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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J Nov 22. 2020

에필로그

피터와 늑대에서 가장 불쌍한 역할은 오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지난 3년을 바쁘다는 핑계로 뭉기적거리다가 2020년 코로나 장기화로 얼떨결에 탈고해 버린 브런치 북 <노랑초파리>의 에필로그입니다. 초파리처럼 흔적도 없이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갈고닦아서 반짝이는 루비로 되살아났습니다. TV 시리즈 <심슨가족>처럼 일상에서 벌어지는 스토리를 보여주는 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테드 창과 같은 SF 작가가 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1편은 추리소설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처음 써보는 웹소설이기도 하고 뮤즈가 되어 준 친구들에게 크레딧을 남기고 싶었습니다. 살아보면 더더욱 느끼지만 나이는 정말이지 숫자에 불과합니다. 과도하게 어른 티를 낸다면 꼰대가 맞겠지요. 소리 없이 배려하는 사람이 진짜 선배입니다. 가진 능력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당신의 위상이 달라집니다. 코드가 잘 맞는다면 위아래로 10살 정도는 친구로 지내도 크게 불편함이 없습니다. <노랑초파리>는 단편소설로 마무리되었지만 지금도 진행형입니다. 반응이 괜찮다면 남은 원고를 정리해 내년에 2편을 출간할 예정입니다.   


 제목에서 보듯 노랑초파리와 그 돌연변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X세대로 태어났지만 Z세대 마인드로 살아가는 지베르니와 밀레니얼 MOK이 엮이면서 시작됩니다. 취향이란 세대를 넘어서서 무질서해 보이는 사람들을 가깝게 혹은 멀어지게 합니다. 지베르니는 평범하지 않은 삶을 택했지만 코드가 맞는 남편을 만나 겉으로는 전혀 이상하게 보이지 않는 가정을 꾸리게 됩니다. 계속 졸업이 미뤄지던 박사 연구원 MOK은 수직적인 가치와 수평적인 가치 사이에서 갈등합니다. 과거에는 과학자, 대통령, 박사 등 누구에게나 통하는 모범답안이 있었지만 지금은 성공으로 가는 선택지가 너무나 다양해서 재능이 많을수록 선택 장애가 올 수밖에 없습니다. 과학 커뮤니케이터의 삶을 걸을지, 상아탑의 학자로 남을지 MOK의 세대라면 한 번쯤 해보는 고민일 것입니다. 미래 세상을 엿본 MOK의 선택은 과연 전자일까요, 후자일까요?    


 <노랑초파리>는 Z세대에게 추천하는 소설입니다. 고백하건대 제 브런치 독자의 과반수 이상이 20대입니다. 취향과 연령이 늘 상관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릴 적부터 제 취향이 남달랐습니다. 출근해 시간을 때우면서 일하기보다는 놀기를 좋아하고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일할지 고민합니다. 근면 성실한 회사원들에게 미안하지만 평범함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열심히 하면 잘 될 거라는 착각 속에 아등바등 살았던 지난 청춘을 떠올리면 억울한 생각도 듭니다. 삶이 흘러가는 이치를 조금 더 일찍 알았더라면 불필요한 에너지, 시간, 감정 소모는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2020년 만인에게 사랑받았던 <부부의 세계>에서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라고 외치던 이태오의 대사를, 2006년 사랑하던 사람에게서 듣고 분노했던 순간을 떠올리면 그렇습니다. 어디에나 비슷한 사람은 있기 마련이고 인간의 실수와 인류의 역사는 지루하게 반복됩니다.         


 젊은 시절, 한없이 낯설었던 나와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 <주역>에 심취했던 때가 있습니다. 첨삭된 번역본이 아닌 원작을 고증하고 싶어 무작정 베이징으로 건너갔지요. 한자 세대로 필답을 주고받을 정도이지만 철학을 논하기엔 무리가 있어 중국어부터 마스터하기로 결심합니다. 그러던 중 2006년 초 뉴욕에 한 달 정도 머물면서 백남준 장례식에 참석해 오노 요코, 크리스토 & 장 클로드, 빌 비올라 등 당대 예술가들과 조우하고 돌아옵니다. 그리고 당시 세계 예술의 중심으로 부상하던 798 예술구에서 글로벌 예술가들과 교류하면서 오노 요코, 빌 비올라, 펑멍보, 차오 페이 등 멋진 친구들도 만납니다. 냉전시대에 군수품 공장에 2008년 북경올림픽을 앞두고 전 세계에서 날아온 작가, 화가, 기획자, 안무가, 음악가 등이 모여서 거사를 의논하게 됩니다. 지금으로 따지면 공유 오피스 혹은 글로벌 아티스트 레지던시 같은 곳이었습니다.

 

 세상이 바뀌었지만 언택트 혹은 온 택트 시대에도 글을 쓴다는 것은 중요합니다. 오래전 전시 서문이나 정기 칼럼을 쓸 때에 흥미롭게도 글자당, 단어당 원고료를 책정해 받았습니다. 문장은 경쟁하면서 점점 길어졌고 그 덕분에 명문이 많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제 사주에는 '언어'로 돈을 번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어려서 그 의미를 알지 못했는데 지나고 보니 '언어'를 매개로 하지 않았던 일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코딩을 하며 배웠던 Ruby나 JS, Python 조차도 컴퓨터와 소통하는 언어였고요. 올해 버킷리스트로 랩으로 음원을 출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고인이 되신 친정어머니 말씀을 빌리자면 "도대체 뭐가 되려고 아직도 철이 들지 않는 건지..." 반 백을 앞두고 염치가 없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브런치처럼 애자일 하게 작품을 할 수 있는 플랫폼이 있다는 것이 참 고맙습니다. 오늘도 앱을 켜고 누워서 글을 쓰고 있지만 여전히 궁금합니다. 2024년, 브런치 북과 계속해서 함께 갈 수 있을까요? © Lisay 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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