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 오리야
학창 시절 제 애칭은 '오리'였습니다. 오리를 닮은 것은 아니었는데 오리를 좋아해서 인형과 그림, 장식품, 옷, 액세서리 등 오리를 테마로 한 것을 모았습니다. 학교 앞에서 알을 낳을 수 없는 수평아리도 팔 때였으니 아기오리 한 마리 키워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가족들이 동물 털 알레르기가 있어서 집에서 동물을 키우는 것은 금지되었지만 마음 한편에 작은 소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요즘은 문조, 앵무새, 공작새 등 조류나 파충류를 반려동물로 키우는 사람들도 많아졌으니 좋은 세상입니다. 얼마 전 덕질의 일환으로 130cm, 180cm 거대한 거위형태의 바디필로우 (안아주라구스)를 구입했는데 보드랍고 폭신해서 휴식에 그만입니다. 때가 타서 세탁기에 돌릴 때면 마음이 아프지만, 애니메이션 <토이스토리>처럼 인형들이 살아서 움직이면 어떨까 항상 아쉬운 마음이 있습니다. 귀엽고, 엉뚱하고, 매끈한 다양한 생김새로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기도 하는 오리는 현대미술 작품 속에도 자주 등장합니다.
부화해서 10분 안에 보이는 것을 엄마처럼 졸졸 따라다니는 '각인'을 활용한다면 마치 내 새끼처럼 길들일 수도 있습니다. 오리는 20년 내외, 거위는 40년 이상 살 수 있으니 잘 키운 새 한 마리 열 강아지 안 부러울 것 같습니다. 암컷으로부터 매일 알을 얻을 수 있습니다. 태어난 지 6개월이 지나면 알을 낳을 수 있도록 성숙하고 조용한 환경에서 먹이와 공간까지 충분한 경우에는 무려 10년 동안이나 알을 낳는다고 합니다. 종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8~18개 모아서 품는 습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알을 누군가 슬쩍 가져간다면 어떻게 반응할까요? 개수가 채워질 때까지 매일 한 알씩 본능적으로 낳게 됩니다. 닭은 달걀을 만드는데 24시간이 걸리지만 오리는 대여섯 개의 알을 뱃속에 넣고 있다가 주기적으로 낳는다고 합니다. 이런 신비로운 이유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갈랐다는 안타까운 스토리가 나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오리알은 달걀보다도 1.5배 크기에 노른자는 2배 정도 크기에 영양성분도 가격도 배가 됩니다.
야생동물 공부를 하면서 오리 종류가 이렇게 많은 줄 몰랐습니다. 유선형의 몸, 발에는 짧은 물갈퀴가 있어 대부분의 시간을 물 위에서 보내며 수영이나 잠수를 하며 살아갑니다. 물 위에서는 우아해 보이지만 다리가 엉덩이 쪽에 치우쳐 땅 위에서는 뒤뚱뒤뚱 걷는 게 매력이지요. 오리 과에 속하는 거위, 고니 (백조), 기러기도 함께 살펴보면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습니다. 천연기념물로는 호사비오리, 뿔쇠오리, 큰고니, 혹고니, 흑기러기, 원앙 등이 있습니다. 학술적 가치가 있고 보존이 필요한 동물들이니 멀리서 감상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수렵장에서 수렵할 수 있는 동물 중 조류 13종에도 쇠오리, 청둥오리, 홍머리오리, 고방오리, 흰뺨검둥오리 등 다양한 오리들이 포진해 있습니다. 흰뺨검둥오리를 제외하고는 암컷과 수컷의 외양이 상이한데, 보통 동물의 세계에서는 수컷이 더 화려합니다. 암컷에게 잘 보여서 경쟁으로부터 짝짓기에 성공하기 위해서이지요. 인간 세상에서는 남성의 그루밍보다 여성들이 아름답게 꾸미는데 본능을 거스르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그리고 조류는 생태계교란종에 들어있지 않은데 날 수 있어 이동에 자유로워서 그런 모양입니다.
이빨이 없는 새들은 먹은 음식물을 분쇄시키기 위해 모래집 (근위)가 있습니다. 그래서 소화를 위해 사료와 함께 모래도 곧잘 먹습니다. 또한 본능적으로 벌레를 잡아먹을 수 있어 방제도 가능하고, 물을 좋아하기에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깔끔하게 그루밍에다 목욕까지 즐기는 편입니다. 이러한 특성들을 이용한 친환경농법인 '오리농법'도 있습니다. 벼가 다치지 않도록 몸집이 작은 청둥오리나 집오리와 교배한 카키 캄펠종을 활용합니다. 논 300평당 30마리를 풀어놓으면 적정한 밀도이고요. 오리가 해충과 잡초를 먹으면서 배설물을 놓으면 유기질 비료로 쓰이기에 일석이조입니다. 오리가 물갈퀴로 논을 헤집고 다니면서 중경탁수에 기여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인간이 하는 일이 계획대로 항상 이뤄지는 것은 아니기에 관리가 필요합니다. 밤에 오리가 자는 울타리를 잘 만들어두지 않으면 너구리나 족제비 등 야생동물들이 내려와 잡아먹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그리고 벼를 추수한 후 일이 없어진 많은 오리들을 판매, 처분, 가공 등 활용할 대책들도 준비해야 합니다.
조류독감 AI는 고병원성 (HPAI)과 저병원성 (LPAI) 두 가지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닭이나 칠면조는 급성 호흡기 증상으로 목이 돌아가거나 주저앉으면서 100%에 가깝게 폐사합니다. 하지만 청둥오리 등 야생동물은 보통 무증상으로 지내기도 합니다. 생명체의 자체 회복능력은 생각보다 훨씬 뛰어나니까요. 철새들은 계절에 따라 남쪽으로 혹은 북쪽으로 이동합니다. 만일 철새가 고병원성 조류독감이 걸렸다면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옳을까요? 소나 돼지 구제역의 경우 살처분보다는 백신주사를 놓는 방향으로 이제는 선회했지만 아직 조류는 그렇지 않습니다. 게다가 가금육은 섭씨 75도에서 5분간 가열하면 AI 바이러스가 사멸하는데, 행정적인 편의를 위해서인지 감염이 발생한 반경 3KM 이내에 살아있는 새들을 살처분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에 확진자에게는 지원금을 주면서 격리병동으로 보냈다면, 동물과는 소통할 수 없으니 증상만으로 일일이 분류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지요. 농장전체의 동물들을 구덩이에 쏟아붓고 매장해 살처분할 때 울부짖는 소리를 뉴스에서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동물에게 벌어진 살처분이 인간에게 벌어진 '홀로코스트 (holocaust)'와 대상만 바뀌었을 뿐이지 뭐가 다를까요. 그 후로 애도하는 기간을 가지면서 함께 목놓아 울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