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을 토스하다
2018년 앱스토어에서 첫 앱을 출시하면서 뿌듯했던 마음도 잠시, 그 후로 세 개의 소소한 앱을 만들었지만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원인을 생각해 보니 세상을 바꾸는 앱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러려면 선수들을 모아야 하는데 스타트업이라는 이름으로 각자 대표를 하고 있으니 구심점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블랙홀처럼 세상을 끌어당기는 앱을 만들기로 하고 섬에서 일주일간 제주 숙소에서 스테이케이션 (staycation)을 결정했습니다. 코로나로 작년에 이어 올해도 한 자리에 모이지는 못했지만 Zoom으로 400여 명 가까운 글로벌 개발자, 기획자, 디자이너, VC 등과 온라인 콘퍼런스를 진행했습니다. 24시간을 세 시간 단위로 끊어 룸서비스를 시키고 쪽잠을 자면서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영어, 중국어, 프랑스어, 러시아어 언어는 달랐지만 코드로 깃허브에 pull 하고 push 하면서 협업을 진행하였고 마침내 멋진 결과물로 돌아왔습니다.
40대에 코딩을 시작하는 것은 10대에 영어를 배우는 것만큼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 되었으니 나이가 많다고 새로운 것은 못하겠다는 것은 게으름이자 핑계에 불과합니다. 평생 비용을 지불하고 시킬 사람이나 자본이 없다면 수고스럽지만 스스로 배우는 수밖에 없습니다. 다행히 지난 20년 간 기획자와 디자이너와 VC 도메인을 두루 겪어본 덕분에 무엇이 강점이고 무엇이 부족한지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개발자로서 여정을 시작한 만큼 어린아이처럼 호기심 가득한 자세로 배우면서 코딩을 하며 글로벌 프로젝트를 조율하고 있습니다. 흥미롭게 테크 종사자들 중에 성공한 사람들은 대학 중퇴를 한 괴짜들이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쪽 업계에서는 포트폴리오로 평가하지 나이도 학력도 묻지 않는 것이 불문율입니다. 실력이 학벌이나 연륜과 비례하는 것이 아니지요. 차별이나 특별대우 없이 감정을 배제하고 동등한 인간으로 대접하겠다는 개방성이기도 합니다.
국내외에 출시된 거의 대부분의 금융 애플리케이션을 다운로드해서 가입하고 일주일간 사용하면서 살펴보았습니다. 재미있게도 같은 이름을 쓰는 계열사라도 공동인증서 (구 공인인증서, 이름만 달랐지 달라진 것 하나 없다)가 호환되지 않는 곳이 허다했습니다. 기술개발과 운영, 유지보수에 들어가는 비용이 아까운 것인지 몇 년 전에 앱이나 웹을 구축하고 오류 투성이인데 단 한 번도 업데이트를 하지 않은 금융사가 과반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암호화가 필수인데 과거 기술 저작권의 문제로 암호화조차 하지 않은 사이트도 엄청나게 많았습니다. 개인정보를 다루고 데이터를 저장하고 신용으로 돈이 오가는 플랫폼에서 저렇게 안일하나 싶을 정도로 말입니다. 이미 대한민국 국민의 개인정보가 해외에 팔려간다는 소문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습니다.
위드 코로나 시대가 열리면서 과거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기회들이 생기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연예인, 도둑, 노약자 등 신분을 숨기기 위한 사람들의 전유물이었던 마스크가 일상 템이 되었습니다. 얼굴 절반을 가리면서 '마기꾼'이라는 신조어도 등장하면서 아름다움의 기준도 달라졌습니다. 그러고 보니 지난 1년 간 피부과에는 갔지만 색조화장품을 구입해서 치장할 일이 없었습니다. 공인이 아닌 이상 가족에게 과하게 잘 보일 필요는 없으니까요. 그리고 투잡으로 갭 투자, 리츠 투자 등 재테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대한민국 근로소득의 누진세 구조를 이해한다면 1억이 넘는 연봉을 받아도 부족할 수밖에 없는 '6두품의 비애'를 조금이나마 알 것입니다. 하지만 돈만 있다고 무엇이든지 살 수 있는 것들이 아니라 시간과 정성을 들여야만 얻을 수 있는 소중하고 희소한 것들이 있습니다. 물론 행운을 당겨줄 믿을만한 인맥은 덤으로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부담 없이 연락해서 부탁할 수 있는 훌륭한 친구가 한 명이라도 주변에 있다는 것은 참 복 받은 것입니다.
어쨌든 이번 주제는 금융을 혁명적으로 바꾸자는 것이었습니다. 이미 은행은 사라지고 있지만 신용을 기반으로 한 지불, 대출, 송금, 주식 등 레거시를 뒤엎는 수천 개의 아이디어를 주고받으면서 삼삼오오 그룹으로 코드로 구현해 보았습니다. 보안상의 이유로 리눅스만 사용하다 보니 한국에서 금융업무를 보다가 공인인증서 문제로 인내심이 바닥나서 거래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던 말도 안 되는 경험을 진하게 녹여내었습니다. 글로벌 빌런 빌 게이츠 때문에 멋도 모르고 익스플로러를 사용해 왔던 지난날부터 구글이 주도하는 상생형 오픈 생태계와 10년 남짓한 블록체인까지 여러 대안들이 나왔습니다. K-food, K-pop, K-drama를 긍지로 성장한 MZ세대가 리더로 활약하고 있는 요즘, 젊은이들에게 귀 기울 수 있는 포용력이 필요합니다. 주변 사람들을 탓하기 전에 안목이 없어 나락의 길을 걸었던 본인의 선택을 반성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 Lisay 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