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스타벅스
나의 구직 과정은 사실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어렵지 않다기보다는 다른 구직 과정과 조금 달랐다. 운이 좋게도 이 당시의 네덜란드 스타벅스는 아직 Retail store 였고(지금은 모든 네덜란드의 스타벅스는 licenced store, 즉 프랜차이즈 스토어로 바뀌었다), 영국에 살고 있던 나는 그만두기 아쉬워서 일주일에 2-3번 나가는 파트타임으로 스타벅스에서 계속 일을 하고 있었고, 혹시 하는 마음에 영국과 네덜란드의 두 헤드오피스에 트랜스퍼가 가능한지 물어봤고, 대답은 '예스'였다. 네덜란드로 완전히 이사 오기 전, 마지막으로 암스테르담에 방문했을 때 트랜스퍼가 가능한 retail store list를 만들어서 직접 매장을 돌아다녀봤고, 마음에 들었던 몇 군데에 하이어링 여부를 물어봤다. 그리고 네덜란드로 이사를 온 후, 제일 일하고 싶었던, 그리고 내가 일을 하게 됐던 그 매장에 가서 매니저를 만나 트랜스퍼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매니저인 마릿은 나에게 자기소개를 해달라고 해서 가볍게 자기소개를 하게 되었다. 타이밍이 좋았던 걸까- 마릿은 보다시피 이제 날씨가 슬슬 좋아지고 있어서 바빠질 거라며 마침 사람을 뽑는 중이었는데 너의 경력이 아주 맘에 든다고 했다. 일을 하려면 BSN과 은행 계좌가 꼭 필요하니 두 가지가 해결이 되면 꼭 알려달라고 했다. 그리고 나의 영국 파트너 넘버가 써져있는 카드를 사진을 찍어갔고, 나는 그녀에게 나의 영국 스타벅스 매장 전화번호를 알려줬다.
그리고 얼마 후 나는 형식적이지만 하이어링 과정에 필요한 인터뷰를 보기 위해 다시 매장을 찾게 되었다. 틸에 있는 파트너에게 매니저를 만나러 왔다고 하고 음료를 주문한 후 자리에 앉아서 기다리니 지난번 만났던 마릿과 또 다른 매니저인 리바카가 나왔다. 약간 예상하지 못했던 2:1 인터뷰였다. 하지만 이상하게 뭔지 모를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었다. 마릿이 내가 일했던 영국 매장에 전화를 했는데 전화를 받지 않았다고 하는 이메일을 받아서, 영국 매장의 매니저인 디날에게 얘기했더니 이메일 주소를 알려주면서 그녀에게 이메일을 보내라고 했다. 그리고 마릿의 말로는 디날과 이메일을 주고받았는데 디날이 나에 대해 아주 좋은 레퍼런스를 써주었다고 한다. 2년을 풀로 꾸준히 일하면서 매니저와 트러블을 만들지 않았던 결과였다. 인터뷰는 딱히 어려운 것이 없었다. 지난번에 리바카는 없었기에 나의 소개를 듣지 못하여 다시 자기소개를 했고, 전 매장에서 어떻게 일을 했는지, 그전에 살았던 나라에서는 무슨 일을 했는지 등등의 아주 기본적이고 간단한 것들에 관하여 얘기하였다. 서로 질문과 대답을 주고받으며 인터뷰를 마쳤고, 다행히도 BSN만 받으면 바로 일을 시작하기로 하였다.
얼마 후 나는 BSN을 우편으로 받았고, BSN을 받은 날 바로 동네의 ING 은행을 찾아 계좌를 만들고 마릿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그리고 얼마 후 시내에 나갔을 때 매장에 들러 마릿을 만났고, 나의 첫 쉬프트를 받게 되었다.
첫 출근을 하던 날, 마릿은 쉬는 날이어서 ASM이었던 리바카의 안내로 커피 테이스팅을 하며 컨트랙 종이에 하나하나 사인을 하기 시작했다. 파트너 혜택이 런던보다 좋은 것도 있었고 별로인 것도 있었다. 다만 좋았던 점 중 하나는 내가 일하는 매장에서 집까지의 거리가 7.5km 이상이면 교통비를 지원해 준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Personal OV-Chipkaart는 필수였다. 처음 3개월을 Diemen에서 살았기에 거리가 8km쯤 되어서 나는 출퇴근 차비를 월급 때 다시 돌려받을 수 있었다. 그 이후에 이사 간 Osdorp는 200m 차이로 7.5km가 안된다며 차비를 지원받지 못하는 일이 생기긴 했지만.
나는 당연히 트랜스퍼된 거라서 파트너 넘버도 같을 줄 알고 펀치인 할 때 영국에서 쓰던 파트너 넘버를 입력했는데 펀치인이 안 되는 것이었다. 아직 번호가 안 넘어온 거겠거니 하고 첫날은 틸 대신 바에서 음료 만들기만 8시간 동안 했다. 영국에서는 스타벅스가 세컨드 잡이어서 시간도 최대 5시간 정도 일주일에 두세 번만 일했는데, 오랜만에 8시간을 풀로 일하려니 꽤 피곤했다. 게다가 수많은 더치어들의 향연으로 그 피로감은 더욱 심해졌다. 같이 일하는 동료들은 반 이상은 더치였지만 그 외에는 다른 유럽 국가에서 온 친구들도 많았기에 일할 때 더치들 사이에서 외롭게 있었던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외국인인 내가 껴있으면 영어로 얘기해주려고 하는 친절함도 있었다. 그리고 네덜란드는 비영어권 국가 중에서 영어를 잘하기로도 소문난 국가인 만큼 정말 웬만한 사람들 다 영어를 잘한다고 느꼈다. 처음 3개월 즈음은 더치어를 아예 알아듣지도 못해서 어떤 더치 손님이 너는 왜 네덜란드에서 일하면서 더치어를 못하냐고 할 때도 있긴 했지만 말이다. 처음엔 당황해서 어버버 할 때 옆에 있던 더치 친구가 도와주곤 했는데, 나중에는 그런 손님들이 와도 여기 온 지 얼마 안 됐어, 배우는 중이야- 라며 얘기를 하면 구시렁대긴 해도 잘 넘어가긴 했다. 이런 손님들은 정말 한 달에 두세 번 정도였고, 대부분의 더치인들은 진짜 친절했다. 나는 왜 더치인들이 차갑고 칼 같은 성격일 거라고 생각했을까? 모든 건 사바사인데 말이다.
내가 일하던 매장은 암스테르담 중심 한복판에 있는 작은 스타벅스였다. 작지만 엄청나게 바쁜 곳이라 6시 반에 오픈해서 새벽 1시, 2시까지 오픈을 하는 곳이었다. 영업시간이 긴 만큼 같이 일하는 파트너의 숫자도 꽤 많았다. 제일 많았을 땐 한 30명 정도 됐던 것 같다. 노동은 고됐지만 같이 일하는 친구들이 너무 좋은 친구들이라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
처음 살던 집이 계약이 끝나가서 새로 집을 찾아야 했을 때, 사실 누구에게 도와달라고 말하는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터라 혼자 해결해 보려고 페이스북 페이지를 매 시간 체크하고 메시지를 보내고, 카머넷도 체크하고 했지만 답변이 오지 않아서 좌절하고 있을 때, 결국 같이 일하는 친구들에게 도움을 청했는데, 슈퍼바이저였던 친구는 자기 집에 동생 방이 있는데 여자 친구와 나가서 산다고 비어있으니 집 구할 때까지 지내도 된다고 했고(심지어 돈도 안내도 된다고 했다!), 또 다른 친구는 자기의 지인에게 물어봐서 소개를 시켜주기도 했다. 그러다 우연히 같이 일하던 친구인 알렉스가 내가 집을 구해야 하는 시기에 새 집을 렌트했는데 세입자 찾는다고 하여, 가격도 적당했고 집 컨디션도 너무 괜찮아서 이사를 가기로 했다. 알렉스가 없었다면 정말 길거리에 나갔어야 할 판... 사실 그 단기로 살던 집 친구가 동네에 다른 집을 아예 사서 이사를 가는데 나보고 같이 가도 된다고 했지만 일터에서 조금 더 멀어지게 되어 고맙지만 사양하게 되었다.
나의 영국 생활의 전부가 막스 앤 스펜서였다면 네덜란드 생활의 전부는 스타벅스였다. 모든 친구들도 전부 스타벅스 친구들 뿐이고, 대부분의 시간을 스타벅스에서 보냈으며, 덕분에 더치어도 많이 배웠고 1년간 잘 먹고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