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움에 익숙해져 길들여지기
1학년을 마칠 즈음 친구들은 문과로 갈 것인지 이과로 갈 것인지 선택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 역시 선택해야 했지만 난 고민하지 않고 문과를 택한 것 같다. 문과에 꼭 가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냥 문과였다. 담임선생님께서 분명 문과와 이과의 차이점과 각각의 진로 방향을 말씀해 주셨지만 그 말씀이 내 영향을 주지는 않았다. 문과에서 무엇을 배우는지, 문과에 진학하면 무슨 과를 나와 어떤 직업을 얻을 수 있는지 전혀 모르고 아이들이 문과를 많이 가는 것 같아 문과로 결정했다. 부모님에게도 물어보았지만 부모님은 네가 알아서 해라는 말 뿐이셨다. 문과로 배정되어 얼마 안 있다 학교에서는 야간에 도서관에서 자율학습을 할 학생들을 선발한다고 했다. 다른 학생들은 교실에서 자습을 하는데 반별로 5명 이내의 학생들을 선발하여 본 건물과는 뚝 떨어져 있는 도서관 2층에서 감독 선생님의 지도로 밤 10시까지 자습을 시킨다는 것이었다. 선발되기를 바라는 아이도 있었고 돼도 안 한다는 아이도 있었지만 다른 일이 다 그렇듯 며칠 후 우리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1학년 말 성적으로 50명인가를 선정하여 발표하였다. 나도 그 명단에 있었다. 명단이 발표되자 명단에 있든 없든 모두 투덜거렸다. 명단에 들어가지 못한 친구는 성적만으로 선정하는 것은 불공평 함을 이야기했고, 명단에 있는 아이들은 하기 싫은 데 억지로 하게 한다고 투덜거렸다. 그러나 후자의 아이들의 투덜거림은 정말 몇 아이를 제외하고는 쇼에 지나지 않음을 우린 모두 알고 있었다. 난 투덜거리지 않았다. 나는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더 좋은 곳에서 자습을 한다는 것이 너무 좋았다. 아니 솔직하게 말하면 그들보다 뛰어나다는 것이 인정받아서 좋았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저마다 자부심과 약간의 투덜거림 그리고 지도 선생님에 대한 호기심 등으로 상기된 얼굴로 모인 우리 앞에 나타난 감독 선생님은 ○○대학을 나온 유도 유단자 선생님이었다. 첫날부터 우리에겐 자신의 경력과 무용담을 길게 말하시면서 똑바로 자습 안 하는 놈은 엎어치기 해버린다고 경고하셨다. 실제로 그 말씀이 경고로 끝나지 않고 행해진 것은 바로 다음 날이었다. 학급의 종례가 끝나고 10분 정도 시간 안에 도서관까지 와야 했는데 한 친구가 늦게 온 것이었다. 하필 그 반에 도서관 자습을 하는 아이는 그 아이뿐이어서 종례가 늦어져 늦은 것임을 증명해 줄 친구도 없었다. 있어도 소용없었을 것 같기는 했다. 한 20분쯤 지나서 온 아이에게 지도 선생님은 다짜고짜 멱살을 잡고 엎어치기 했기 때문이다.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고 “쿵”하고 낙엽 떨어지듯 떨어지는 아이의 모습은 영화의 슬로모션처럼 우리 인상에 선명하게 남았다. 지도 선생님에게 지각의 이유는 관심 밖이었던 것 같다. 이 아이가 자신의 말을 감히 어겼으며 이런 놈이 또 나오지 않도록 지켜보는 아이들에게 강한 인상을 주는 일이 중요했던 것 같다. 그런 목적이었다면 선생님의 퍼포먼스는 분명 성공적이었다. 그 이후 우리 중 누구도 지각이나 그럴싸한 이유로 자율학습을 빠지려는 시도조차도 안 했기 때문이다. 새 학기에 아이들이 문제를 일으키면 그 엎어치기 장면이 떠오른다. 솔직히 엎어치기 한 판하고 싶은 순간도 있다. 말 잘 듣는 아이들을 만드신 선생님의 성공을 경험했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아무리 떠올려보려 해도 그 선생님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 것은 그 선생님을 통해 옳은 것을 배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속이 문드러지고 화가 나더라도 내가 교실에 있는 이유는 아이들이 자신을 아끼고 서로를 사랑하는 아이로 키우고 싶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문제를 일으키고 나는 그로 인해 월급을 받고 사는 존재임을 엎어치기 한 판으로 없애고 싶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