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이도 ★
매너리즘에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20년 넘게 걸어온 도메인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험을 해 보겠다고 팔자에도 없는 한눈을 팔았던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사건의 발단은 베이킹 클래스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평생 가지 않았어도 될 '부산시 영생교육원'을 두드린 건, 지금 생각해도 인생 최대의 악수(惡手)였습니다.
401호 낡은 강의실 문을 열자마자 숨이 막히는 듯한 위압감이 밀려왔습니다. 스무 명 남짓한 중년 여성들이 앉아 있었고, 모두가 짧은 머리, 앞치마와 마스크를 쓰고, 약속이라도 한 듯 안경을 쓰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들은 노안 때문에 돋보기를 쓰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강사로 보이는 독기 어린 눈의 남성이 서 있었습니다. 평소 운동을 하는 사람인지 유니폼 위로 근육 부심이 넘쳐났습니다.
"자, 다들 주목하세요. 행복을 굽는 제과명장, 배웅입니다. 오늘 처음 온 사람은 없죠? 이 주방에 들어온 이상, 내가 시키는 대로 '완벽한 복종'을 하세요. 내 방식에 감히 의문을 갖는다는 건, 실패한 빵을 가져가겠다는 선언과 다름없어요."
부산 악센트에, 약간 사시가 있고, 말을 더듬는 강사는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꼰대였습니다.
'제빵'과 '제과'라는 기본 용어조차 구분하지 못하고 혼재하여 쓰는 모습에 신뢰감은 바닥에 떨어졌습니다.
우선 '빵(강력분)'과 '과자(박력분)'는 사용하는 밀가루 종류부터 다릅니다. 발효 과정이 있으면 '빵'이고 베이킹파우더 등 팽창제를 사용하면 '과자'라는 것은 상식입니다.
더욱이 2026년 대한민국에는 단 17명의 제과제빵명장이 있는데, 아무리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 그의 이름과 '제빵기능장'이라는 듣도보지도 못한 호칭에 '수강 취소를 하겠다'는 마음뿐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재료비를 자신의 개인 계좌로 따로 입금하라고 강요하는 것이었습니다.
부산시 이름을 걸고 지원금을 받고도, 강의 내용은 유튜브보다 허접하고, 자격증과는 거리가 멀고, 시설도 비위생적이고 형편없었습니다.
주요 수강생들은 남편이 출근하고 자녀들이 학교에 간 시간을 때우려는 전업주부거나 은퇴자들이었고 젊은 커리어우먼이 스며들기는 거의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첫 시간은 난이도가 쉬운 <마들렌>입니다. 버터 200g을 냄비에 올리면서 시범을 보였습니다.
차갑고 단단했던 모서리가 서서히 허물어져 황금빛 액체로 변해 갔습니다. 버터가 갈색으로 변하며 고소한 풍미를 내뿜는 순간, 불을 끄고 잠시 식힙니다.
커다란 스텐볼에 실온에 둔 달걀 3개를 깨어 넣고 설탕 150g과 소금 한 꼬집을 더합니다. 거품기를 쥔 손에 힘을 빼면서 '오버 믹싱'이라는 폭력을 경계하며, 달걀과 설탕이 부드럽게 섞일 때까지 일정한 리듬으로 저어 줍니다. 설탕의 서걱거림이 녹아 사라지고 반죽이 뽀얀 빛을 띠며 '거품'을 머금습니다.
체친 밀가루 180g과 베이킹파우더 4g을 액체 위에 뿌리고 가루들이 뭉치거나 고립되지 않도록 아래에서 위로 조심스럽게 실리콘 주걱으로 자르듯 섞어 줍니다. 반죽에서 매끄러운 윤기가 돌면 레몬 제스트를 한 줌 뿌려, 텁텁해질 수 있는 밀가루 반죽에 상큼한 생명력을 더합니다.
중년 여성들은 베이킹을 배우러 온 것이 아닌지, 강의 내용에 집중하기보다 강사의 전완근과 대흉근에 반응했습니다. 앞에 앉은 보라색 안경을 쓴 백발의 할머니는 "아까 휘핑을 할 때 보니까 우리 남편보다 힘이 나은 것 같아~"라며 깔깔대며 저속한 뒷담화로 외모 품평회를 합니다.
소란스러운 와중에 웃지도 않고 말없이 마들렌 굽기에만 열중하는 내가 신기한지 "지기 오늘 처음이지? 나이가 몇 살이야? 새댁이야? 아이는 있어?"라며 개인적인 질문들을 퍼부었습니다. 나는 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침묵했습니다. 불편한 분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중장년들 특유의 붙임성으로 끈질기게 말을 이어갑니다.
"내가 이 동네 토박이라 맛집은 다 꿰고 있거든. 다음 주 끝나고 우리랑 같이 식사 안 할래요? 배웅 씨 아들이 우리 아들하고 공군 동기잖아! 우리 교회 집사님이라 내가 좀 알지."
이 씨는 안 궁금한 TMI를 시전 하며 필사적이었습니다. 어떻게든 뉴페이스를 '계모임'으로 끌어들이려는 듯 반말과 존댓말을 섞어 쓰면서 안간힘을 쓰는 듯 보였죠. 달콤함을 가장한 초대는 나를 구속하려는 올가미처럼 느껴졌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번아웃이 와버려 도망치듯 휴가를 온 직장인에게, 중장년들의 무의미한 허송세월에 동참할 이유는 없었습니다. 내 시간과 감정을 소모할 바에 차라리 구석에서 과자를 굽고 유기견을 후원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솔직한 심정으로 무례한 사람들과 단 일초의 시간도 섞고 싶지 않았으니까요.
식혀 둔 버터를 반죽에 조금씩 흘려 넣으며 섞어, 반죽을 최소 1시간 냉장고로 보냅니다. 마들렌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재료들이 숙성될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실습에서는 3시간 내에 끝내야 하기에 냉장실에 30분 있다가 바로 오븐으로 옮겨 구워야 했습니다.
오븐을 180°C로 예열하면서 보니 기름에 절어 잘 닦이지 않은 조개 모양의 틀을 나눠 줍니다. 찝찝하지만 거친 수세미를 준비해 가지 못했던 터라 차가운 휴지를 마친 마들렌 반죽을 평평하게 틀에 짰습니다. 오븐에 틀을 밀어 넣고 유리창 앞에 앉아 숨을 죽이고 바라보았습니다.
10분 뒤,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고요했던 마들렌의 중심부가 볼록하게 솟아올랐습니다. '배꼽'이 예쁘게 올라와야 마들렌이 잘 구워진 것입니다. 오븐 장갑을 끼고 마들렌을 꺼냈습니다. 노릇하게 구워진 마들렌에서는 밀가루 풋내나 계란 비린내가 나지 않습니다.
한 입 깨물었더니 레몬향이 퍼지는데 누군가와 이 맛을 나누고 싶다는 '연결의 욕구'가 피어올랐습니다.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 1871.7.10~1922.11.18)가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쓴 것처럼 주인공인 찻물에 적신 마들렌을 먹으면서 유년 시절을 회상하듯 추억에 잠기지요.
회사에서 즐겨 먹던 간식 '시트러스 마들렌'과 '크림뷔릴레 마들렌'의 부드러움에는 못 미쳤지만 첫 결과물에 뿌듯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수강생들이 성공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뒷담화에 열중하다가 레시피를 안드로메다로 보내버린 그 수다쟁이 할머니의 마들렌은 배꼽 없이 반죽만 익었습니다. "어차피 뒤집어 놓지 않으면 다 비슷해 보여서 알 수 없어. 집에 가서 다시 할 거고, 이건 딱딱해도 내가 다 먹을 거야~"라며 겸연쩍게 또 크게 웃습니다.
실습을 마치고 접수처에 내려가 보니 그곳엔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니라는 듯 '수강료는 낙장불입(落張不入)'이라고 큰 글씨로 붙어 있었습니다. 낚여 버린 사냥감에게 보내는 조롱 같다고 느껴졌습니다. 내가 규정을 조목조목 따져 물었으나 돌아오는 것은 불쾌한 표정과 손사래뿐이었습니다.
"오늘 마들렌도 잔뜩 구워서 가져가면서 무슨 환불을 해요? 그럼 재료비는 다 내고 나오지 마세요."
직원의 단호함에는 확신이 서려 있었습니다. 결국 12만 원 재료비라도 회수하려면 어쩔 수 없이 한 달을 다닐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 않고, 로스쿨 시절 갈고닦은 전문성을 발휘해 어퍼컷을 날렸습니다. 영생교육원을 관할하는 부산시청 위생과에 시설 관리와 운영에 대하여 정식 민원을 접수했습니다.
그리고 4주가 지나 8회 종강 때까지, 그들의 '물주(物主)'로 응하지 않자 관심은 순식간에 식어버리고 웃음기 빠진 자리엔 가시밭길이 놓였습니다.
정의를 구현하려다가 도리어 덫에 걸려들었습니다. '세 사람이 거짓말을 하면 없던 호랑이도 만들 수 있다.'는 옛말처럼 정상인을 범죄자로 만드는 것은 순식간이었습니다.
그들보다 많이 배우고 법을 안다는 자신감은 무쓸모했고, 발버둥 칠수록 늪으로 더 깊게 가라앉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