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낭시에(Financier)와 자본주의

난이도 ★

by Y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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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오전과 수요일 오전 베이킹 클래스, 오븐이 예열되는 실습실 안은 소란스러웠습니다.


두 번째 시간은 휘낭시에(Financier), 초보자도 쉽게 따라서 만들 수 있는 난이도 하급입니다.


19세기 파리 증권가의 금융가에서 즐겨 먹었다는, 그 모양부터 철저히 자본주의적인 '금괴 모양'입니다. 하지만 시에서 운영하는 교육원에 금궤 모양 틀이 있을 리가 없었죠.


며칠 전 등장했던 기름이 찌든 마들렌 틀이 어김없이 재등장했습니다. 조개 모양으로 휘낭시에를 만들라는, 베이킹의 기본도 모르는, 근본 없는 클래스였습니다.


"조개 모양을 금괴라고 상상하며 빵을 만드세요. 겨우 그 돈 내고 배우면서 장비 탓을 하면 미친 겁니다. 제대로 배우려거든 개인 강습을 받으세요. 우리 집으로 오면 컨벡션 오븐부터 장비가 없는 게 없으니까."


아주머니들은 배 씨의 한마디에 뭐가 좋은지 빵빵 터지며 자지러졌습니다. 이번에도 그 웃음소리를 뒤로하고 나는 묵묵히 버터를 태웠습니다. 속으로 '주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본인이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업무상 배임을 하는 것조차 알지 못하는 사람입니다.'라고 기도하면서 8회가 끝날 때쯤 누군가 법으로 처벌하리라 다짐하면서 때를 기다렸습니다.


수다스러운 남자도 질색인 데다 배 씨는 말끝마다 돈을 운운하며 정나미 떨어지게 굴었죠. 부산시의 지원을 받는데도 백화점의 문화센터 클래스와 비용이 별반 차이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실습 퀄리티가 형편없었던 것은 누군가 중간에서 재료비를 장기간 빼돌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베이킹으로 돌아와서 첫 시간에 만든 마들렌과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휘낭시에의 반죽에는 계란 흰자만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아, 남은 노른자는 버리지 않고 다 모아서 계란 지단으로 부쳐 먹었습니다. 그리고 쫀득쫀득한 식감을 만들려면 '버터 태우기(Beurre Noisette)'를 해야 합니다. 버터를 냄비에 녹여 기버터 상태를 지나서 타기 직전 아슬아슬한 경계까지 버터를 몰아붙이면 '헤이즐넛 향' 같은 버터의 깊은 풍미가 살아납니다. 매일 스스로 한계까지 몰아붙이며 가치를 증명하는 과정과도 닮아 있습니다.


틀에 반죽을 채우며 생각했습니다. 진짜 '휘낭시에'의 정신은 부풀려진 화려한 모습이 아니라 치밀한 밀도라고 말이지요. 묵직하게 제대로 잘 구워진 휘낭시에를 하나 먹으면 든든합니다.


내 옆자리, 한눈에 봐도 가품으로 보이는 로고가 커다랗게 박힌 티셔츠를 입은 아주머니들의 대화는 휘낭시에의 반죽보다 더 끈적하게 달라붙었습니다.


"올 초에 남편이 퇴직금 탄 걸로 테슬라로 바꿨잖아. 전기차라 조용하고 승차감부터 다르더라니까."


펑키 파마를 하고 동그란 안경을 쓴 아주머니가 요란하게 수다를 쏟아내고 있었습니다.


"어머, 좋겠다. 우리 남편은 내가 올해도 베이킹 수업 듣는다고 하니까 하루에 5만 원만 쓰라고 신사임당 한 장만 용돈으로 주더라고. 학부형들하고 더치페이하라는데 얼마나 치사하던지. 아니 지금껏 밥 차려 주고 애 둘 낳아서 키워 줬으면 고마운 줄 알아야지. 하하하하."


아들을 키운 엄마들과 딸을 키운 엄마들은 행동과 말투가 아예 다릅니다. 장모와 시어머니의 바이브 (vibe)는 출산을 하면서 생기는 호르몬의 변화로 본인들조차 어쩔 수 없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녀들은 전업주부라 주로 남편의 사회적 지위와 월급으로 서로의 서열을 확인하고 있었습니다. 십 원 단위까지 칼같이 나누는 더치페이로 알뜰함을 뽐내다가도, 이내 백화점 VIP 등급과 럭셔리 가방으로 화제를 옮기는 그 맥락 없는 대화는 모순으로 가득했습니다. 과연 그 재미의 끝은 어디인지 궁금해졌습니다.


그녀들이 생각하는 돈은 그저 '써 버리기 위해 주어지는 것'이었습니다. 돈을 버는 과정의 치열함이나 그 물질이 상징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같은 사회적 책임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그녀들에게 휘낭시에를 굽는 행위는 그저 '버터향이 나는 우아한 취미생활'에 불과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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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븐 안에서 휘낭시에가 금빛으로 익어갔습니다. 그녀들은 서로의 결과물을 비교하며 "내 것이 더 커 보이는데? 오늘 끝나고 점심은 뭐 먹을까?"라는 식의 말장난을 하고 있었습니다.


잠시 멈췄기에 이 귀한 순간을 허투루 보낼 수 없었습니다. 돈은 수단에 불과하기에 자산으로 바꾸지 않으면 금세 사라져 버리는 신기루와 같습니다. 누군가는 매달 영혼을 갈아 넣어서라도 월급이 들어오는 달콤한 순간을 위해 직장 생활을 하겠지만, 나는 자유를 살 수 있다면 얼마라도 지불할 의향이 있습니다. 소비의 궁극적인 목적은 감가상각이 발생하지 않는 가치에 있습니다. 명품 가방도, 수입차도 언젠가는 기능을 다한 쓰레기일 뿐이죠. 사람들은 자신과 비슷한 집단 속에서 안전함을 느낍니다. 그 관성을 깨고 나올 수 있어야 나를 찾아 성장할 수 있겠지요. 그래서 매너리즘에 빠진 조직일수록 '탈출은 지능순'이라는 말이 나오는 겁니다.


'개처럼 벌어 정승같이 쓴다'는 말은, 자본주의의 노예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자본을 부리는 주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들어오는 수입에 맞춰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것을 다 소비해도 부족함이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식힘망 위에 놓인 빛나는 골든 휘낭시에를 바라보았습니다. 이것은 나의 고독한 취향이 빚어낸 '진짜 자본'이었습니다. '벌써 두 번째 시간을 마쳤다. 여섯 번만 더 보면 이 불편한 관계를 끝낼 수 있겠지!'라고 생각하니 기뻤습니다.


그래서인지 오늘 강의실을 나서는 발걸음은 가벼웠습니다. 그녀들의 등쌀에 못 이겨 부산에서 핫하다는 피자집으로 점심을 먹으러 함께 갔습니다.


자기, 참 깔롱지네! 서울에서 왔어?



그녀들은 당연히 자기들이 연장자라고 생각했는지 말을 놓으며 주민등록증을 꺼내 보이면서 소개를 시작했습니다. '심각하고 이상한 이 분위기는 뭐지?' 생각이 들었지만 룰은 따라야 하니 나이와 직업을 공개해야만 했습니다. 누구나 있는 주민등록증은 너무 식상해서 나는 부산에서 갓 취득한 요트 조종 면허를 꺼냈습니다.


"저는 강남에서 왔고요, 돌아가신 어머니가 자란 제2의 고향이 부산입니다. 얼마 전 돌아가셨는데 아직 일상 회복이 쉽지 않아서, 안식월로 왔어요. 마침 회사하고 연계된 레지던스가 있어서 부산에서 한 달 살기를 하고 있습니다. 자녀는 셋, 올해로 결혼 30년 차라 애들은 다 독립했어요."


순간 정적이 흘렀습니다. 막내일 줄 알고 부려먹으려다 빼도 박도 못하고 언니로 모셔야 할 상황이었습니다. 부산 토박이라던 이 씨가 소개해 준 이재모 피자와 부사노 휘낭시에는 너무나 맛있었기에 내가 지불했습니다. 동생들에게 사업하는 언니가 밥은 사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실 나이가 들면 무언가를 사서 모으는 것이 부담스러워지는데, 새로운 것을 배우거나 아웃리치(outreach), 맛집 탐방 등 서비스 경험을 위해 플렉스하고 있습니다.


오래간만에 가슴이 탁 트이는데 부산 바다의 비릿한 해풍이 시원하게 느껴졌습니다. 내가 먹고, 내가 사는 것이 트렌드가 되는 그날, 그녀들은 내가 구웠던 휘낭시에의 진짜 향기를 그리워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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