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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J Aug 06. 2023

그럼 돼지는 누가 키우지

지속가능한 생태계를 위한다는 변명

멧돼지를 만나면 위급상황이니 그림으로 대신 그려보았습니다 copyright(c) 2023 All rights reserved

 7월 비즈니스 미팅 및 수렵강습으로 겸사겸사 대구에 갔었습니다. 수렵강습은 클레이 실기강습, 안전수칙, 수렵에 관한 법령과 절차, 야생동물의 보호 및 관리에 대해 5시간 동안 진행됩니다. 올해 하반기 필기시험이 어려웠는지 수렵면허 갱신자가 많았고 신규 합격자가 많지는 않았습니다. 필기시험 때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뒷자리에는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데 이상 행동을 하는 사람이 앉았습니다. 검은 마스크를 쓰고서 염불인지 방언인지 알 수 없는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있어 신경이 쓰였습니다. 행여라도 뒷사람 때문에 시험이라도 망치면 내년까지 기다려야 했기에 이번 시험에 꼭 합격해야 했습니다. 시험이 시작되고 감독관이 본인 확인을 하는데 뒷자리에 앉은 그녀는 마스크를 내리지 않겠다고 거칠게 반항하였습니다. 

"시험 치는데 조용히 좀 합시다!"라고 주위에서도 몇 차례 주의를 준 상태였습니다. 시험이 시작되고 45분이 지나자 천재였는지 아니면 다 찍었는지 답안지를 제출하더니 짐을 싸 나가버리는 것이었습니다. 분명히 요트조종면허보다 어려웠는데 괜한 오해를 했던 것이었을까요. 군대에 다녀오지 않은 저는 총포에 대해 정식으로 배울 기회가 없었기에 '수렵도구의 이해'에서 무자비한 감점이 있어 점수가 아슬아슬했습니다. 일주일이 지나 지방고시 합격자 명단에서 제 이름을 확인하였습니다. 진짜 궁금해서 바로 뒷번호를 확인해 보았는데 명단에 없었습니다. 뭐 응시하는 것은 자유니까, 그냥 불안한 영혼이셨나 봅니다. 

아프리카돼지열병으로 살처분되는 돼지들을 보니 마음이 착잡했습니다 copyright(c) 2023 All rights reserved

 신규 합격자들과 갱신자분들이 전국 각지에서 모였습니다. 본인확인을 하고 박수를 받으면서 입장했습니다.  <멧돼지 아프리카돼지열병> 팸플릿도 꼼꼼히 챙겼습니다. 중장년 남성분들이 대다수였고 부부동반으로 오신 분들이 많으셨습니다. 잠시 현타가 왔지만 수렵면허를 따러 서울에서 평일에 내려갔기에 정신을 차렸습니다. 멧돼지가 농가나 주택가에 갑자기 나타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시청각에만 의존하는 조류와 달리 멧돼지는 시력이 나빠 절대적으로 후각에 의존하기에 담배를 피우거나 향수를 뿌렸다면 멧돼지를 자극할 수 있으니 몸가짐을 사려야 합니다. 반려동물이 우는 소리가 멧돼지의 청각에 잡혀 잡아먹힐 수 있으니 풀어놓지 말고 단속해야 합니다. 다행히 멧돼지가 사람을 먼저 공격하는 일은 드물다니, 섣불리 도망치거나 총소리를 내며 무모하게 공격한다면 매우 위험합니다. 




과거 돼지콜레라로 알려진 돼지열병 (CSF)은 국내에도 사례가 있었고 RNA 바이러스가 원인입니다. 하지만 최근 국내에서 확산되는 아프리카돼지열병 (돼지흑사병, ASF, African Swine Fever)은 DNA 바이러스로 발생되는 다른 질병입니다. 1921년 아프리카 케냐에서 처음 발견되어 이름 붙여졌는데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 백신이 없습니다. 멧돼지에서 돼지농장으로 전염되면 10일 내 치사율이 100% 인지라 감염경로를 차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이러스 생존력이 혈액 (105일), 육포 (300일), 냉동돼지고기 (1000일)에 달해 이 때문에 국내에서도 2020년부터 멧돼지 고기를 먹는 것이 전면적으로 금지되었습니다. 해외입국 시 휴대축산물 (냉동순대, 냉동만두, 훈제소시지, 육포 등)을 신고하지 않으면 최대 1000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됩니다. 신고즉시 가져온 제품은 일괄 폐기 처분되니 가급적이면 현지에서 다 드시고 오길 바랍니다. 싱가포르에서 선물용으로 육포를 구입했다가 국내 반입불가 품목임을 뒤늦게 알고 창이공항에서 급히 나눠먹던 기억이 있습니다.



 환경부에서는 대대적으로 예산을 풀어 아프리카돼지열병 신고 포상제도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감염 폐사한 멧돼지를 신고할 경우 마리당 100만 원, 단순 포획 시 20만 원을 지급합니다. 엽사분들은 야생동물의 특성을 잘 파악하고 있기에, ASF에 감염된 멧돼지는 열을 식히려고 물가를 찾아올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게다가 GPS 포획트랩과 고해상 열화상 카메라를 장착한 드론으로 멧돼지의 이동과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어 백발백중입니다. 수렵면허를 갓 취득한 초보엽사인 저는 수렵은 하지 않을 예정입니다. 이미 수렵으로 큰 수입을 올리는 분들이 계시기에 그들과 경쟁하고 싶지 않습니다. 관련 사업을 구상하고 있어 지역에서 명망이 있는 엽사들과 프로토타입을 만들고 사업모델을 찾아가는 중입니다. 어느 분야나 상위 1%의 포식자들은 있기 마련이니 질투에 눈이 멀면 건강에 해롭습니다. 지역마다 예산이 다르다 보니 파이를 나눠먹어야 하는데, 의좋게 형동생으로 시작해서 영역싸움에 법적인 소송까지 오갑니다. 고소와 고발이 주로 면식범, 가까운 사이에서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니 내 이웃부터 잘 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회사에서도 일이 터졌을 때 내부고발자나 퇴사자가 문제인 경우가 대다수니까요. 처음부터 악의를 갖고 접근하는 사람이라면 피할 수 없겠지만 인연이라는 것이 상대성이 있습니다.

중국은 넓은 대륙만큼 식재료와 조리법이 상상을 초월합니다 copyright(c) 2017 All rights reserved

 잡식성인 돼지는 기본적으로 채식을 하나 동물도 잡아먹습니다. 배부르게 먹는 것을 싫어하고 초식을 선호하는 것이 참으로 저와 식성이 비슷합니다. 저는 고기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허혈이라 어쩔 수 없이 주치의의 권고로 육식을 하는 시기가 있으니까요. 몇 달 만에 육식을 하면 후각이 극도로 예민해져 소, 양, 돼지, 닭 특유의 냄새들과 맞닥뜨리게 됩니다. 덕분에 향신료와 향신채소 마니아가 되었는데 한중일을 대표하는 잎사귀들 깻잎 (들깨), 코리앤더 (고수), 시소 (자소엽) 등 여러 가지 허브는 고기요리에 필수입니다. 후추, 고추, 마늘, 양파, 파는 개성만점이라 육류에 잘 어울리지요. 삼겹살을 먹어본 사람이라면 고소함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식용으로 먹는 돼지는 멧돼지를 가축화한 것으로 같은 종입니다. 일반적으로 돼지는 암컷이 수컷보다 맛이 월등합니다. 이 때문에 사육하면서 일부러 거세돼지를 만들어 맛과 육질을 좋게 만들기도 합니다. <동물의 왕국>을 보면 육식동물이 다른 동물의 배 쪽부터 먹는 이유가 있습니다. 내장이 부드럽고 비타민과 미네랄 등 영양이 탁월하기 때문입니다. 육식을 할 때 12가지 부위가 일품이라 일컫는데 뇌를 최고로 친다면 오장: 간 (애), 심장, 비장 (지라), 폐, 신장과 육부: 대장, 소장, 쓸개, 위 (양), 방광, 삼초 (호흡기, 소화기, 생식기)를 포함합니다. 중국에서 돼지 뇌를 훠궈에 넣어 먹었는데 땅콩버터처럼 녹진하게 혀에 감겨서 코로 향이 올라오는데 천상의 맛이었습니다. 미식이라는 미명하에 몸 바쳐 헌신한 동물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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