까 행선지를 알리지 않았습니다. 친구들을 만나 두려움을 쏟아놓으니, 최근 사건이 발생했던 곳이니 동일한 곳을 또 범하지 않을 것이라 애써 나를 위로합니다. 성탄절 연휴가 지나고 한 달도 지나지 않았는데 투덜거리면서도, 짐을 싸고 있는 내 모습에 ‘올해도 역마살을 피해 갈 수 없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보름 일정이라 20인치 캐리어 하나만 있으면 됩니다. 부치는 짐이 없으면 기다릴 필요도 없고 출입국 수속도 빠르고 이동에 편하지요. 속옷, 양말, 스타킹, 비상상비약 등은 넉넉히 챙기고 필요한 것이 생기면 현지에서 조달하기로 했습니다. 오래전부터 암묵적으로 지키는 원칙이 하나 있는데 기념품은 절대 사지 않습니다. 매달 출장이 있는데 그때마다 하나씩 사다 보면 불필요한 물건을 쌓아두다가 버리기 일쑤이니까요.

파리 지하무덤 카타콤베 © Lisay G.

파리의 마담

12시간을 날아 샤를 드 드골 공항 (Aéroport Paris-Charles de  Gaulle)에 도착해 입국심사대에서 도장을 찍어주면서 심사관이 인사를 건네는데, ‘마담 (Madame)’이라는 호칭이 어색하게 마음에 걸리는 것이었습니다. 작년 스트라스부르 (Strasbourg)에 갔을 때에는 '마드무아젤 (mademoiselle)'이었는데, ‘장시간 비행으로 피부가 상했나? 아니면 이제 나이가 들어 보이나?’ 복잡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호텔에서 체크인을 할 때도,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할 때도 뒤에 붙는 내용은 달랐지만, 호칭은 '마담'으로 굳어버렸습니다. 내 복장이 격식 있는 것도 아닌데 도대체 무슨 일이지? 보름 내내 '마담'이라는 호칭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으면서, 가슴은 두근거리고 (padam, padam) 억울함은 증폭되었습니다. 영어권에는 미스 (Miss.)와 미세스 (Mrs.)로 여성을 부르는 두 가지 호칭이 있는데, 남자는 미스터 (Mr.)뿐인 것도 불만입니다. 지금은 미즈 (Ms.)로 호칭이 통일되었지만 그 과정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중국도 공식석상에서 뉘슐 (女士)과 샤오지에 (小姐)로 여성을 구별하고 있습니다만, 결혼 적령기가 무의미해지고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워진 만큼 호칭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습니다. 동거하는 커플이나 딩크족이 많기에 유럽에서는 '미스' 호칭이 점점 사라지고, 프랑스에서도 '마드무아젤' 호칭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습니다.  이는 2012년 ‘FRANCE 24'에 보도된 “프랑스 마드무아젤에 아듀를 고하다 (France bids adieu to the term 'mademoiselle')" 기사 이후 기정사실화 되었습니다. 여성 대통령을 '마담 프레지당트 (Madame Président)'로 부른다니 '마담'은 여성을 위한 극존칭으로 기쁘게 받아들여야겠습니다.

해골과 뼈로 쌓아 올린 카타콤베의 기둥 © Lisay G.

카타콤베를 또 걸었지

저는 작품을 비롯해서 컨템퍼러리 한 것을 좋아하는데, 요즘 부쩍 클래식한 것에 흥미가 생겼습니다. 현대미술이 지겨워질 때면 고대 그리스 대리석 조각이나 도자기 (porcelain), 중세시대 성화들이 (Icon)가 전시된 방에 자연스럽게 발길이 머물게 되면서 역사와 유적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파리 카타콤베 (Les catacombes de Paris)' 지하 묘소는 파리의 한 복판 주택가에 위치한 있어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여름에도 납량특집이나 공포영화를 즐기는 편이 아닌데, 시끌벅적한 학생들과 함께라니 등골이 오싹하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땅굴같이 어두컴컴하면서 축축한 지하도를 따라 무리 지어 걸으니 대략 1시간 정도가 소요되었습니다. 무시무시한 분량의 뼈 탑과 돌벽에 군데군데 남은 성경구절도 묵상하면서, 이 많은 사람들이 왜 여기 묻히게 되었을까 궁금했습니다. 가이드의 설명으로 이탈리아 로마의 '산 칼리스토 카타콤베 (Catacombe di Callisto)'는 크리스천들의 피신처이자 무덤이지만, 여기는 채석장이었다가 도시의 급성장으로 토지가 부족해지고 묘지를 철거하면서 신원미상의 유골들을 옮겨놓았다고 합니다.

La Maison du bitcoin © Lisay G.

비트코인의 집

프랑스 하면 패션이나 쇼핑, 예술과 역사와 미식의 중심지로만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유럽 첨단 과학기술과 의약학, 항공우주산업에도 강국입니다. 이번에는 후자에 목적을 두고 방문하는 만큼 여행자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장소에서 괴짜들과 만날 생각에 두렵고 설레었습니다. 중국에서 알게 된 리샤오라이 (李笑来) 덕분에 2011년 비트코인 (bitcoin)이라는 가상화폐를 처음 접하게 되었는데, 지금은 대학 등록금 결제, 해외 송금, 버스킹 등으로 다양화되면서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습니다. 2014년 파리에도 '비트코인의 집 (La Maison du bitcoin)'이라는 비트코인 거래소가 생겼는데, 비트코인을 유로화로 인출하는 자판기가 설치된 이색 명소입니다.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들이 만나서 서로 아이디어를 나눌 수 있는 공동 작업 장소 (espace de coworking)를 제공함으로써 은퇴자와 청년들을 위한 창업의 장이 되고 있습니다. 카페에서 배고프고 목마른 사람들에게 와이파이와 충전 등 휴식의 공간을 제공하고, 최첨단 트렌드 IT 기술을 테스트하는 방식은 우리가 커피전문점으로만 알고 있는 스타벅스 (Starbucks)의 비즈니스 모델과 닮았습니다.

Gare du Nord © Lisay G.

창업을 지원하는 NUMA

파리시 2구 스타트업 특별 양성 지구로 선정된 썽티에 (Sentier) 지역에 위치한 NUMA는 아주 독특하고 매력적인 곳입니다.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방문해보았을 요즈마 캠퍼스, 구글 캠퍼스, MARU 180과 비슷한 '스타트업의 산실'이라고 보면 됩니다. 카페를 겸하고 있어 교육과 협업, 강의와 미팅을 위한 만남의 장소로 항상 북적이고, 저녁에는 개발자/디자이너/기획자들이 모여 밤샘 작업을 벌이기도 합니다. 엔젤 투자자와 서치펌 (search firm) 관계자, 팀 멤버를 찾는 파티가 주기적으로 열리기도 해 창조적 에너지가 넘치는 곳입니다. 제가 방문한 날은 '파리의 숨은 고수들'이라는 테마로 CTO와 CEO가 만나는 행사가 있었는데 Facebook, Google, MS, Apple 같은 IT 기업 수장이나 프랑스 정부에서도 헤드헌팅을 위해 종종 들른다고 프랑스 친구가 귀띔해주었습니다. 그리고 걸어서 15분 거리에 위치한 락셀레하퇴흐 (L'Accélérateur), 실리콩 엑스페리엉스 (silicon expérience), 라 캉틴 (La Cantine) 등 근사한 공간이 시내에 위치하고 있다니 파리를 다른 각도에서 재발견하는 흥미로운 시간이었습니다.

teens and twenties programmer © Lisay G.

디지털 네이티브의 삶

바게트 샌드위치와 음료 한 잔, 노트북을 펴고 코딩에 열중하는 젊은이들을 보고 있노라니 천재소년 욱이가 떠올랐습니다. 프로그래머 엄마, 아빠 사이에서 태어났기에 어렸을 때부터 남달랐지요. 팔삭둥이로 인큐베이터 신세를 져야 했지만 반짝이는 눈망울과 총명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주말 게임에 빠져서 자신과 놀아주지 않는 부모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테이블 밑으로 기어가더니 모니터 전원 코드를 뽑는가 하면, 아주 어려서 한글을 몰라 의사소통이 어려울 때에도 이모티콘만을 이용해서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전달했습니다. 명절이면 외가와 친가에서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 고모의 사랑을 듬뿍 받고,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어른스러운 입맛으로 몸에 좋은 음식을 골라 먹이다 보니, 또래들보다 월등한 성장 속도를 보여주었습니다. 2005년 태어난 디지털 네이티브 (Digital Native)로 아직 초등학생이지만 발군의 실력은 선생님을 능가하며, 컴퓨터 수업 시간에 코딩 (coding)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중학생이 되면 실리콘밸리의 해커톤에 같이 가자고 약속했건만, 아직 보호자의 동의는 구하지 못했습니다.

Restaurants and cafés in Paris © Lisay G.

파리지앵에게 카페는 삶이다

파리의 점심시간은 정오부터 오후 2시까지 두 시간입니다. 학생들은 학교급식 대신 집에 가서 먹고 오기도 하고 직장인들은 휴식과 미팅까지 겸할 수 있습니다. 주차단속원도 쉬어야 하기에 점심시간은 도로변 주차가 무료이지요. 느림을 즐기는 사람에게 살기 좋은 도시인 것 같습니다. 레스토랑과 카페의 차이가 궁금했는데 친구가 속시원히 답해주었습니다. 셰프가 상주하며 레시피를 연구하며 요리를 만드는 곳은 레스토랑 (Restaurant)이고, 손질된 재료를 공급받아 반조리로 데우거나 가공해 서빙하는 곳은 카페 (café)라고 부른답니다. 카페에서도 메뉴를 잘 고르면 샐러드, 샌드위치, 디저트까지 코스를 즐길 수도 있습니다. 저는 헝클어진 머리를 하고 노천카페에 앉아 달콤한 디저트와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시시각각 변하는 햇살을 바라보며 사색을 즐겼습니다. 1887년 오픈해 오랫동안 예술인의 아지트였던 카페 드 플로르 (cafe de flore), 바로 맞은편에 위치한 카페 레 듀 마고 (Cafe les deux magots)는 100년이 넘도록 작가와 철학가의 사랑을 받았던 카페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파리지앵에게 카페는 먹고 마시는 곳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테러가 할퀴고 지나간 자리로 돌아옴으로써 파리 문화와 삶을 상징하는 카페 레지스탕스(La Résistance) 운동으로 거듭나고 있었습니다. © Lisay 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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