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평생교육
어릴 적 동네에 벽지 도배, 욕실 도기와 타일, 바닥 장식을 하는 유명한 집이 있었습니다. 이유인 즉 사장님이 법학 박사라는 것인데 사법고시에 계속 떨어져 결국 인테리어 사업을 시작하셨습니다. 어머님들은 최면에 걸린 듯이 가격이 비싸거나 일이 서툴러도 그 사장님께 일을 몰아주셨고 다른 업체들은 감히 명함도 못 내미는 상황이었죠. 그리고 친척들에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잔소리가 있습니다. 딴따라를 하더라도 박사학위는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죠. 하지만 청개구리였던 저는 저항의 의미로 정반대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한 세대가 넘는 세월이 흘러 한 우물만 판 친구들은 다들 박사나 교수가 되었는데 저만 아닙니다. 심리적인 박탈감이 있을 것 같았지만 이제 세상이 변해 살아가면서 어렵거나 불편한 점은 없습니다. 취업이 아닌 창업을 택하면서 능력 있는 박사님이나 교수님들을 고용하면 되기에 삶이 더 편하고 여유로워졌습니다.
코로나로 2020년을 도둑맞은 것 같았지만, 이제 자연스럽게 비대면 커뮤니티에 적응하고 있습니다. 메타버스 플랫폼에서 아바타로 몸을 부딪히는 재미를 느껴보거나 목소리를 들으며 위안을 삼아봅니다. 통근시간이 불필요해지면서 주 3-5일 새로운 것을 배우고 토론하는 웨비나가 일상이 되었습니다. 의지만 있다면 원데이 클래스부터 수료증을 발급하는 과정까지 VOD 스트리밍 서비스는 다양합니다. 대학교나 정규 교육과정에는 딱히 돈과 시간을 투자해서 배우고 싶은 것이 없었는데 관심의 폭도 넓어졌습니다. 전문분야가 아니다 보니 아직은 패스트 팔로워에 머물고 있습니다. 그중 인상적인 플랫폼 몇 가지를 추천합니다. edX를 통해서 세계 유수한 대학의 수업이 오픈되면서 영어가 가능하다면 무료로 들을 수 있는 양질의 수업이 많습니다. 그중 가장 흥미를 끌었던 것이 MIT Media Lab입니다.
언어적인 장벽이 있다면 토크 아이티를 추천합니다. 서울공대 출신의 베테랑 고우성 대표님의 진행으로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몇 번 들었던 내용인데도 나이 때문에 돌아서면 잊어버리고 내용이 가물거릴 때면 속이 상합니다. 20년 전에 배웠던 지식이나 기술로 멈춰 버티고 있으면 현장에서 바보가 되기 십상이기에 복습까지 하면서 따라갑니다. 창피해도 질문을 하면 부끄러웠던 감정이 섞여 오래 기억에 각인이 됩니다. 그 누구도 모든 분야에서 박사일 수 없기에 전체를 관망하면서 때로는 정곡을 찌르는 질문과 대답을 주고받으면서 저 같은 비전공자들도 따라갈 수 있도록 품고 이끌어주는 고 pd님의 역량이 빛을 발합니다. 이 자리를 빌어서 따끈따끈한 웨비나 잘 듣고 있다고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르 바공 (Le Wagon)은 프랑스 형제가 운영하는 에듀테크 스타트업입니다. 코로나가 터지기 직전, 오프라인에서 만나 ruby와 data scraping 등 밋업을 했습니다. 스스로 질문하며 풀어갈 수 있도록 가르치는 프랑스식 교수법이 낯설었지만 마음에 들었습니다. 참 교육자의 역할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많습니다. 단순히 호봉이 높다거나 좋은 대학을 나왔다거나 아는 것이 많다고 훌륭한 스승이 되는 것은 절대 아니기 때문이죠. 대한민국에서 영재교육과 주입식 교육을 받으면서 잃은 것이 많았던 저였기에 자녀들만큼은 자기 주도 학습을 시키겠다고 다짐했지요. 그리고 마흔이 넘어 개발자의 길에 들어서면서 거북이처럼 느리지만 창의적인 과정을 충실히 밟고 있습니다. 전 세계 수강생들과 실시간으로 모이려다 보니 한국 시간으로 새벽 2-4시 웨비나가 잡히는 경우가 있지만 알찬 내용으로 피곤한 줄도 모릅니다.
박사과정 중이던 후배, 친구 등 유명을 달리하는 모습을 목도했습니다. 30대였던 후배는 일과 공부를 병행했는데, 회식을 마치고 새벽에 귀가하던 중 쓰러져 객사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상경해서 탄탄대로를 걷는 줄로 알았는데 그녀의 갑작스러운 부고를 믿기 어려웠지요. 무명 소설가이자 한 아이의 엄마로 50대에 박사학위에 매진하던 선배도 올해 갑자기 지병으로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어중간하게 40대에 박사과정을 시작한 친구는 동갑내기 지도교수한테 밑 보여 10년째 논문을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육아와 학업을 병행하면서 스트레스와 열등감은 쌓였고, 그 사이 사회적 명망과 지위가 높아진 아내와는 결국 이혼을 하였습니다. 쉰이 넘어서 박사학위는 받았지만 어느 대학에서도 반기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개인사업자로서 한옥 임대업을 하고 있습니다. 사장님이 될 거라면 굳이 박사까지 필요하지 않았는데 가족도 잃고 여러 가지로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일찍이 결심했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즐기면서 나중에 운이 따른다면 명예박사를 받기로 말이지요. 본인도 헤어나지 못할 정도로 깊숙이 파고드는 것보다는 여러 개 파는 것이 확률적으로도 좋으니까요. 박사학위가 있으면 잠시 지름길로 갈 수 있겠지만 인생에 있어 득이 될지는 더 고민해 봐야겠습니다. 혹시 써먹지 못하는 박사학위를 가진 미취업자 분들이 계시면 연락 주십시오. 창업으로 세상을 바꾸는 멋진 프로젝트에 초대하고자 합니다. © Lisay 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