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스러운 야간 자습 시간도 곧 익숙해져 힘들지 않았다. 역시 사람은 환경이 중요하다. 또 인간의 적응력은 놀라울 정도이다. 찍소리도 못 내던 우리는 좀 익숙해지자 그 무서운 선생님에게 인정받으려는 아이, 몰래 숨어서 비아냥되는 아이, 아무 생각 없이 살다 가끔 얻어터지는 아이 등으로 나뉘어 또 그렇게 열심히 살았다. 여름 방학을 얼마 앞둔 우리는 더위와 싸워가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래도 선생님은 남자들만의 세계라 러닝 바람으로 공부하는 것도 통 크게 허락해 주셨다. 또 본인도 그러고 계셨다. 하루는 저녁을 먹고 집에 갈 시간만 기다리던 차에 한참을 자리를 비우신 선생님께서 돌아오셔서는 우리들 보러 가방 싸라고 하셨다. 오늘 자습은 그만이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한 시간 정도 일찍 끝난 자습에 열광했다. 그리고 “왜요?”라는 표정으로 선생님을 바라봤다. 선생님은 너희들이 열심히 공부해서 밑에 층에 상을 준비했다고 하셨다. 우린 그 무식한 선생님이 너무 멋져 보였다. 그리고 선생님을 극진히 모시고 아래 층으로 갔다. 선생님이 우릴 데려간 곳은 도서관 옆에 있는 항상 큰 자물쇠로 잠겨있어 별 신경도 안 쓰던 교실 한 칸 정도 크기의 공간이었다. 거기로 들어간 우리는 더 큰 환호성을 질렀다. 거기엔 음식이 쭉 차려져 있었고 그 음식들 대부분이 거의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걸 우리에게 먹으라고 주신 것이었다. 우리는 음식으로 돌격했고 과열 차게 먹었다. 정말 신났다. 어떤 음식들이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멧돼지 통구이는 확실히 기억한다. 자그마한 돼지가 통째로 구워진 것이 징그러웠기 때문이다. 물론 그 징그러움은 곧 내가 언제 이런 걸 먹어보나 하는 마음과 왕성한 식욕에 없어졌지만. 배가 부를 즈음 나는 주위를 둘러봤다. ○○회 졸업 20주년 홈커밍데이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내가 다닌 학교는 졸업 후 20년이 지나야 동문회를 인정해 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졸업 후 21년이 되는 해 하루 날을 잡아 졸업생들이 이렇게 기념행사를 하는 것이었다. 멧돼지 바비큐와 함께 인상적인 것이 얼음 독수리와 호랑이 조각상이었다. 상당히 많이 녹아서 독수리와 호랑이의 용맹함은 사라졌지만 그걸 깨서 서로의 등에 넣는 장난을 하기에는 오히려 좋았다. 생각해 보면 익숙해진 공포 속에서도 소소한 즐거움은 있었구나 싶다. 21년 만에 찾아온 선배들은 육십 년 대 초반 학교를 다닌 그 당시 우리들과 비교할 수도 없는 세상을 산 사람들이다. 그런 그들이 후배들 힘들게 자습한다고 남겨둔 음식은 후배에 대한 사랑이었다고 생각한다.
예전보다 많이 풍족해진 지금 나는 후배들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지 또 후배들은 무엇을 받고 싶은지 궁금하다.